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 근무가 태만한 직원에겐 공식적으로 경고 시그널을 주는 게 좋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이 밀린다. 생활에 어려움을 느껴 퇴사했지만 사업주는 월급을 줄 생각이 없다. 결국 체불임금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 사업주가 ‘근무태만’을 주장하며 월급을 줄 수 없다고 버틴다. 어떻게 해야 할까.

A는 인터넷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중이었다. 그런데 회사 형편이 어려워 10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대표이사인 B는 회사 형편이 좋아지면 한꺼번에 밀린 월급을 주겠다고 하면서 A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B는 A에게 월급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A는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던 A는 퇴사를 했다. 그리고 여전히 월급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된 급여를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대표이사 B는 A가 근무에 태만했으므로 급여가 감액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A로서는 B의 주장에 가까스로 분노를 억눌러야 했다. 근무태만이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근무하는 동안 근무태도에 대해 어떤 지적도 받은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걸까.

 
일전에 회사가 태업을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과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를 삭감해 지급한 사안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쟁의행위 시 임금 지급에 관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서 규정하거나 그 지급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약정이나 관행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면 쟁의행위 기간 근로자의 주된 권리인 임금청구권은 발생하지 않는다.

태업怠業은 근로제공이 일부 정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대법원은 덧붙였다. “회사가 태업을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과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를 삭감해 지급했을 때 회사가 각 근로자별로 측정된 태업시간 전부를 비율적으로 계산해 임금에서 공제한 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다. 노동조합 전임자 역시 그에 상응하는 비율에 따른 급여의 감액을 피할 수 없는데 감액수준은 전체 조합원들의 평균 태업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함이 타당하다.”

이 판례는 쟁의행위기간에 근로를 제공하지 않거나 불완전하게 제공한 경우에 그에 비례해 임금을 감액할 수 있음을 확인한 특수한 사례다. 이에 따라 근무장소에 출근해 근로를 제공했지만 직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되는 경우까지 이 판시를 확대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퇴사 후 근무태만 ‘설득력 떨어져’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한 싸이가 군대를 두번 갔다 온 게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현역 입영대상자였던 싸이는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를 했지만 해당 분야에서 실제로 근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역입영통보를 받은 거였다. 근무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돼 재입영통보가 내려졌지만 만약 근무를 게을리 한 정도였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근무태만을 계량화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A가 B의 주장대로 근무를 태만히 했다면 B는 주의를 주는 등 징계를 하거나 퇴사처리를 했어야 한다. 근무 중에 아무 말 없다가 소송을 당하자 ‘근무를 태만히 했다’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장을 입증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B는 A에게 모든 월급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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