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구속 ‘경영공백’ 아니다
총수가 구속된 그룹이 경영상 공백을 운운한다. 각 회사별로 CEO가 있고, 이사회가 있는데, 그룹이 어려울 리 있겠는가. 이럴수록 정도경영의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총수가 변해야 한국경제의 생태계가 변한다.
요즘 총수가 구속된 그룹들이 경영상 공백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룹 총수가 없을지라도 각 회사별로 사장이 있고 이사회가 있는데 왜 어렵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장과 이사회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라서다. 우리나라 재벌의 경우 모든 권한이 그룹 총수 1인에 집중돼 있다. 이런 오너 경영체제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선 기대하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오너 경영체제는 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재벌 총수들이 ‘그룹=총수 개인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들은 회사돈을 개인 것처럼 사용하고, 계열사 지원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본인이나 친인척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세습경영을 위해 탈법을 저지르는 등 온갖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왜 이러는 것일까.
그 해답은 총수 일가의 낮은 지분율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43개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은 평균 4.36%(총수 2.09%ㆍ친족 2.27%)에 불과하다. 총수는 여기에 계열회사 지분율(48.15%)을 합쳐 그룹을 지배한다. 회사 이익을 배당하거나 회사 주가가 올라가더라도 지배주주 일가의 몫은 4.36%에 불과하기 때문에 총수는 위와 같은 사적 이익 추구에 나선다. 결국 우리나라 재벌 오너 경영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총수가 쥐꼬리만한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순환출자구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주주의 권익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 하에서는 이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총수의 사익을 위해 다수의 소액주주들은 희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총수는 계열사를 통해 그룹 전체의 5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사회 멤버인 등기임원과 사외이사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로 선임할 수 있다.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지면 총수의 이사회 장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사회가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총수의 무임승차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43개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지분율이 평균 4.36%라는 것은 나머지 95.64%는 다른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같은 그룹의 계열사라 하더라도 엄연히 주주들이 다 다른데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4.36%의 지분만을 갖고 있는 총수 일가가 독단적으로 행할 수 있는 순환출자 구조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재벌 그룹은 이번 오너들의 구속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경영공백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주주를 위한 정도경영正道經營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오세경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skoh@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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