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자녀 리스크

▲ 정몽준 의원은 “세월호 사건에 대응하는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막내아들의 SNS 발언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진=뉴시스]
재벌가 자녀 중 경영수업을 받는 이들은 많다. 말이 수업이지 엄청난 힘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기도 한다. 잘못된 판단으로 기업에 리스크를 준 사례도 많다. 철 없는 행동으로 그룹 이미지가 순식간에 망가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아들의 SNS 때문에 궁지에 몰린 정몽준 의원처럼 말이다. 재벌 자녀 리스크를 살펴봤다.

“제 막내아들의 철없는 행동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모든 것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는 막내아들 정예선씨의 SNS 발언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정 의원은 6ㆍ4 지방선거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예비후보다. 이번 사건은 선거에 나서는 정 의원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은 아들의 발언(18일) 후 3일 만에 공식 사과했다. 현재 막내아들과 함께 자택에서 자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정치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의 지분 10.15%를 보유한 대주주다. 현대중공업의 일반적인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회사 명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과 관련해선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한다. 정 의원의 장남인 정기선씨는 지난해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조직문화 거스르는 자녀도 많아

정 의원이 사죄 기자회견을 한 4월 21일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전일 대비 1000원(0.4 8%) 하락한 20만9500원을 기록했다. 3일 뒤인 4월 24일에는 20만2500원으로 떨어졌다. 그룹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 역시 4월 21일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해 24일 15만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그룹 총수의 자녀가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른바 ‘총수 자녀 리스크’다. 재벌 2ㆍ3세들은 그룹 후계자로 불리며 핵심 계열사에서 일종의 경영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은 능력에 비해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과장ㆍ부장ㆍ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 내에선 임원 이상의 대우를 받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임원으로 진급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 그 힘은 절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2ㆍ3세들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기업은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

현재 10대그룹 중 총수(대주주)의 자녀가 그룹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는 기업은 8곳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정기선 부장을 비롯해 삼성그룹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LG그룹의 구광모 LG전자 부장, GS그룹의 허윤홍 GS건설 상무, 한진그룹의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한화그룹의 김동관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두산그룹의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이다.

 
이 중 한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총수의 아들인 그의 직함은 이사급. 해외 유명 대학을 나왔다. 세계 경제 흐름을 빠르게 읽고, 외국어도 능통하다. 그룹 경영기획실에서 근무하면서 핵심사업에 관여했다. 그는 글로벌을 외치며 국내 기업 환경과는 거리가 먼 해외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기업 내부에서 ‘우리와는 맞지 않는 제도’라며 반발했다. 1년여 동안 갈등이 지속됐다. 그러다 해당 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진행되자 총수의 아들은 은근슬쩍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다.

이 기업의 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1년 동안 고생만 했다. 총수의 자녀와 싸운 셈이었다. 자녀라고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면 인정하고 함께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 일해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 오너 자녀라고 와서 회사 시스템과 제도를 국내 상황은 무시한 채 해외 기준으로 싹 바꾸려고 하는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총수의 아들이 기업에 피해를 떠안긴 사건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과 ‘e삼성’도 빠지지 않는다. 이 부회장은 2000년 삼성그룹의 인터넷ㆍ벤처사업 투자를 위해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e삼성은 2004년, e삼성인터내셔널은 2012년에 청산됐다. 두 회사는 정리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들이 이 부회장의 지분 일부(e삼성 60%, e삼성인터내셔널 55%)를 떠안으면서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기도 했다.

사내 권력자들, 경영수업 웬말

총수 자녀가 법적 문제를 일으키며 그룹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동원씨는 유흥업소 종업원과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 이에 분노한 김 회장은 직원과 폭력배들을 동원해 ‘보복폭행’을 감행했고, 재판에 넘어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 받았다. 이후 김승연 회장은 ‘깡패 회장’이라는 오명을 입게 됐다. 김동원씨는 2011년 차량 접촉사고 후 ‘뺑소니’ 혐의로 벌금 700만원을 부과받았고, 올 초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최근 그룹 건축자재 계열사인 한화L&C에 평직원으로 입사해 그룹 경영기획실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 재벌 2·3세가 마약 등 개인문제를 일으키며 그룹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생명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아버지인 회장은 사람을 때린 경력이 있고 아들은 마약 혐의를 받았는데 그 기업의 이미지가 어떻겠냐”며 “특히 신뢰가 생명인 보험사를 핵심 사업(한화생명)으로 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경우 회사 매출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정호 서강대(경영학) 교수는 “오너 리스크는 지배구조상 총수가 견제를 받지 않고 독단 경영을 할 때 발생한다”며 “재벌 2세 쪽으로 초점을 맞추면 경영수업 중 그들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과도한 힘을 줘 기업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영권을 자녀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아버지 세대간 갈등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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