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 人災,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재앙

▲ 세월호 침몰 사고 역시 인재人災다. 문제는 이런 인재가 수십년이 지나도록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된다는 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세월호’ 탑승 인원은 총 475명. 구조된 이는 179명으로 절반이 채 안 된다. 구조되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형참사로 기록될 가능성은 커져만 간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이번 사고가 또 ‘인재人災’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1995년 6월 29일 저녁,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은 1500여명의 인파로 북적였다. 백화점엔 음악이 흘렀고, 사람들은 쇼핑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날 저녁 5시 52분, 이곳은 생지옥이 됐다. 20여초 만에 백화점이 붕괴돼서다. 비상식적인 설계변경과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수개월 전부터 건물 곳곳에 균열이 나 있었고, 사고 당일 오전엔 5층 천장이 뒤틀렸으며, 바닥은 돌출됐다. 그러나 경영진은 정상영업과 함께 보수공사만 지시했다. 그날 오후 재앙이 터졌고, 경영진은 고객을 놔둔 채 건물을 빠져나갔다. 501명 사망, 6명 실종, 937명 부상. 한국전쟁 이후 최대 인적 피해였다.

대형참사 사고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인재人災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다. 돈벌이에만 눈이 먼 사업자들은 부실한 공사를 했고, 이상징후가 있었지만 관계자들은 ‘설마’ 하는 안일함으로 대처했으며, 위기의 순간에는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수많은 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침몰을 두고 삼풍백화점이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설마 했던 인재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어서다.

일단 현재 제기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원인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무리한 변침(급속한 항로 변경)’이다. 세월호의 선장인 이모씨와 승무원 등을 조사한 해경 측에서도 “세월호가 110도 가까이 갑자기 항로를 바꾸면서 선박 내에 결박돼 있던 차량과 컨테이너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고, 이로 인해 여객선이 무게 중심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멀미가 심하게 날 정도로 배가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고 발생 해역도 목포~제주, 인천~제주로 향하는 여객선과 선박의 변침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변침은 서서히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배가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무리하게 변침을 했느냐는 거다. 또 하나는 세월호의 무게 중심을 바꿔버린 차량과 컨테이너 화물의 결박상태는 양호했는지다. 변침의 사유가 설득력이 없고, 결박상태가 부실했다면 당연히 선사인 청해진해운을 비롯한 선박 관계자들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인재에는 언제나 징후가 있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건 똑같은 인재가 수십년 동안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재로 인한 사고에는 이상 징후가 있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삼풍백화점의 경우 벽에 금이 가고, 천장이 내려앉고, 바닥이 솟는 등의 징후가 있었다. 1993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의 징후는 ‘기상 악화 경고를 무시한 채 출항’ ‘정원 초과해 승객 탑승’ 등이다. 세월호 침몰 역시 그런 징후가 이미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먼저 세월호가 제작된 지 20년 가까이 된 노후 선박이라는 점과 구조가 변경됐다는 점이다. 세월호(최초 이름은 ‘페리 나미노우에’)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됐고, 일본의 해운사인 마루에이페리사가 2012년 9월까지 약 18년간 운항했다. 같은 해 10월 청해진해운이 이 중고 선박을 사서 지금까지 인천~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일본에선 일반적으로 여객선을 약 15년간 운항하면 새 선박으로 교체한다는 거다. 안전 때문이다. 

물론 관리만 잘 하면 더 오래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호는 두 번의 개조를 거치며 정원과 용적이 두번이나 늘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세월호는 당초 5997t 규모로 건조됐지만, 한달 만에 개조돼 6586t으로 용적이 589t 늘었다. 이후 한국 측에 양도돼 239t(현재 6825t)이 더 늘었다. 탑승인원도 훌쩍 늘었다. 마루에이페리사는 정원 804명으로 운항했지만, 청해진해운에서는 정원 921명으로 운항했다. 승객을 늘리기 위해 구조변경을 통해 객실 등을 증축했다는 얘기다. 총 무게가 828t, 인원이 117명이나 늘었다면 배에 무리가 갔을 수 있다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는 “탑승인원수를 늘리기 위해 세월호를 증축하는 과정에서 배의 균형이 깨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날 만한 징후가 보였다는 얘기다. 

초기 대응 부실하면 대형사고 가능성 ↑

대부분의 인재가 그렇듯 초기대응도 부실했다. 지난해 7월의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2012년 5월에 발생한 부산 노래주점 화재 사고, 2005년 10월에 있었던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기 대응이 미흡하면 사고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번에도 초기 대응은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응급 매뉴얼이 없었다. 승무원들은 충분한 안전교육을 받고, 사고가 발생하면 선장을 중심으로 승객 구조활동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은 위험을 감지하고서도 “움직이지 말고 선내에서 대기하라”는 것 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선장은 ‘1등 탈출자’가 됐다. 삼풍백화점 판박이다. 구명정도 쇠줄에 묶여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 세월호에서 구조작업은 계속 진행중이지만 생존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먼저 솜방망이 사후 조치가 인재를 키운다는 주장이 있다. 일단 사고가 인재라는 의혹이 있더라도 인재로 인정되지 않으면 사고의 책임을 지려는 이들이 없다. 책임 소재가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껏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은 기껏해야 징역 1년~2년 정도다. 그나마도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경우 이준 삼풍그룹 회장을 비롯한 백화점 관계자들은 징역 7년 정도를 선고받았다. 그나마 이게 역대 인재사고 중에서 가장 강한 처벌이다. 각종 구조변경을 허락했던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은 징역 10개월 정도에 그쳤다. 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1995년 4월) 당시 회사 관계자들은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1999년 6월) 당시 회사 관계자들은 징역 1년이 고작이었다. 두리3호 침몰 사고(2012년 1월) 당시에는 해당 선장이 금고 1년에 그쳤다. 단순한 천재지변만은 아니었던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엔 아예 인재로 인정되지도 않았다. 사고가 거듭될수록 형량은 꾸준히 줄어든 셈이다.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의 경우엔 유스호스텔 대표가 징역6월을, 유스호스텔 이사와 해병캠프 운영업체 대표 등은 고작 금고 1년여를 선고받았다.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결정을 내린 이들에 대한 처벌치고는 너무 약하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승객의 구조보다는 자신의 안위만을 가장 먼저 생각한 선장과 무리하게 배 구조를 변경했던 선사 측에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지켜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인재가 끊이지 않는 다른 원인은 돈에 집착하는 사업가들의 행태에 있다. 세월호 역시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객실을 늘렸고, 낡은 배를 싸게 사서 운항했다. 20여년 전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는 기상 상황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원보다 훨씬 많은 승객을 태웠다가 29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성수대교 붕괴(1994년 10월), 삼풍백화점 붕괴의 원인은 공사비를 턱없이 줄인 부실공사였다. 특히 삼풍백화점은 사고 징후가 있는 날에도 영업을 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는 작동도 되지 않는 소방시설이 설치됐다. 

돈만 따지는 행태, 재앙 불러

석정36호 전복 침몰 사고(2012년 12월) 역시 기상악화에도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다 사고가 났다.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공장 폭발 사고(2013년 3월)도 공사기간을 줄이고 작업 효율만 고려하다 화를 불렀다. 인재는 달리 인재가 아니다. 사고에 어떻게 대응하고 처신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이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통곡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건을 이번에도 유야무야 처리한다면 인재는 ‘또’ 터질 게 분명하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인재의 저주를 끊는 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성세대 모두의 몫이다.

 
 
 
김정덕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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