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철회 후 100일의 기록

▲ 철도노조 파업 철회 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노사관계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30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철도노조의 최장기간 파업이 끝났다. 여야가 철도산업 발전을 위한 국회 소위원회 구성에 합의하면서다. 그로부터 100일이 흐른 지금, 철도노사는 ‘상생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4월 9일 철도노조원 2명은 수색역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다시 원점이다.

“여야 합의문에서 빠진 162억원의 손배가압류, 노조원들에 대한 중징계 계획과 고소고발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사 화합은커녕 갈등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레일과 철도노조의 현재 상황을 들여다보고 표현한 말 같다. 하지만 이 말은 올 1월 초 철도노조의 파업철회과정을 지켜본 노사문제 전문가의 우려인데, 이는 현실이 됐다. 철도노사의 갈등이 지난해 연말보다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사측이 징계ㆍ순환전보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원 한명은 숨을 끊었고, 노조원 2명은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일단 철도파업 철회 후 100일을 되돌아보자.

지난해 12월 30일 철도노조는 22일간의 파업을 철회했다. 하지만 모든 갈등의 고리가 풀린 건 아니었다. 파업과정에서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노조측 재산 116억원 가압류, 파업노조원에 대한 고소고발과 징계조치 등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는 협상을 벌였지만 갈등에 불을 지핀 사건이 터졌다. 1월 2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신년사에서 “철도노조에 대해 파업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노사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1월 3일 사측이 “열차운행을 10일 후인 14일 정상화할 것”이라고 하자 노조측은 “업무복귀를 다 했고, 이틀이면 정상화할 수 있다”며 맞받아쳤다. “정상화를 늦춰 파업으로 인한 책임을 노조측에 돌리려는 여론몰이를 하지 마라”는 일침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월 7일 야당 의원들이 최 사장을 만나 파업노조원들에 대한 징계수위 조절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사장은 ‘법과 원칙’만을 강조했다. 결국 1월 9일 파업노조원 500여명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노조측은 ‘보복성 징계’를 규탄했다.

1월 16일에는 최 사장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지역구 당협위원장 임명에 대해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조측은 “정치적 속셈이 있었던 게 아니냐”며 비판했다. 사측도 가만있지 않았다. 파업으로 코레일의 브랜드가치가 떨어졌다며 노조에 10억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노조는 국토부가 진행한 철도노조 파업 관련 광고비를 코레일이 대줬다는 이유로 최 사장을 배임횡령죄로 고발했다. 2월 초, 사측은 화물열차 등에 ‘1인 승무 시범운행’을 발표했다. 노조는 안전성과 인력감축 우려를 나타내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2월 25일 노사교섭이 진행됐다. 불신이 큰 만큼 문제가 풀릴 리 없었다. 당시 노조측은 임금협상ㆍ정년연장ㆍ1인 승무 시범운행 중단ㆍ손배가압류 철회ㆍ강제전출 철회 등을 요구했다. 사측은 임금동결ㆍ정년연장 불가, 징계 최소화와 손배가압류 철회 수용 불가ㆍ1인 승무 시범운행 철회 불가ㆍ순환전보 강행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에 실패하자 노조는 경고파업을 감행했다.

3일 후인 2월 28일 사측은 404명의 파업참가 노조원에 대한 징계내용을 발표했다. 파면 26명, 해임 104명, 정직 251명. 감봉 23명이었다. 노조는 “불법파업 여부에 대한 사법부 판단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중징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속적으로 맞섰다.

 
3월 24일 사측은 ‘순환전보와 정기 인사교류 시행계획’을 내놨다. 연 2회에 걸쳐 현장 직원 5~10%(코레일 총 직원이 약 3만명, 노조원이 약 2만명)를 순환전보하겠다는 거였다. 노조는 보복성 징계와 ‘강제전출’이라며 규탄했고, 철회를 요구했다. 3월 31일 최 사장이 참석한 노사교섭이 진행됐지만 또다시 교섭은 결렬됐다. 상황은 4월 들어 더 악화됐다. 노조원 조씨가 4월 3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다. 노조는 우울증을 앓던 고인이 순환전보에 불안해했다며 ‘사회적 타살’이라 주장했고, 사측은 “유서엔 순환전보의 내용이 일체 없었는데 엉뚱한 곳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사측이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726명에 대한 순환전보는 강행됐다. 사측은 순환전보 거부시 엄정 대처를 통보했고, 4월 9일 노조원 2명은 ‘강제전출’을 규탄하며 수색역 고공철탑에 올랐다. 사측은 철탑 농성자에 대해서도 추후 업무방해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철도파업 철회 후 100일의 기록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싸움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4월 3일 지하철 4호선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는 거다. 열차가 차고지에 들어가며 벌어졌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철도 안전을 함께 책임져야 할 노사가 이렇게 대립하는 상황이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코레일 노사갈등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철도노사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철도노조는 이렇게 주장한다. “손배가압류를 풀어주지 않는 건 노조파괴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징계는 지도부에만 국한하면 된다. 굳이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건 과하다. 순환전보가 이렇게 대규모로 이뤄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사전에 협의를 했어야 한다. 사측이 노조와 협의를 하지 않으니 노조원들이 개별적으로 철탑에 올라가는 것 아닌가.”

사측 관계자는 “인사권은 경영자의 고유권한으로 협의나 교섭의 대상이 아닌데도 협의를 거쳐 해당 인원을 줄여줬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 불법파업을 벌인 만큼 파업노조원들에 대한 징계는 엄정할 수밖에 없다. 순환전보는 지난해부터 논의돼 온 얘기다.”

철도노사갈등이 더 깊어질 것으로 예견했던 강수돌 고려대(경영학) 교수는 “철도노사관계는 한국의 노사관계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철도파업은 국회가 개입되면서 갑작스럽고 엉뚱하게 마무리됐다. 원칙적으로는 노사 혹은 노사정이 같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측이 노조를 경영의 파트너로 보지 않고 경영의 장애물로 보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사측이 노조를 무력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를 경영파트너로 보지 않는 한 코레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대립적인 구도는 계속할 수밖에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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