유통 9단 김영호의 Money Trend

▲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평일 저녁, 미국 야구장은 친구와 이야기 나누기에 알맞다. 사진은 미국 LA 다저스타디움. [사진=뉴시스]
미국에 간다면 ‘야구장’을 가보길 추천한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거기서만 누릴 수 있는 게 있다. ‘정情’이다. 미국의 야구장은 경기만 보러 가는 곳이 아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미국에 가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이 있다. ‘야구장’이다. 로스앤젤레스(LA)에는 오래된 대규모 야구장이 있다. 이름은 ‘LA 다저스타디움(LA Dodger Stadium).’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필자는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일본인과 함께 버스를 타고 LA 다저스타디움에 도착했는데, 어마한 경기장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놀라운 건 크기만이 아니었다. 미국 야구장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야구장 티켓은 미리 인터넷으로 구매를 할 수 있는데, 차를 몰고 오는 관중은 티켓에 표기된 해당 좌석에서 가까운 구역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야구장 입구에 배치된 주차요원이 관중에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위치를 상세히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십만대의 차량은 막히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지나갔다. 수많은 차량이 엉킴 없이 물 흐르듯 빠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국의 질서정연함을 본 순간이었다.

야구장엔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 대부분 백인과 멕시칸이었고, 필자와 같은 동양인도 간혹 보였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십만대의 차량과 인파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좌석을 찾아 자리에 앉아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 관중들의 손에 핫도그가 들려 있는 거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경기장 뒤편의 핫도그 판매 코너가 있었다. 그제야 필자는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야구경기장 저녁 메뉴는 핫도그나 샌드위치였던 것이다. 명물 야구장답게 핫도그를 ‘Dodger’s Dog’라고 불렀다. 기발했다. Dodger’s Dog 세트는 감자칩과 핫도그인데, 상자에 담겨 나왔다. 비록 일회용품이지만 친환경 소재라서 환경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요기를 채운 후 본격적으로 야구를 관람했다. 경기는 진행은 한국과 동일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치어걸이나 응원단장이 없다는 거였다. 앞에서 호응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없는데도 야구장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왜 그럴까. 이유는 별 다른 게 아니다. 경기의 흐름을 깨거나 방해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응원하느라 정작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고 응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관중들이 자연스럽게 파도타기를 하는데, 여기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외치며 앉았다가 일어난다.

미국의 야구경기장도 한국처럼 볼거리가 많다. 쉬는 시간엔 야구장 전광판에 재밌는 정보가 뜨고, 캐릭터 혹은 유명인사로 분장한 야구팬을 카메라가 비춘다. 인기야구선수의 인터뷰 영상도 나온다. 쉬는 시간에 야구팬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배려심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야구장은 경기를 보러 가는 곳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필자가 체험한 미국의 야구장은 경기만 보러 가는 곳은 아니었다.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친구와 정 나누는 미국 야구장

필자의 앞에 앉은 3명의 남성은 신사복에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사업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족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야구가 아니라 세상 사는 이야기였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평일 저녁시간, 미국 야구장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와 나누지 못했던 정을 누리는 곳인 셈이다. 그렇다. 미국의 야구장은 한국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