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영업정지 한달의 풍경

여기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한 소상인 두사람이 있다. 2002년부터 서울 강남권과 강북권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12년,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동안 이동통신시장은 르네상스를 거쳐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전례 없는 보조금 대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판매점 소상인의 애환을 살펴봤다.

▲ [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강변역 인근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도윤씨. 그는 요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동통신사의 영업정지로 판매점이 고사 직전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영업정지 직전에 나온 보조금 덕분에 재미 좀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속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동통신사가 영업정지 직전까지 보조금을 지급해 휴대전화 단말기를 꽤 팔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2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판매한 휴대전화 단말기는 5대뿐”이라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시계추를 올 2월 26일로 돌려보자. 이날 오후 언론은 ‘2ㆍ26 대란’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개요는 이렇다. 온라인 휴대전화 공동구매 카페에 간략한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KT 갤럭시S4 12만원, G2 12만원, 베가시크릿업과 갤럭시노트2 3만원.” 가입자가 번호이동을 할 경우 삼성전자 갤럭시S4 LTE-A와 LG전자 G2를 12만원, 팬택의 베가시크릿업과 베가아이언을 3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보조금 전쟁이 터진 거였다.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 공교롭게도 김씨는 휴대전화를 제값대로 팔 수 없었다. 누구도 50만~60만원을 주고 휴대전화를 사려 하지 않았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ㆍ26 대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한 고객들로부터 개통 취소 요청이 빗발쳤다. 고객들은 김씨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했고,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을 믿지 않은 것이다.

판매점 울리는 보조금 대란

거짓말쟁이로 몰린 김씨는 억울하다. “소비자가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 더 많은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판매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판매점은 자본력이 약하기 때문에 보조금 과다경쟁이 어렵다. 지금의 보조금은 보조금이 아니다.” 정말 그럴까. 지난해 4월 출시된 갤럭시S4의 출고가는 89만원이었다. 가격이 기존 갤럭시 시리즈보다 10만~20만원가량 저렴하게 책정됐다.

 
이유가 있었다. 정부가 보조금 상한선 27만원을 책정했고, 그 이후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보조금 기세가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을 낮춘 건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동통신시장이 다시 요동쳤다. 보조금 대란이 터지면서 출고가 62만원 갤럭시S4가 할부원금 12만원에 팔린 것이다. 몇번의 보조금 대란을 경험한 소비자는 휴대전화 단말기 출고가를 관망한다. 휴대전화를 살 때 으레 더 높은 보조금을 기대하는 것이다. 보조금 대란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보조금 대란으로 몸서리치는 것은 김씨만이 아니다. 서울 혜화동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창선씨는 ‘스팟정책’에 대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스팟정책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팟정책이란 이동통신사가 한시적으로 휴대전화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스팟(Spot)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운영될지 예측할 수 없다. 이를테면 새벽 1~2시간만 온라인 사이트에서 가입자를 유치하는데, 순간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이동통신사의 술책이다.

문제는 인터넷 판매점 중심으로 보조금 대란이 빈번해지면서 이동통신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판매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입자를 모집한 뒤 사라지기 때문에 개통이 안 되거나 연락이 끊겨 피해를 입는 가입자가 종종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찾을 수 없다는 거다. 인터넷 판매점 특성상 사업자등록증 없이 운영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책임감 없는 일부 인터넷 판매점 때문에 이동통신 판매사업자를 불신하는 눈길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며 “멀쩡한 판매점이 피해를 입는데 정부의 규제와 단속은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인터넷 판매점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는 이동통신사의 과다경쟁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정부가 보조금 대란뿐만 아니라 스팟정책에 대해 사실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도 이동통신사가 영업정지를 앞두고 지나치게 경쟁을 벌인 것”이라며 “이동통신사가 시장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뒤 시장에서 여전히 보조금 대란을 주도하고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매점 사업자의 얘기는 조금 다르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간사는 “정부가 보조금 상한선과 폰파라치를 운영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인터넷 판매점에 대한 규제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폰파라치의 문제점은 두가지다. 가입자가 보조금을 받고도 방통위에 신고하고, 신고 당한 일부 이동통신사 판매점은 신고자의 신원을 알아내 보복을 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반면 인터넷 판매점은 일시에 가입자를 모집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도 폰파라치의 감시망에 잡히지 않는다. 폰파라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규제 사각지대 놓인 인터넷 판매점

