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ㆍ원천기술 경제학

‘혁신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바꿔놓은 게 있다. ‘융합’의 가치를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세운 것이다. 하지만 오류가 있다. 융합은 이것저것 섞는 게 아니다. 가치 있는 기술을 의미 있게 결합하는 게 융합이다. 다시 말해 기초ㆍ원천기술이 없으면 잡스의 할아버지가 와도 ‘융합’을 못한다는 얘기다. 우리 기초ㆍ원천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 기초·원천기술 강국이 선진국이다. 연구실의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진=뉴시스]
과학기술의 시대다. 첨단기술이 없으면 냉엄한 ‘경제정글’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막대한 자본을 들여 기초ㆍ원천기술 연구개발(R&D)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1위 연구개발(R&D) 투자국 미국은 한 해 4152억 달러를 쏟아 붓는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의 R&D 투자규모는 492억 달러로 일본(1998 억 달러), 중국(1344억 달러), 독일(1039억 달러), 프랑스(624억 달러)에 이어 6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 D 비중은 4.38%에 달한다. 이스라엘(4.38%)에 이어 세계2위다.

R&D 투자규모만 많은 것도 아니다. 실적도 괜찮다. 한국의 SCI급 과학기술논문은 2011년 4만4718편이 발표됐다. 세계 11위로, 점유율은 3.55%다. SCI는 과학기술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데이터베이스를 말한다. 분야별로 집계해 보면, 재료과학(3위), 컴퓨터과학(5위), 물리학(8위), 약리학ㆍ독성(8위), 화학(9위), 미생물(9위), 생물학ㆍ생화학(10위) 등이다. 문제는 이런 R&D를 발판으로 개발된 기초ㆍ원천기술을 사업화하는 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기술이 사업화되기 전 특허괴물이 먼저 낚아채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의 고리를 어디부터 풀어야 할까.

 
첫째 문제는 기초ㆍ원천기술 개발자가 사업화를 꾀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사업화 관련 전문적인 지식도, 경험도 없다. 그렇다고 사업화 정부예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정부 R&D 예산의 1% 미만이다. 미국 3.2%, 중국 5% 보다 훨씬 적다. 시간적 제약도 있다. 기초ㆍ원천기술이 개발된다고 당장 사업화가 되는 건 아니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수많은 검증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시간과 자본이 필요한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신약개발의 예를 들어보자. A기관이 신약개발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임상실험을 반복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이 기간 고비용의 투자가 진행돼야 함은 물론이고, 실패 리스크 또한 있다. 이런 인고의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우리의 과제다.

주무부처가 두 개로 갈려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이명박 정부까지 기초ㆍ원천 R&D는 교육과학기술부, 개발된 결과물의 사업화는 산업부가 맡았다. 두 부처는 기초ㆍ원천 R& D와 사업화를 잇기 위해 산ㆍ학협력대학사업을 추진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다. 체계적인 제도가 부족했을뿐더러 컨설팅, 금융투자 등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기초ㆍ원천 R&D와 사업화를 아우르게 된 건 의미 있는 변화다. 미래부는 신규사업의 경우, R&D 초기부터 철저하게 사업화를 고려해 추진한다. 진행 중인 사업은 ‘미래기술마당’을 통해 단계적으로 관리를 해준다. 기업에 필요하다면 컨설팅ㆍ인큐베이팅ㆍ융자ㆍ기술가치평가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신산업창조프로젝트도 눈길을 끌 만 하다. 이는 신산업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융합형 기술을 초단기로 지원하는 것이다. 기초ㆍ원천 R&D 실적을 바탕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사소한 아이디어도 사업화할 수 있는 ‘창조경제타운’ 시스템도 궤를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이는 제안된 아이디어를 전문가들이 멘토링해 사업화로 연계해주는 프로젝트다. 올 3월 현재 접수건만 6300건에 달한다. 그중 4000건은 전문가들의 ‘멘토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급했듯 기초ㆍ원천기술이 없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이후 ‘융합’이 키워드로 부각됐지만 기초ㆍ원천기술이 없으면 ‘융합’은 꿈도 꾸지 못한다. 기초ㆍ원천기술의 R&D 투자, 그리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MINI Interview 이근재 미래부 연구개발정책관

“개발자 옥죄는 규제 완전히 풀겠다”

▲ 이근재 미래부 연구개발정책관은 "미래부의 추진사업만은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없앨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창조경제의 핵심은 기초ㆍ원천연구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다른 점은 뭔가.
“이명박 정부는 R&D의 성과를 지식창출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판단했다. 박근혜 정부는 R&D 성과의 ‘사업화’를 중요시한다. 기초ㆍ원천연구의 결과물이 산업계에 널리 활용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신규사업은 R&D 기획단계에서부터 사업화를 고려한다. 진행 중인 연구는 연차단계평가를 통해 사업화 가능성을 컨설팅해 준다. 성과가 도출되면 ‘미래기술마당’을 통해 사업화 유망기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수요기업과의 매칭을 지원한다. 우수한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인큐베이팅 R&D에서 기술보증 융자지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시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술 가치평가 체계를 마련해 기술거래ㆍ창업ㆍ금융지원을 유도할 플랜도 세워놨다.”

✚ 특히 신산업창조프로젝트가 눈길을 끈다.
“이 프로젝트는 신산업을 창출할 가능성이 큰 융합형 기술을 초단기로 지원하는 것이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기술개발 성과를 제품과 서비스 창출로 연계하는 게 목표다.”

✚ 민간과의 공조시스템이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 신사업창조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민간의 전문가와 공조가 잘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민간 기술사업화 전문가단과 긴밀한 연계시스템을 구축했다.”

✚ 사회문제 해결형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과학기술은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사회문제 해결형 사업의 목적은 국민이 실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모든 과학기술을 접목해 기존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창출하는 게 목표다.”

▲ 올 3월 미래부 주최로 열린 2014창조경제 글로벌포럼 개최식에서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기초ㆍ원천연구개발사업 추진 과정에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정부의 꾸준한 R&D 투자가 우리의 빠른 산업화를 견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초ㆍ원천연구의 특성상 성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기술이 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기초ㆍ원천연구의 중요성과 성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상황이 왔고,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을 듯하다.”

✚ 국민이 R&D 효과를 체감하려면 사업화가 전제돼야 한다.
“당연하다. 유망기술이 산업계로 연계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하는 게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 하지만 기초원천기술이라는 게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크지 않은가.
“그렇다고 도전하지 않을 순 없지 않나. 실패 가능성이 큰 분야에 도전해야 세계시장을 리드할 만한 기술이 개발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미래부는 실패를 용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테면 ‘성실실패 용인제도’에 대한 사항을 명시해 놓은 ‘범부처 연구개발 재도전 가이드라인’이 그것이다.”

✚ R&D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규제도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R&D는 창조적 발상의 수행이다. 개발자를 심하게 규제 또는 제재한다면 R&D 성과 낮을 수밖에 없다. 미래부의 추진사업만은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없앨 계획이다.”
박병표 기자 tikitiki@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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