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리는 메가 프로젝트 시대

▲ 부동산 시장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이 빛을 보던 시기는 사실상 끝났다.[사진=뉴시스]
‘대형 개발 프로젝트’는 부동산 시장에서 호재로 작용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인ㆍ허가 관계 등 풀어야할 숙제가 많아 좌초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무산된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개발 사업과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부동산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가 ‘대형 개발 호재’다. 대형 개발 프로젝트는 인근의 부동산 시장 가격을 끌어올린다. 인천 영종지구를 살펴보자. 최근 4~5년간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대규모 미입주 사태가 벌어졌던 인천경제자유구역 3총사 중 하나인 영종지구 부동산 시장에 생기가 돌고 있다. 정부가 3월 18일 발표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 호텔, 쇼핑몰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 개발이 승인됐기 때문이다.

일반 아파트 매매시장도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2010년 입주가 시작된 ‘영종 자이’는 카지노 개발이 발표된 직후 그동안 남아 있던 미분양 아파트 17채가 모두 팔렸다. 분양가에서 20% 할인된 가격에도 남아 있던 아파트가 모두 팔리고, 가격도 3~4일 만에 2억8000만원(128㎡ㆍ약 38평 기준)에서 3억원으로 오른 셈이다.

다른 단지의 상황도 비슷했다. 영종하늘도시 ‘우미린 1단지’(전용 85㎡ㆍ약 25.7평)는 지난해 말보다 3000만원 정도 오른 3억3000만원에 거래됐고, ‘영종 힐스테이트’(85㎡)는 같은 기간 2억8000만원에서 3억2000만원으로 올랐다. 그 결과 영종지구가 위치한 인천 중구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2월 평균 0.22% 올라 2011년 6월(0.32%)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4월 35%에 불과했던 영종지구 내 아파트 입주율도 최근 66%까지 올랐다.

영종도 부동산 시장이 올 들어 활기를 띠는 건 언급했듯 카지노 허가를 포함한 각종 개발 호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카지노 개발이 허용된 미단시티 외에 다른 대규모 관광ㆍ레저단지 조성사업도 쏟아지고 있다. 영종도 매립지에는 호텔과 워터파크ㆍ쇼핑몰 등이 들어서는 ‘드림 아일랜드(사업비 2조400억원)’ 사업이 추진 중이고,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에는 카지노ㆍ국제회의장 등으로 구성된 ‘파라다이스 시티(1조9000억원)’ 개발준비가 한창이다. 그 여파로 영종지구 땅값도 크게 올랐다.

하지만 영종지구가 자족형 신도시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종지구를 비롯해 청라지구ㆍ송도신도시 일대에 미분양이 줄고 주택 거래가 증가하고 있지만 상업ㆍ업무 시설이나 교통수단 등 생활편의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형 개발 프로젝트는 부동산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인ㆍ허가 관계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서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해 경기ㆍ인천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남ㆍ전남 등 서해안권 일대를 따라 속속 발표되던 사업비 1조원 이상의 프로젝트 대다수가 무산되거나 정지된 상태에 있다. 올 2월에는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서울 양재동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이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31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던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가 무너졌다.

 
영종도 부동산, ‘카지노’ 호재

스톱된 메가 프로젝트들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대부분 프로젝트는 2007~2009년께 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2007년 부동산 경기가 한창 좋던 시절에 발표되거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추락하는 경기를 대규모 프로젝트로 살리겠다’는 취지로 사업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내수경기침체는 각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상당수가 첫 삽도 제대로 떠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자체, 공기업, 민간 출자사가 경기 활황 때 무리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소규모 자본금만 갖고 대규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추진하다가 경기침체라는 직격탄을 맞고 좌초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로젝트의 주체였던 지자체와 민간 참여자들은 서로 잘못을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메가 프로젝트가 가장 많이 발표되는 지역은 서울이다. 서울의 개발은 주로 지역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초고층 빌딩을 세운 뒤 이를 중심으로 상업ㆍ업무ㆍ주거 시설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계획된다. 서울에선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도심복합단지(MXD)가 5곳 추진됐지만 현재 롯데의 ‘월드타워(123층)’를 제외하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인천 지역은 수많은 메가 프로젝트가 좌초되거나 올스톱 상태에 놓인 ‘블랙홀’과 다름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8월 무산된 ‘에잇시티’ 사업이다. 에잇시티의 예상 사업비는 317조원에 달했다. ‘단군 이후 최대’라던 용산 개발의 10배다. 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천문학적 규모다.

앞서 언급한 영종도 역시 수많은 메가 프로젝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발표되는 곳이다. 무려 40조원 규모의 투자 플랜이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무산된 사업의 이름은 물론 규모 역시 휘황찬란하다. 밀라노를 본떠 디자인 산업의 메카를 만들겠다며 2007년 계획한 ‘밀라노디자인시티 프로젝트(사업비 3조7500억원)’, 2008년 발표한 ‘MGM테마파크(1조2000억원)’, 2009년 뮤지컬 전용 극장 10개를 포함한 복합 문화 단지로 계획했던 ‘영종브로드웨이(13조원)’ 등이 모두 무산된 상태다. 물론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발돋움한 인천공항이 들어선 이 지역은 ‘사업성’ 자체는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인천에는 못 미치지만 경기도 역시 상당한 공수표가 나돈 지역이다. 경기도 화성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업이 대표적이다. 계획은 이랬다. “2007년 말 시화 방조제 건설로 바닷물이 빠져나가 생긴 땅(420만㎡)에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를 지어 매년 관광객 100만명을 끌어 모으겠다. 이를 위한 사업비는 총 5조1000억원.” 하지만 이 같은 청사진은 6년째 ‘서류상 계획’으로 남아 있다. ‘땅값’이라는 걸림돌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수원의 ‘에콘힐’은 사업 자체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에콘힐은 광교신도시 진입부(11만7611㎡)에 2조1000억원을 투입해 주상복합ㆍ오피스텔ㆍ상가 시설 등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2009년 3월 대우건설과 산업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했지만 경기침체 등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경기도시공사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에콘힐 사업은 2013년 6월 25일 민간 출자사들이 만기가 도래한 에콘힐 사업의 자산 유동화기업어음(3700억원)을 납부하지 않자 다음날 경기도시공사가 협약 해지 통보를 하며 무산됐다.
 
▲ 카지노 등 복합시설단지 설립인가로 영종도에 개발붐이 일고 있다. 하지만 메가 프로젝트의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사진=뉴시스]
좌초되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

서울ㆍ경기권을 제외하고도 좌초되거나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들은 수두룩하다. 충남의 ‘아산배방 복합단지’ 개발 사업, 이른바 펜타포트 프로젝트는 사업 규모가 크게 축소됐고, 서남해안을 관광 레저형 벨트로 만드는 이른바 J프로젝트 역시 10여년간 공전 중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제 대규모 개발사업이 빛을 보던 시기는 사실상 끝났다고 분석한다. 메가 프로젝트의 잇단 무산으로 투자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시 재개될 가능성도 적다. 메가 프로젝트 사업이 다시 진행되기 위해선 부동산 가격이 충분히 떨어져 사업성이 생기거나 외국인 수요증가 또는 정책변화 등 수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성공한 메가 프로젝트의 대표 모델로 꼽히는 일본의 롯폰기힐스를 보면, 시행사가 수차례 부도를 낸 끝에 사업비가 저렴해지자 대형 디벨로퍼인 모리부동산이 인수해 성공했다.
장경철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2002ct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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