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제품 ‘진품’ 논란

병행수입 물품의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까. 한편에선 ‘세관만 통과하면 진품’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선 ‘QR코드를 통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 다 아니다. 세관을 통과해도, QR코드를 활용해도 진품을 찾기 어렵다. 수입업자가 가짜제품으로 세관을 통과하면 그만이라서다.

▲ 병행수입 물품에 QR코드가 붙어 있으면 정식으로 세관을 거친 제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품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해외직구와 함께 병행수입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병행수입은 독점수입권자에 의해 외국상품이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상품을 (국내독점수입권자의 허락없이) 수입하는 걸 말한다.  국내 병행수입제도는 1995년 11월 정부가 공산품 가격을 내리기 위해 도입했다. 개인사업자들이 주도하던 병행수입은 2005년 이후 백화점·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뛰어들면서 활성화됐다. 국내 병행수입 시장규모는 2조~3조원대. 해외직구시장보다 2배 이상 크다.

정부가 병행수입 활성화정책을 내놓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물가를 잡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병행수입 관련 대책 중 대표적인 건 2012년 9월 실시된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제도(이하 통관인증제도)’다. 이 제도는 관세청으로부터 병행수입물품 통관표지 첨부업체 확인서(이하 통관표지 확인서)를 발급받은 업체가 병행수입 물품에 QR코드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QR코드에는 상품의 품명·상표명·모델·수입자·원산지·통관일자·통관세관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소비자는 QR코드를 통해 해당 제품이 정식 절차를 밟아 수입된 제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병행수입 규모는 통관인증제도를 시행한 후 더욱 늘어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시행 전 15개월간(2011년 6월~2012년 8월) 병행수입 금액은 1418억원이었는 데 시행 후 15개월간(2012년 9월~2013년 11월)은 1932억원으로 36% 늘었다. 이 제도가 병행수입 활성화에 일조했다는 것인데, 문제도 있다. QR코드 인증만으로 ‘진품’ 여부를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QR코드는 밀수제품만 걸러낼 수 있을 뿐 가짜제품은 가려내지 못한다.

유명무실한 통관인증제도

그럼에도 통관표지 확인서를 받은 대기업과 업체들은 ‘QR코드 정품인증’ 문구를 사용하며 병행수입 제품을 팔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병행수입 업체나 업자가 해외에서 수입한 가짜제품에 QR코드를 붙여 판매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며 “QR코드=정품식의 홍보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병행수입 통과인증사업을 대행하는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 관계자는 “가짜제품 여부는 수입업자에게 달린 문제라 우리도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업체에 실사를 나가거나 수입신고서 등의 서류를 일일이 확인해도 적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3월 말 병행수입의 통관절차와 허가기준을 완화하는 병행수입 활성화 세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통관인증기준을 완화해 통관인증제를 확대하고, 수입 경로를 다변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통관인증제 참여 가능 업체를 늘리는 방안도 추가될 전망이다. 하지만 QR코드가 진품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통관인증제도는 의미가 없다. 병행수입물품의 ‘진품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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