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굴뚝에선 연기가 난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것을 인과관계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결과에 인과관계가 인정이 될까. 그렇지 않다. 인과관계 규명은 여전히 어렵다.

▲ 법을 적용할 땐 인과관계를 잘 따져야 한다. 담배소송이 그 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이 있다. 불을 지폈으니 연기가 난다는 이야기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말도 일맥상통이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다. 어떤 결과가 나왔다면 필히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듯 세상사를 지배하는 법칙을 우리는 인과법칙이라고 한다. 법률에도 인과법칙이 적용된다. 어떠한 행위가 있고 그다음 결과가 발생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 행위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인과관계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에 대해서는 결과를 발생시킨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기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행위와 결과 간 인과관계를 따져보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경우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형법상은 행위와 결과 사이에 상당성이 있으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는 건 아니다. 특정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사회경험상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행위에만 인과관계가 있고, 형사책임의 기초가 된다. 이를 상당인과관계설이라고 부른다. 민법상 불법행위책임을 묻는 경우에도 인과관계를 요건으로 한다. 법원 판례 입장도 상당인과관계설에 근거한다. 결국, 행위와 결과 사이에는 많은 사실들이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앞 사실에서 뒷 사실이 초래되는 게 일반적이라면 양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인과관계가 문제됐던 사례를 보자. 피해자의 얼굴을 강하게 때려 사망에 이르렀다면 폭행과 사망의 인과관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무심코 뺨을 때렸는데, 뺨을 맞은 이가 뇌수종을 앓고 있어 뇌압상승으로 사망한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땐 뺨을 때린 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뺨을 때린 정도라면 일반적으로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뇌수종이라는 피해자의 특이체질로 인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좀 더 최근의 사례를 보자. 어떤 운전자가다른 운전자와 차선 변경 문제로 시비가 붙자 고의로 고속도로에서 상대 차량 앞에 갑자기 차를 세웠다. 이로 인해 다툼이 있었던 차량을 포함해 뒤따르던 3대의 차량이 급정거했지만 다섯번째 차인 트럭이 앞차를 들이받으면서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그 결과, 트럭 운전자가 숨지고 6명이 다쳤다. 법원은 고의로 차를 세운 사람에게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차를 고의로 세운 행위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또 다른 최근의 이야기는 이른바 ‘담배소송’이다.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다 암에 걸렸다고 국가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흡연과 폐암 발생 사이에 역학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더라도 폐암은 흡연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이고 환경적인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어 흡연자가 폐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법원도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소송이 제기된 지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으니 말이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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