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상품의 예고된 추락

▲ 정책금융상품이 출시됐지만 서민의 재산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상품이 속속 출시됐다. 재형저축과 소득공제 장기펀드가 대표적 상품이다. 이 상품들은 투자할 여력이 없는 서민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실적은 기대치를 한참 밑돌고 있다. 정치권이 이 상품들의 기준을 쥐락펴락한 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두가지 현상이 있다. 임금상승률 둔화와 저금리 기조다. 직장인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재산을 늘리기 여간 어렵지 않아서다. 특히 삶이 팍팍한 서민의 경우에는 저축과 투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됐다. 이런 서민의 생활안정과 재산형성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금융상품이 있다. 지난해 3월 18년 만에 재출시된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ㆍ펀드(재형펀드)와 올해 3월 출시된 소득공제 장기펀드(소장펀드)다.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됐다가 1995년에 폐지됐던 상품으로 고금리와 세제혜택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다. 재형저축상품은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의 근로자 또는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사업자에게 이자와 배당소득에 붙는 소득세 15.4%를 면제해주는 상품이다. 하지만 7년 이내에 중도인출을 하거나 해지하면 그동안 감면받은 소득세를 상환해야 한다. 7년을 유지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소득공제장기펀드는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의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연말정산을 통해 납입액의 40% 최대 24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1년에 600만원을 납입할 경우 240만원에 과세표준 세율 16.5%를 적용해 39만6000원을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을 수 있다. 펀드 수익률을 제외하고 연 6.6%의 이자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입기간은 최소 10년으로 5년이상 가입해야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이전에 중도해지하면 납입액의 6.6%가 추징된다. 두 상품 모두 2015년 12월 31일까지만 가입이 가능하다.
 
상품 도입 초기 두 상품은 투자업계와 금융소비자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저금리와 증시하락의 영향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과세와 소득공제가 매력적인 혜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활성화와 서민금융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몸에 받았다. 특히 재형저축은 시중은행의 과당경쟁이 벌어질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상품의 가입률이 예상을 크게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재형저축의 가입좌수는 155만968좌로 지난해 8월 168만3242좌를 기록한 이후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가입대상자 900만명의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재형펀드는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계좌수는 물론 수익률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재형펀드 68개의 평균 수익률은 3%대로 시중금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재형저축이 소비자의 관심을 잃은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재산형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비과세 혜택을 보기 위해 7년이나 계좌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은 장애물이 됐다. 실제로 1년 납입한도 1200만원에 연 4%의 금리를 적용해 48만원의 이자를 받을 경우 면제되는 세금은 이자의 14%인 6만7200원에 불과하다.

반짝 인기에 그친 서민 정책상품

금융업계 관계자는 “7년이라는 제법 긴 가입기간에 비해 세금감면혜택과 금리혜택이 크지 않다”며 “언제 목돈이 필요할지 모르는 서민층이 재형저축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정금리 재형저축을 출시했지만 금리가 일반 상품과 별 차이가 없다”며 “요란했던 등장과 달리 실적은 초라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출시된 지 한달이 흐른 소장펀드의 실적도 신통치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15일 기준 소장펀드의 전체 가입계좌수는 15만8451계좌로 판매금액 243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금융투자협회는 “30개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소득공제 장기펀드에 가입자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며 “계절적 핸디캡이 작용하는 최근에도 매일 4000~6000계좌가 신규로 유치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득공제 상품의 특성상 연말정산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4분기와 연초에 가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소장펀드 출시 이전 투자업계가 예상한 가입률에 턱없이 미치지 못해서다. 투자업계는 가입률을 소장펀드 가입 대상 근로자 800여만명 중 20%로 예상했다. 또한 납입액을 월 평균 200만원으로 계산해 연간 3조8000억원의 자급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계산하면 한달에 약 3330억원이 유입돼야 하지만 실제 자금 유입 규모는 예상금액의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연말정산이 필요한 4분기와 연초에도 가입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긴 어렵다는 의견은 그래서 나온다.

 
이주용 한국밸류자산운용 차장은 “가입률이 연말이 증가할 가능성은 있다”며 “하지만 근로 소득자의 자금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서 큰 폭의 증가세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자금사정이 나쁜데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아 소장펀드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며 “펀드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아 수요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장펀드의 가입률이 부진한 이유는 가입조건에 있다. 가입기준인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의 2030세대와 서민층 중에는 실질적으로 투자여력이 있는 근로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예견된 일이다. 소장펀드의 도입이 정치권의 반대로 연기되면서 상품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태종 전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새누리당 수석전문위원인)은 “원래의 취지는 서민층에 혜택을 주기 위한 상품이었다”며 “하지만 세수부족으로 세재혜택을 줄이고 있던 정부방침의 영향으로 변형돼 지금의 불완전한 모습이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소장펀드는 2012년 9월에 국회에 제출됐지만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정치권은 서민의 투자 가능성이 낮다는 점과 서민 펀드의 증시 활성화 가능성, 소득공제 상품의 도입 필요성 등을 이유로 소장펀드의 도입을 반대했다. 서 위원은 “서민재산형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웠다”며 “그 결과 실직적인 투자 가능성이 있는 2030세대를 위한 상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최초 법안에는 사업자도 가입 대상으로 포함돼 있었다”며 “하지만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지원 대상자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상 범위가 축소됐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로 축소된 소장펀드

소장펀드를 활성화하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득공제 한도를 더 높이고, 가입조건을 연소득 8000만원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투자기간 감축 여부는 이견이 있다. 투자업계는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펀드상품의 혜택보장기간을 ‘5년 이상’으로 설정한 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장기투자 문화정착’이라는 목적에서 보면 ‘5년 이상’은 과하지 않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서 위원은 “소장펀드에는 장기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5년이상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수확대라는 근시안적인 측면에서 서민금융 상품의 지원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히려 각종 인센티브의 영향으로 소장펀드가 활성화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