이씨는 “폰파라치 제도를 강화해 인터넷 판매점을 단속하라는 얘기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는 폰파라치의 핵심은 이렇다. “폰파라치 문제는 보조금 상한선과 맞물려 있다. 보조금 상한선 27만원보다 더 많이 지급하면 폰파라치 규제에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조금 상한선을 무색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과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이다. 이 돈의 성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고가의 요금제는 보조금이, 100만원에 달하는 휴대전화 단말기 출고가는 판매장려금이 원천이다. 요금과 휴대전화 단말기 출고가를 인하해 보조금 대란을 우회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러면 인터넷 판매점을 통한 스팟정책이 힘을 잃을 것이다.”

 
보조금 대란은 판매점 소상인을 울린다. 올해 들어 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통상 휴대전화 판매점이 가져가는 돈은 단말기 1대당 평균 15만원이다. 이동통신사가 요구하는 정책을 가격에 반영하면 실제로 가져가는 수익은 휴대전화 1대당 대략 10만원이다. 휴대전화 판매수익을 10만원으로 잡고 매장 월세와 직원 급여, 고정비를 계산하면 월 50~60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씨는 올 2월 총 10대를 팔았다. 이씨는 “‘집에 가져갈 돈은 고사하고 직원의 급여를 챙겨줄 여력이 없다’는 일부 판매점주의 얘기가 남일 같지 않다”며 “안타깝지만 현실이다”고 말했다.

판매점 소상인이 우려하는 것은 ‘영업정지 이후’다. 이동통신시장은 이번 영업정지 이후 보조금이 축소되면 휴대전화 판매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씨는 “소자본으로 시작한 판매점은 앞으로 매장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며 “자본력이 있거나 다수의 매장을 운영해 이동통신사로부터 정책지원금을 받는 판매점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활기가 넘쳤던 이동통신 판매점이 한순간 어려워진 이유는 뭘까. 두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국내 번호이동시장이 단기간 성장한 데 따른 부작용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1만4229개였던 휴대전화 유통점은 2012년 4만8050개로 3.3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동통신사 마케팅 비용은 2.4배 늘어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동통신 3사의 시장점유율은 정작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이 판매점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보조금이 지원되는 판매점의 특성을 파악한 이들은 너도나도 휴대전화 판매점을 개업했다. 그 결과, 이동통신 3사의 휴대전화를 모두 취급하는 판매점은 2006년 7000개에서 2012년 4만3000개로 6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1개의 이동통신사의 휴대전화만 판매하는 대리점 수는 같은 기간 7200개에서 4300개로 감소했다. 공급과잉인 셈이다.

 
휴대전화 유통채널이 다양해진 것도 이유다. 특히 하이마트ㆍ홈플러스ㆍ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휴대전화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인근에 위치한 휴대전화 판매점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하이마트 갤럭시S4 17만원 대란’은 휴대전화 판매점을 흔든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씨는 “대형마트는 기본적으로 유통사라서 물량과 가격에서 우위에 있다”며 “판매점이 대형마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씨는 휴대전화 유통점이 몰락하기 시작하면 이동통신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본다. 정부가 추진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시행되면 단말기 판매와 통신 서비스가 분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동통신사가 보조금으로 시장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동통신사의 유통 장악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로에 선 판매점 소상인

 
“지금까지는 이동통신사가 보조금으로 시장을 지배해왔다면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보조금 대란 이후 판매점 소상인이 기로에 서 있다는 거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김씨와 이씨처럼 휴대전화 판매점 소상인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얼마 전 긴급회의를 열었다. 정부에 휴대전화 판매점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지정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휴대전화 판매점의 몰락을 피하기 어렵다.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몰락한다면 이들 판매상들은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12년 넘게 휴대전화 단말기를 팔아온 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매장 운영이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동 통신사 영업정지의 뒷편에선 판매상의 눈물이 흐른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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