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재앙 ‘해병대 캠프 참사’
끝나지 않는 재앙 ‘해병대 캠프 참사’
  • 김건희 기자
  • 호수 89
  • 승인 2014.04.22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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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유스호스텔, 이름 바꾸고 ‘캠프 준비’

지난해 7월 참사가 벌어졌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대책을 마련하고 엄중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9개월이 흐른 지금, 해병대 캠프 사고는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4월 17일 유가족은 진도 앞바다에서 사고재발 방지대책을 촉구했다. ‘진짜 대책’을 마련하라는 울부짖음이었다.

▲ 4월 17일 해병대 캠프 사고 유가족이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로 숨진 희생자에게 묵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년의 남자가 진도 앞바다를 등지고 섰다.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의 원인은 정부의 안전불감증이다. 정부는 사고 때마다 재발 방지대책을 내놨지만 말뿐이었다. 진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사고는 또다시 발생할 것이다.” 사고전문가의 경고가 아니었다. 지난해 7월 태안에서 발생한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 유가족의 호소였다. 그의 우려는 괜한 게 아니다. 해병대 캠프 사고가 일어난 지 9개월 만에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침몰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사고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는 인재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만 인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가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다. 해병대 캠프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정부의 인증을 받지 않은 캠프업체가 해병대 캠프를 운영했고, 바다에 있던 대부분의 교관은 인명구조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태안군청과 여성가족부의 늦장대응이었다.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철저한 사고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정부는 해병대 캠프 사고 직후 또다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회도 문제가 있는 법안을 재검토하겠다며 전문가를 불러 모았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정부와 국회의 대책마련에 힘을 실어줬다. 금세라도 사고가 해결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유가족은 생사를 접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가족은 “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이 흘렀는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며 “철저하게 사고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유가족의 고통은 지난해 7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유가족과 협상을 벌였다. 장례를 치르는 조건으로 유가족이 요구한 사항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부가 받아들인 유가족의 요구사항은 사고재발 방지대책 마련, 사설 해병대 캠프 전면 폐지, 유가족 보상, 관련자 처벌 등이었다. 공주대는 해병대 캠프 사고 희생자의 장례를 학교장으로 치렀다. 사고는 수습됐지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유가족과의 약속이었다. 해병대 캠프 사고가 발생한 지 13일 만에 대책이 마련됐다. 8월 1일 해병대사령부는 해병대와 관련한 상표 11개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다. 그러나 특허청은 이미 해병대 단어가 포함된 상표가 출원됐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방법을 찾던 안전행정부는 올 4월에서야 해병대 부대명칭과 마크 등에 대해 등록 절차를 완료했다.

사고재발 방지대책 허점투성이

사설 해병대 캠프의 난립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설 해병대 캠프 설립을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빈틈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이 태안군청으로부터 ‘업체명 변경 신청’을 승인받은 것이다. 해양유스호스텔은 해병대 캠프 사고가 일어났던 숙박업체다. 법인명 변경 과정에서 사업자등록증에 ‘해병대 체험’ 종목을 명시했다. 태안군청 관계자는 “상호명을 변경하는 데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름만 바꾸면 해병대 캠프를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 지난해 김한길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해병대 캠프 사고 희생자 합동 영결식에서 유가족을 위로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허술한 캠프 운영이 해병대 캠프 사고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편에선 캠프 운영의 토대가 되는 청소년활동진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여성가족위원회) 의원은 ‘청소년활동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사전신고제 도입과 청소년 프로그램 인증 강화다. 청소년 활동을 진행하는 주체는 정부에 의무적으로 사전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빈틈이 있다. 다른 법률에 의해 지도감독을 받거나 종교단체, 부모를 동반한 사설 캠프는 의무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사전신고제가 사고를 방치하는 대책이 아니라는 점과 사전신고제가 수련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올 2월 교육부가 ‘수학여행ㆍ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발표했다. 1~2개의 학급이 모여 청소년활동진흥원의 인증을 받은 곳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대책은 현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특히 수학여행 관련 매뉴얼은 교사들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교사의 말이다. “학급단위 수학여행은 교사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부작용이 있다. 이를테면 수학여행에 필요한 행정업무와 회계처리를 하고, 사전답사까지 진행해야 한다. 교사가 떠안기엔 업무 부담이 크다.”

허점을 보인 사고대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직후 태안군청과 해경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제기됐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에 공유수면사용 허가를 내준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당초 교육부가 유가족에게 약속했던 보상 문제는 시간만 끌었다. 최근에야 해병대 캠프 사고 희생자를 기리고 안전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수목원 조성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희생된 학생들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것은 2번이나 보류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위원회를 구성해 5명의 학생에 대한 의사자 지정을 논의하고 있다”며 “5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사고가 발생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이후식 유가족 대표는 “유가족은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 정치인이 찾아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해서 믿었는데 막상 아이들의 장례를 치르고 나니 주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며 “지난해 8월 교육부 장관과 면담한 이후 8개월 만에 진도 참사현장에서 면담이 이뤄졌다”고 탄식했다. 그는 “사고재발 방지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사고는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객선에 탑승한 인원은 총 475명으로 그중 325명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안전불감증 없애려면…

이후식 유가족 대표는 이번 사고를 이렇게 분석했다. “해병대 캠프 사고와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는 유사한 점이 많다.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강행한 점, 사고 발생 후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점, 미흡한 대처로 학생의 목숨을 잃게 만든 점, 최고관리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이 닮았다. 이는 해병대 캠프 사고에서 나타난 문제가 제대로 시정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유가족이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 산하 프로그램 인증기관 관계자는 정부의 대책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부실한 사고재발 방지대책은 오히려 혼란만 야기한다. 일단 내놓고 보자는 식으로 대책을 마련하게 되면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들에게 안전불감증 경각심을 심어줄 수 없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안전불감증에서 헤어날 수 없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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