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속도 괜찮나

▲ 규제개선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의 ‘상벌발언’이 선한 규제까지 위협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규제개혁 실적이 우수한 부처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겠다. 반대로 보신주의에 빠진 곳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규제는 풀어야 할 대상이다. 규제를 풀지 않는 공무원은 ‘보신주의자’다. 그런데 규제는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선한 규제도 있다. 일선 공무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딜레마’가 선한 규제를 위협하고 있다.

“규제완화 광풍이 불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손을 맞잡고 추진하는 ‘규제개혁’을 두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다. 최근의 규제개혁과정을 보면 그런 우려가 충분히 나올 법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3월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규제를 ‘암 덩어리’ ‘원수’ 등으로 표현, ‘규제완화=미덕’이라는 식의 발언을 쏟아냈다. 3월 20일에는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규제개혁회의)’를 주재했다. 회의는 ‘끝장토론’이라는 형식이었지만 제대로 된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 관계자가 불만을 쏟아내면 주무부처 장관이 ‘해결하겠다’는 식이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는 규제개혁회의를 “끝장토론이라더니 기업인들이 소원수리를 쏟아낸 회의”라고 비판했다.

‘규제=악’이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한 탓인지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선별할 겨를이 없었다. 이를테면 수출기업이 제출할 서류를 간소화해 물류비를 줄여주는 건 나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규제를 풀어주거나 녹지 규제를 무분별하게 풀어 공장을 짓도록 해주는 건 기업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교육부 장관까지 나서 학교 주변 호텔건립을 우려했지만 그랬다.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려는 잠식됐고, 그 규제는 풀릴 예정이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게 가능한 건 박 대통령의 ‘상벌발언’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규제개혁회의 모두 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규제개선 실적이 우수한 부처와 공무원에게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고,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부처와 공무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은 ‘박근혜 딜레마’에 빠졌다. 좋은 규제라도 풀지 않으면 ‘보신주의자’로 전락할 판이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기업들이 ‘홍수 난 김에 쓰레기 버리듯’ 쏟아내는 소원수리 중에는 규제완화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도 있고, 어떤 것들은 ‘손톱 밑 가시’가 아니라 ‘대궐의 대들보’ 같은 것도 있다. 때문에 그것을 뽑을 때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중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실적에 몰리는 장관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한 건’을 올리기 위해 분주하다.”

물론 정부의 규제개혁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복지부동하던 공무원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감도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속도’다. 3월 27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규제개혁회의에서 제기된 현장 건의 52건 중 41건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79%의 수용률이다. 일주일 만에 모든 걸 검토했다는 얘기다.

푸드트럭 개조 규제는 시쳇말로 ‘빛의 속도’로 풀렸다. 국토교통부는 규제회의 후 5일 만인 3월 25일 푸드트럭의 제작과 개조를 허용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틀 뒤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내놨다. 올해 7월까지 최소 적재공간(0.5㎡)을 확보하면 화물차의 푸드트럭 구조변경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일사천리다. 

정부 규제완화, 속도가 문제다

푸드트럭 개조 규제에 관한 민원을 받아 조사를 벌이고, 해법을 모색해온 민관합동 규제개선추진단의 이요셉 민생불편개선팀 전문위원은 우려를 표했다. “사실 푸드트럭은 봄ㆍ가을 장사다. 운영 합법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들이 완전한 봄이 오기 전 풀리면 관련 종사자들에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도만 빨라선 안 된다. 고려해야 할 것들을 놓칠 가능성이 커서다.”

그럼 고려해야 할 건 뭘까. 이요셉 전문위원에 따르면 미국에서 푸드트럭은 꽤 인기 있는 사업 아이템이다. 대신 푸드트럭을 운영하길 원하는 이는 차량허가, 사업면허를 받아야 한다. 차량 대수도 제한한다. 뉴욕시의 경우 6000대로 대수를 한정했다. 난립을 막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미국에선 푸드트럭 사업이 대부분 대기업에 넘어갔다. 차량대수를 한정해 누군가 푸드트럭 영업을 그만해야 대기자가 배턴을 이어받는 시스템인데, 대기업이 개인명의로 사업을 신청해 영업권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 전문위원은 “기업이 영업권을 웃돈 받고 파는 불법적인 거래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푸드트럭 음식으로 미국 최고의 요리사에 선정됐다는 ‘로이 최’처럼 빛나는 성공담도 있지만, 그 이면엔 그림자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푸드트럭 시장의 교훈

이 전문위원은 “푸드트럭 사업이 대기업이 독점할 수 없도록 사업대상이나 차량대수를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규제를 푸는 만큼 또 다른 규제를 해야 관련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환경이 바뀐 만큼 강제적이고 금지적인 규제를 대신할 규율체계가 필요하다”며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규제를 개혁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의원입법까지 문제를 삼으며 ‘규제를 없애라’고 지시하고 있다. 공적 쌓기에 혈안이 된 것 같은 공무원은 ‘규제완화’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규제를 잘못 풀면 부메랑이 날아오게 마련이다. 앞뒤 재지 않고 서둘러 풀었다간 되레 푸드트럭 사업자만 다칠 수도 있다. 푸드트럭 사업을 대기업에 넘겨주고 그들의 밥줄이 끊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와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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