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⑦

울지내는 뒤늦게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에 빠진 줄 깨달았다. 전세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제 부하 군사의 군복을 바꿔 입고 기어서라도 고개를 넘어 도망하려 하는데 문득 한사람 7척 장검을 비껴들고 준마를 빨리 몰아 앞을 막아 내닫는다. 이순신이었다.

 

▲ 순신은 기운이 장사였지만 머리도 쓸 줄 아는 장수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조정이 이순신을 북방으로 보냈지만 사실 그곳에 가고 싶어하는 무장은 별로 없었다. 적들이 들어오는 길목에 있고 소진이어서 군사도 수백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원해주는 사람이 없는 이순신에게 이 벼슬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순신은 도리어 장부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울 자리라고 생각한다.

 

건원보에 도임한 순신은 부하 장사將士와 밀의를 한다. “번호의 침략이 이렇게 심하여 우리 백성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중에도 울지내(오랑캐 추장 중 한명)가 제일 강포하다 하고 또 우리 건원보와 경계가 맞닿았으니, 만일에 울지내가 수천병마를 거느리고 본보를 범하여 온다면 중과부적이 될 것이오, 인근 각 읍에 청병한다 할지라도 시일이 늦어 고립되어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비책을 세워 강적을 격파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곤 순신은 영리하고 재간 있는 진무(조선시대 병영•수영•진영에 소속된 서리) 한사람을 택하여 여차여차 하라고 계책을 가르쳐 보내었다.

이때 적의 추장 울지내는 천고마비의 가을을 맞이하여 두만강을 건너가서 난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에서 강을 건너온 상인 하나를 포로로 잡았다. 울지내는 그를 베어버리라 하였는데 그 사람이 엎드려 생명을 빌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소인은 건원보에 사는데, 최근 권관 이순신이 새로 도임하였습니다. 미첩과 함께 온 그는 요동遼東 몽고蒙古 방면에서 나오는 보물 노리개를 좋아하여 널리 구하는 중이옵니다. 소인은 보물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상인입니다. 몸에 가졌던 자본금은 바쳤사오니 부디 살려주십시오.”

건원보를 삼킬 생각이던 울지내는 귀가 번뜩 뜨였다. 그 상인의 말을 듣고는 이순신의 신분과 그 미첩의 자색, 그리고 재보가 많고 적음을 상세하게 물었다. 그 상인은 경황망조하는 듯한 태도로 “장군의 칼이 소인의 머리를 겨누는 이판에 추호인들 거짓말을 하오리까” 하니 울지내는 “이놈! 장군이라니!”라며 호통 친다.
그 상인은 “예 대왕!”리라 답했다. 울지내는 “대왕이라고도 말고 천가한天可汗이라고 존호를 불러라!” 하였다.

그러자 상인은 이렇게 고했다. “이순신은 본래 서울에서 큰 장사꾼의 자제로, 아니 서울 갑부의 아들로, 아니 갑부의 외동 아들로, 돈을 물 쓰듯 하고 보검이며 조궁(무늬를 조각해 넣은 활)이며 기이한 전통이며 그밖에도 천고의 유물 골동骨董이 전후좌우에 널렸다 합니다. 그 애첩의 자태와 얼굴은 천하무쌍한 절색이라 건원보 부녀들이 이르기를 어찌 아리따운지 바로 삼켜도 목구멍에도 걸리지 않고 넘어갈 듯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요.” 울지내는 본래 재물을 탐하고 호색하는 오랑캐의 근성이라 이 말을 듣고는 미칠 듯이 좋아하였다.

