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 인 | 조난자들

혼자 여행을 떠난 상진(전석호)은 지인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외딴 펜션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학수(오태경).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잉친절을 베풀었지만 그래도 학수와는 오랜 친구 사이. 하지만 학수의 말 한마디가 상진을 얼어붙게 만든다. “얼마 전 형무소에서 나왔어.” 간신히 찾아간 하얀 눈 속 팬션. 때마침 지인의 부모님이 해외여행 중이라 상진이 열쇠를 찾아 펜션에 들어갔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상진은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머리를 식힐 겸 산책도 종종 나갔다.

▲ 영화 조난자들의 스틸컷. [사진=손구혜 기자]
그러던 어느날 상진은 거친 젊은 남녀 일행을 만난다. ‘팬션에 묵게 해달라’는 통사정을 들어준 상진은 시끄러운 말소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러다 학수 일행에게도 바비큐장을 빌려주는데,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젊은 일행 중 한명이 죽어 있는 모습을 상진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쩔 줄 몰라 경찰에 신고했지만 전화는 ‘불통’.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는 상진, 과연 어디로 숨어야 할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걸까.

영화 ‘조난자들’은 한 여행자가 친절한 전과자, 의뭉스러운 경찰 등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엮여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얘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다. 펜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축으로 오해와 편견이 얽히고설키는데, 여기에 이 영화만의 긴장과 재미가 들어 있다. 해외평단은 “장르의 관습적인 요소들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담백한 위트와 서서히 고조되는 서스펜스(로테르담국제영화제)”라며 연출력을 극찬했다. 이 영화는 제38회 토론토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제33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제10회 홍콩아시안영화제, 제43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제29회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 제14회 뉴욕필름코멘트셀렉트까지 초청을 받았다. 특히 하와이국제영화제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이후 한국영화로는 13년 만에 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이 영화의 각본ㆍ연출ㆍ음악ㆍ제작을 모두 담당한 노영석 감독은 스토리를 장악하는 연출력을 가진 충무로의 차세대 대세 감독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노영석 감독은 언젠가 만나 본 듯한, 그러나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인물들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였다. ‘상진’역을 맡은 전석호는 낯선 이의 호의를 부담스러워하는 소심한 성격의 주인공이 살인사건의 공포에 직면하는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살벌한 마을 토박이 ‘학수’로 분한 오태경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로 영화계에 얼굴을 알린 배우다.

이번에는 친절할수록 무섭고 진지할수록 능청스러운 전과자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TV드라마 ‘기황후’에서 카리스마 있는 환관역을 연기하고 있는 최무성이 뒤가 구린 듯 의심 가는 경찰을 맡아 강렬한 활약을 펼친다. 주연에서 단역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의심, 친절과 살벌, 액션과 리액션은 ‘조난자들’의 서스펜스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다. 노영석 감독이 만들어 낸 탄탄한 캐릭터를 맞춰 입은 듯 만만치 않은 내공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열연은 이 영화의 백미다.
글ㆍ사진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guhs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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