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이순신공세가 ⑪

거북선에 탄 아군을 적이 쏘아 죽이긴 어려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북선의 외피는 철갑, 중요한 곳은 철괴鐵塊로 만들어 적선과 부닥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듯했다. 갑판은 철판으로 덮고, 그 위에 예리한 송곳과 칼날을 수없이 박아, 적들이 뛰어내리기도 어렵게 했다.

 

▲ 이순신이 만든 괴철갑선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날, 전라좌수영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좌수영 수군 장졸의 총명칭은 대솔군관(장수를 수행하는 군관) 이하로 비장裨將, 영교營校, 영리營吏, 진무鎭撫, 별무사別武士, 성장城長, 주사화포수舟師火砲手, 타공舵工, 능노군能櫓軍, 마도사령馬徒使令, 군뢰軍牢, 별기대別旗隊, 취고수吹鼓手, 차패車牌, 관노官奴, 통인通引, 궁인弓人, 시인矢人, 선장船匠, 야장冶匠, 혁공革工, 칠공漆工, 도창수刀槍手, 은금세공銀金細工, 선자扇子, 목수木手, 골각공骨角工 등이었다.

이들 18반 12장색을 합해 군졸의 총수가 1800명이었다. 그중 건장한 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고 나머지는 노약자나 군적에 이름만 있을 뿐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순신은 장정과 기술자를 선발해 병력을 3배 이상으로 늘림과 동시에 충의와 신의로 훈련하고 보살폈다. 그러자 군대의 질서가 차츰 갖춰졌고, 장졸들의 사기가 좋아졌다. 나라를 위해 죽기로 싸울 마음이 크게 일어난 것이었다.

순신이 특별히 괴이한 군함을 만드니 그 형상이 거북과 같다. 세계 최초의 장갑철선이었는데, 이를 새로 발명해낸 사람이 이순신이었다. 순신이 몸소 도편수가 돼 조성한 군함이었던 거다. 하지만 이 배는 진통 끝에 만들어졌다. 이순신의 계획에 따라 거북선을 만들 때 물과 배 전문가들은 뒷구멍으로 “새 수사가 어리석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만고 역대에 저런 병선은 처음 본다. 병선이라면 대맹선, 중맹선 등이지 저런 괴형이고도 불편한 배는 건조하여서 무엇하느냐”는 거였다.
 

▲ 이순신은 거북선 외에도 '대장군전'이라는 폭탄을 발명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수사의 아장亞將인 우후(각 도 절도사에 소속된 관직) 김운규金雲珪까지도 “경험 없는 새 수사의 터무니없는 장난질”이라고 비평한다. 그는 “새로 건설하는 거북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자기와 친분 있는 병판에게 보고를 해서 새 수사가 파직당하는 모양을 보리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공무만 마치고 나면 배 짓는 감독을 한다. 그때에 배 만드는 도편수 한대선韓大善은 순신의 지시를 받아 열심히 일하는 유일한 심복이며 동지자였다. 그 외에 수사의 병선 대혁신의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군관 송희립宋希立과 녹도만호 정운鄭運뿐이었다. 나머지는 순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순천부 사람인 송희립은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한다. 담력과 지혜, 그리고 용기가 과인하고 의기가 있는 남아다. 새 수사가 선택해 대솔군관을 삼았다. 녹도만호 정운은 재략을 품은 용장이다. 일찍이 고을의 수령을 지낸 바 있다. 순신이 관하의 진을 순시할 때 녹도의 병선ㆍ군기ㆍ군제가 가지런한 걸 보고 눈에 띄었다.