연해주 오랑캐를 계략 세워 섬멸

울지내는 부하 정병 5000명을 뽑아 순신이 있는 건원보로 향했다. 그날 황혼에 강을 건너 함매(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군사의 입에 막대등을 물리는 것)하고 건원보로 풍우같이 들어갔다. 이는 울지내의 계략이었다. 만일 대병을 이끌고 건원보를 치러 가면 인근 북병사가 병력을 내서 구원할 것이니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습작전으로 야습을 해 이순신을 사로잡고 제 욕심을 채우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에 울지내는 정병을 지휘하여 오경(새벽 3~5시)에 건원보에 가까운 산골 협로狹路에 이르렀다. 길에 굵은 나무토막과 암석이 가로막아 말이 통행하기가 곤란하였다. 울지내는 길을 안내하던 상인을 불러 이유를 물었다. 상인은 “생각하건대 필시 이순신이 대왕의 병마가 올까 겁이 나서 한 일인가 합니다” 답했다. 울지내는 운수가 다 되었던지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다. 굵은 나무토막과 암석을 넘어 행진을 계속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대포소리가 나더니 사방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한 거다.
 

▲ 순신은 오랑캐 추장을 잡는 공을 올렸지만 조정에선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울지내의 군사들은 흩어져 목숨을 구하려 하였으나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게 되어 500 인마人馬가 화살과 돌에 맞아 바로 염라국閻羅國 귀문관鬼門關으로 행하게 되었다. 울지내는 뒤늦게 이순신의 유적계誘敵計에 빠진 줄 깨달았다. 그 유인하던 상인을 찾아 분을 풀려 하였으나 벌써 간 곳을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울지내는 전세를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제 부하 군사의 군복을 바꿔 입고 기어서라도 고개를 넘어 도망하려 하는데 문득 한사람 7척 장검을 비껴들고 준마를 빨리 몰아 앞을 막아 내닫는다.

“이놈 울지내야! 네 죄악이 이르지 않은 곳이 없으니 하늘의 벌을 피할쏘냐? 내 오늘 밤에 너를 잡아 우리 창생의 도탄지고塗炭之苦를 풀고자 한다”고 호령하고 울지내를 생포하여 수하 무사에게 결박하게 하였다. 후일 남파 홍우원이 이에 대해 시를 지었다. 백원白猿은 검술을 가르치고 흰 원숭이가 돼서 사라진 노인을 일컫는 말이다. 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이 검을 매우 잘 쓰는 여인을 초청했는데, 갑자기 노인이 나타나 검술을 한 수 가르치고 사라졌다고 한다. 청상과 자전은 맑은 기운의 서리와 자줏빛의 번개처럼 서늘하고 날카롭게 번득이는 무기를 말한다. 어찌됐든 다음날 결박한 울지내를 함거檻車에 실어 북병사에게 보냈다. 북병사 김우서는 울지내를 죽여 효수梟首하였다. 이로부터 이순신의 위명이 멀리 오랑캐 땅에 진동하여 니탕개 율보리의 무리가 감히 건원보를 흘겨보지를 못하였다.

상관의 시기로 하관직에 머물러
 

▲ [더스쿠프 그래픽]

북병사 김우서는 이순신이 일개 소진의 변장으로 이렇게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을 시기하여 조정에 이런 내용의 장계狀啓를 올렸다. “이순신이 일개 소진의 권관으로 주장主將에게 고하여 상의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독단적으로 병사를 움직여 변경에 중대사건을 단행하였습니다. 만일에 실패하였으면 그 책임은 주장에게 돌아갈 것이니 실로 위험한 인물입니다. 비록 공이 있으나 상은 행하기 어렵습니다.” 소진의 병력으로 기계奇計를 안출하여 범같은 울지내를 생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던 조정은 포상을 행하려 하였지만 순신의 주장이 되는 북병사 김우서의 무고로 인하여 그만 정지하고 말았다.

이해 1583년에는 순신의 나이 39세였다. 조정에서는 11월에야 훈련원 참군이란 직함으로 전날의 공을 포상하였다. 순신의 영명이 비록 날로 높아가나 권세가에 잘 보이려 하지 않고 또 조정에서 뒤를 밀어 주는 이가 없으니 벼슬길에 나선 지가 장근 10년이로되 의연히 하료下僚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 의기는 항상 태연자약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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