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구속 ‘경영공백’ 아니다

▲ 오너 경영체제의 문제점은 총수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구조에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총수가 구속된 그룹이 경영상 공백을 운운한다. 각 회사별로 CEO가 있고, 이사회가 있는데, 그룹이 어려울 리 있겠는가. 이럴수록 정도경영의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총수가 변해야 한국경제의 생태계가 변한다.

요즘 총수가 구속된 그룹들이 경영상 공백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룹 총수가 없을지라도 각 회사별로 사장이 있고 이사회가 있는데 왜 어렵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장과 이사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라서다. 우리나라 재벌의 경우 모든 권한이 그룹 총수 1인에 집중돼 있다. 이런 오너 경영체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기대하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오너 경영체제는 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재벌 총수들이 ‘그룹=총수 개인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은 회사돈을 개인 것처럼 사용하고, 계열사 지원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본인이나 친인척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세습경영을 위해 탈법을 저지르는 등 온갖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왜 이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총수 일가의 낮은 지분율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43개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평균 4.36%(총수 2.09%ㆍ친족 2.27%)에 불과하다. 총수는 여기에 계열회사 지분율(48.15%)을 합쳐 그룹을 지배한다. 회사 이익을 배당하거나 회사 주가가 올라가더라도 지배주주 일가의 몫은 4.36%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수는 위와 같은 사적 이익 추구에 나선다. 결국 우리나라 재벌 오너 경영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총수가 쥐꼬리만한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순환출자구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지분율이 낮은 그룹 총수들은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의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고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핵심 계열사의 지분율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SK그룹의 최태원ㆍ최재원 형제의 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이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파생상품 오ㆍ남용 사건도 이런 연유에서 생긴 것이다. 순환출자를 허용하는 것은 소수 지분을 가진 재벌 총수가 자기 돈이 아닌 계열사 자금을 통해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하도록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환출자는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주주의 권익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 하에서는 이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총수의 사익을 위해 다수의 소액주주들은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총수는 계열사를 통해 그룹 전체의 5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회 멤버인 등기임원과 사외이사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로 선임할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면 총수의 이사회 장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총수의 무임승차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43개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이 평균 4.36%라는 것은 나머지 95.64%는 다른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같은 그룹의 계열사라 하더라도 엄연히 주주들이 다 다른데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4.36%의 지분만을 갖고 있는 총수 일가가 독단적으로 행할 수 있는 순환출자 구조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재벌 그룹은 이번 오너들의 구속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경영공백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주주를 위한 정도경영正道經營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오세경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koh@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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