괴이한 군함 제조, 빈축만 들어

이때는 정승 판서로부터 외방의 수령 변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부패했다. 조선에 4만8800명의 수군, 5960명의 조졸(배를 움직이는 사공ㆍ격군ㆍ조군ㆍ수부를 통칭한 말), 850척의 병선이 있어도 명색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정운 같은 장수를 만난 건 영웅제회英雄際會라고 아니할 수 없는 일이었다. 1591년 4월 거북선이 전라좌수영 앞바다에서 진수되어 나뜨는 날이었다. 거북선이란 것이 물에 나뜨는 걸 보겠다고 좌수영 백성은 물론 각읍 각포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산덩이 같은 거북선에 달린 오색 기치는 바람에 나부꼈다.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조선소 위에 있는 복파정伏波亭에는 수사, 우후, 조방장, 각읍 수령, 각진 변장, 대솔군관들이 군복을 갖춰 입고 열석列席하였다. 복파정 아래에는 수천명 수군과 수백명 조졸이 행렬을 지어 섰다. 군항 내에는 30여척이나 되는 배가 무더기를 지어 떼떼이 떠 있다. 좌수영에 속한 5읍 6진의 군함들도 새 수사의 엄숙한 지휘로 거의 정돈됐다. 그중 녹도 병선들은 전쟁의 경험으로 그 쾌속하고 정예한 모습이었다. 좌수영 병선에 비교한대도 별로 손색이 없었다.
 

때마침 조수가 밀려 왔다. 큰 북소리가 울리자 아단단지(불을 뿜어내는 폭발물)가 터지고 그 속으로 무수한 화전火箭이 나와서 공중에 살별(혜성의 우리말) 흐르듯 날았다. 이 화전도 이순신이 개량한 것이니 적의 간담을 놀라게 하고 적선에 불을 놓자는 취지였다. 이런 아단단지의 소리를 군호로 수천명 수군이 줄을 끌어 산덩이 같은 거북선이 바다 위로 나갔다. 배가 진수되자 군악이 일어나고 배를 만든 일꾼들이 춤추기 시작해 옷자락이 펄럭였다. 군악이 그친 뒤에 우후 김운규가 널빤지를 밟고 거북선으로 올라갔다.

수사와 제장이 다 배에 오르고 160명 거북선의 수군 조졸이 다 올랐다. 대맹선에 군사 80~90명, 많아야 100이고, 중맹선에 군사 60~70명, 소맹선에 군사 30~40명인데 이 거북선에는 선장 이외에 군사가 160명이었다. 그중 40명은 노를 젓되 20명씩 양편으로 갈라서 번갈아 노를 젓고 72명은 귀선의 72 포혈(천지현자 총통銃筒을 배치한 곳)에 한 구멍씩 맡고 36명은 포수의 번을 갈아드는 사람이요 나머지 12명은 거북 머리 안에 불을 놓아 거북의 입으로 독한 연기를 토하게 하는 책임과 취사와 청소를 맡아 하는 군사였다. 천자총통의 중량은 정철 200근이요 지자총통의 중량은 정철 150근이요 현자총통의 중량은 정철 50근이던 것이었다.

이윽고 거북선의 아가리에서 산과 바다를 진동하는 큰소리가 났다. 뒤를 이어 시커먼 연기가 나더니 대완구大碗口의 대포 소리와 함께 화광이 충천하며 무수한 화전이 살별같이 바다 하늘로 쏟아져 나갔다. 그러자 좌우 양편에 걸린 20개의 노가 일시에 물을 당기니 크나큰 거북선이 바람과 물결을 일으키며 살같이 바다로 내달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시없는 군함

좌수영 앞바다를 몇바퀴 돌았다. 관람객들은 경탄 감복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거북선 만세!”를 부르고 즐거워하였다. 녹도만호 정운과 송희립은 “사또, 이런 배가 20척만 있으면 일본은커녕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겠소!”라며 취한 듯이 기뻐했다. 순신의 거북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거북선에 탄 아군을 적이 쏘아 죽이긴 어려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거북선의 외피는 철갑, 중요한 곳은 철괴鐵塊로 만들어 적선과 부닥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을 듯했다. 갑판은 철판으로 덮고, 그 위에 예리한 송곳과 칼날을 수없이 박아놨다. 그래서 적이 아무리 불을 놓으려 하더라도 불이 일지 못하고, 배 등에 뛰어오르려 하여도 뛰어오르는 대로 송곳과 칼날에 끼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시없는 군함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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