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기대주 ‘NFC의 눈물’

2004년 노키아ㆍ소니 등 글로벌 기업이 기대주로 꼽은 기술이 있다. ‘근거리무선통신(NFC)’이다. 이런 NFC 기능은 선보인 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모바일 결제의 기대주에 머물러 있다. 현금과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기존 결제방식을 뛰어넘을 만한 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NFC가 모바일 결제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진부한 사용자 경험과 산업계 간의 주도권 싸움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모바일 결제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16년 모바일 결제 이용자가 4억4800만명, 결제금액은 61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의 모바일 결제다.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SA)는 지난해 판매된 스마트폰의 32.5%(3억300만대)에 NFC 기능이 탑재됐을 것으로 예측했다. 가트너는 NFC 모바일 결제량이 2015년이면 35억500만건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0년 3억1600만건에 비하면 11배나 증가한 수치다.

모바일 결제시장은 NFC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결제로 양분돼 있다. NFC는 단말기 간의 거리가 10㎝ 이내면 무선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비非접촉식 통신기술이다. 단말기에 NFC 기능을 탑재하면 상품대금 결제나 대중교통 요금을 모바일로 결제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이 NFC 모바일 결제의 성장을 예견한 이유는 뭘까. 2011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NFC 기능이 탑재된 단말기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시장조사기관은 NFC가 모바일 결제시장에 정착하는 원년을 2011년으로 본 셈이다.

 
그런데 최근 NFC 모바일 결제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 NFC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내다봤던 가트너가 대표적이다. 가트너는 2013년 산업예측보고서를 통해 ‘2014년까지 NFC 모바일 결제방식을 활용하는 이용자의 비중이 2%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랫동안 기대주로만 꼽혔던 NFC 모바일 결제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출발은 화려했지만 진척이 더디기 때문이다. NFC는 2004년 노키아ㆍ소니ㆍ필립스 등 글로벌 기업을 주축으로 조성된 NFC포럼에 의해 탄생했다. 이후 삼성전자ㆍ모토로라ㆍ마이크로소프트가 합류했고 현재는 IT기업, 금융사 등 140여개 기업이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2007년 노키아가 세계 최초로 NFC 기능이 지원되는 이동전화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첫째 요인은 ‘진부한 사용자 경험(UX)’에 있다. 시장조사기관이 언급한 NFC의 한계를 살펴보자. 2011년 가트너는 NFC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NFC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려면 최소 4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비자가 현금이나 신용카드 대신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도록 설득하려면 그만큼 시간과 투자가 소요된다는 이유에서다. 전통적인 결제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NFC 모바일 결제가 기존 결제방식을 대체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느냐다. 현금과 신용카드 등 전통적인 결제방식과 모바일 신용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거나 휴대전화 메시지(SMS) 인증을 통한 결제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NFC 모바일 결제는 이런 결제방식을 버리고 사용할만한 차별화된 특성이 거의 없다.

생각보다 높은 결제습관의 벽

결제정보처리업체(VAN) 관계자는 “NFC 모바일 결제가 기존 결제 시스템을 대체하려면 그만한 장점이 있어야 하는데 기존 결제 시스템이 가진 편리성이나 포인트 혜택 제공 등 UX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독특한 UX로 NFC 모바일 결제만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NFC 모바일 결제에 대한 인식이 낮다. 2011년 6월 모바일 리서치기관 레트레보가 실시한 NFC 탑재 스마트폰 구매의향에 관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9%가 ‘NFC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해 5월 구글이 NFC 모바일 전자결제서비스 ‘구글 월렛’을 출시한 점을 감안하면 NFC가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가 NFC 모바일 결제를 외면한 것은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양상이 아니다. 국내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야심차게 추진한 ‘NFC 기반의 모바일 카드 시범사업’은 소비자와 가맹점의 NFC 모바일 결제 인식 부족만 확인한 채 끝났다. 방통위는 서울 명동 200여개 가맹점에 NFC 결제기와 태그 스티커를 설치해 NFC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면서 탄력을 받았고, 그 결과 이동통신사ㆍ금융사ㆍ제조사가 모여 협의체를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사업결과는 기대치를 한참 밑돌았다. 그해 1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명동지역 NFC 가맹점의 월 결제건수는 가맹점 당 10건 미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요인은 사업자 간 헤게모니 싸움이다. 시범사업에 실패한 사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NFC 시장을 함께 넓히려던 계획을 접고 이동통신사는 이동통신사끼리, 금융사는 금융사끼리 뭉쳐 NFC 모바일 결제시장을 장악하려 했다.

실제로 KT는 2012년 모카 얼라이언스를 출범하며 NFC 기술이 기반인 모바일 결제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엔 결제시스템 전문기업, 금융사, 유통사, 가맹점, 사회공헌단체 등 60여개사가 참여하고 있지만, 주도권은 KT에 있다. 이동통신사가 모바일 결제시장을 주도하려고 하자 금융권이 반격에 나섰다. 금융결제원과 국내 16개 은행은 지난해 뱅크월렛을 출시했다. 뱅크월렛은 은행에서 발급하는 현금카드와 충전형 선불카드인 뱅크머니를 스마트폰에 탑재한 것으로 KT의 모카 얼라이언스 대항마로 꼽힌다. 역시 NFC 기술이 기반이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금융사 나름대로 NFC 모바일 결제시장을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통신사와 대결구도를 형성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헤게모니 싸움하다 방향 잃어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NFC 시범사업에 참여한 명동 가맹점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뉴시스]
문제는 다양한 사업자가 NFC 모바일 결제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현금ㆍ신용카드 결제를 뛰어넘을 만한 UX는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헤게모니 싸움에 집중한 탓에 정작 UX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은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윤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02년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가 모바일 결제를 선도하고자 RF 무선기술을 활용한 모네타 단말기의 실패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네타 서비스 사업은 이동통신사가 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약 56만대의 동굴(모바일 결제 단말기)을 보급했지만 진부한 UX와 사업자 간의 갈등 탓에 중단됐다.

“지금의 NFC 모바일 결제는 당시 모네타 모바일 사업 상황과 흡사하다. NFC 활용 단말기와 각종 서비스 등 인프라는 갖춰졌지만 사업자 간의 이해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다.” ‘실패했던 서비스와 차별화 없는 UX를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영원한 기대주에 머물러 있는 NFC가 새겨들어야 할 점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