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세상 사는 고위공직자들

▲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고위공직자들의 망언과 망동이 끊이질 않았다.[사진=뉴시스]
세월호 침몰 사고와 함께 ‘국가가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의 망언과 망동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그런데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민생현안을 다룰 때도 이들은 늘 국민 정서와는 따로 놀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전 국민이 통곡하고 있다. 이면에는 사고의 책임이 승객을 외면한 선장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인재人災에 약한 사회시스템을 만든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는 반성도 깔려 있다. 이런 상황을 더 화나게 만드는 건 허술한 시스템으로 구조활동을 체계적으로 펼치지 못한 정부와 이상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는 고위 공직자들이다.

사고 당일인 4월 16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임시보호소로 사용되고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그것도 피해자 진료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어 물의를 일으켰다. 이틀 뒤엔 피해자 빈소에 가서 서 장관의 수행원이 피해자 유족에게 “장관님 오십니다”는 말로 의전을 요구해 서 장관이 쫓겨나기도 했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16일 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야식으로 치킨을 먹으며, 잠수부들이 야간 수색작업을 벌인다는 뉴스를 시청했다. 17일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SNS를 통해 현장을 다녀온 소감이라면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과 국민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자작시를 올려 구설에 올랐다.

시신이 인양되면서 격앙된 피해자 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친 20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고작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자신의 차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같은 날 저녁 송영철 안전행정부 국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찍으려 했다가 해임됐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SNS에 “피해자 가족인 척 행세하며 정부 비난을 선동하는 이들이 있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다. 유한식 새누리당 세종시장 후보자는 이런 상황에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해 논란이 됐다.

 
 
사고 이후 일반 국민이 느끼는 정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발언과 행동들이다. 하지만 이런 행태들이 비단 이번 사고에서만 나타난 건 아니다. 올해 2월 여수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GS칼텍스가 1차 피해자”라고 말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2010년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최저생계비로 황제식사가 가능하다”는 말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엉뚱한 행동에 된서리 맞기 일쑤

문제는 국민 정서와 완전히 다른 그들의 사고방식이 민생 현안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걸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뒷전으로 밀어놓고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기초연금법안을 도입하려 하는 건 대표적인 사례다.

기초연금 도입과 관련한 최근 모 방송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ㆍ여당의 주장대로 ‘국민연금 장기가입자가 기초연금을 적게 받는 등 문제점이 있더라도 빨리 여야가 서둘러 합의해야 한다’는 의견은 36.2%에 불과했다. 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은 61.3%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일방통행식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올해 2월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사회안전망 기능을 못하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양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개정안’은 국민적 요구와는 다르다. 전문가들은 이 개정안에 대해 지난 14년간 국민의 생존권 보루 역할을 해왔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까지 뒤흔들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진영 서강대(사회복지학) 교수는 3월 참여연대에서 열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관련 간담회에서 “개정안은 최저생계비를 폐기하고 ‘최저보장수준’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도록 했고, 생활보장위원회가 그 수준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생활수준이 낮은 국민이 최저생계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권리로 보장받아온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부의 장이 자의적으로 기준을 결정하면 수급자의 권리가 부정되고 행정 재량형 프로그램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원섭 충남대 공공보건의료사업실 교수는 “최근 세 모녀 사건의 경우 만성질환이 있던 큰 딸의 치료비로 가정의 빈곤이 가중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빈곤층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은 정부와 여당으로 인해 기초연금 연계 논란, 의료민영화 논란에 휩싸여 이런 수준의 논의는 요원하다.

이 외에도 국민 가계부채가 1000조에 달하는 상황에서 ‘빚내서 집사라’는 식의 부동산 정책, 올해 예산안에서 국가장학금 예산 증액이 4000억원(필요금액은 약 4조원)에 그친 반값등록금 정책, 대기업 건설사의 배만 불리는 분양가상한제 폐지 논의 등 99%를 차지하는 다수 국민을 배신하는 정책은 셀 수가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 당시 배 수명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세월호가 운항할 수 있었던 점이 이번 침몰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완화 정책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말과 행동이 나타나면서 정부를 신뢰하는 국민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국민이 이후 소식에 귀를 기울이던 17일, SNS에서는 ‘세월호에 관심이 집중된 틈을 타 국회가 민감한 법안들을 날치기통과 하고 있다’는 글이 떠돌아다녔다. 사고 당일에 ‘주한미군주둔비용 증액(연간 9200억원) 전격 통과’, ‘수서발 고속철도(KTX) 매각방지 법제화 무산’ ‘철도요금과 운임 인상’ 등이 국회에서 이뤄졌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민생법안, 서민 외면하는 이유

물론 비슷한 시기에 이런 사안들이 결정된 것은 맞지만, 사고일보다 앞서기 때문에 ‘틈을 타서’ 날치기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건 국민이 정부의 말보다 혹은 방송과 언론보다 SNS를 더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를 ‘공동체 내에서 예측 가능한 약속’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신뢰가 두텁게 형성된 사회는 불필요한 규제가 사라져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 법에 대한 의존이 크면 클수록 신뢰는 작아진다.” 현 정부와 고위 공직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하는 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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