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근절하려면…

▲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문제가 다시 불거졌지만, 실효성 있는 해법은 찾아보기 힘들다.[사진=뉴시스]
“규제는 암덩어리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성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규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서다. 관피아는 다르다. 나라보단 자신들의 조직을, 공익보단 사익을 추구하는 관피아는 모두 ‘암덩어리’다. 대통령부터 인식을 바꿔야 관피아를 뿌리뽑을 수 있다.

# “재정경제부ㆍ국세청ㆍ감사원 등에서 퇴직한 공직자 중 국내 4대 대기업에 재취업한 이들이 지난 5년간 105명이었다. 제한을 받지 않는 비상임직이나 법무ㆍ회계법인 이직자를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민간업체로 옮기는 걸 비난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고위공직자의 민간 취업을 제한하고 있지만 법을 거스르는 편법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거다.”

#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용되고 있다. 절반이 넘는 공직자들이 퇴직 후 업무와 관련이 있는 업체로 재취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년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밀접한 업무연관성이 없어 취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246건 중 128건(52%)이 업무와 관련 있는 단체 혹은 업체에 취업한 것이다.”

하나는 2006년, 다른 하나는 2013년에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을 다룬 기사다. 중요한 건 공직자윤리법에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거다. 우리 사회에 ‘관피아(관료+마피아)’가 판치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우리나라의 정부 부처ㆍ산하기관ㆍ민간업체간 짬짜미는 상상 이상이었다. 기획재정부 출신들의 모피아만 있는 줄 알았더니 해피아(해양수산부), 교피아(교육부), 금피아(금융감독원),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국피아(국토교통부), 조피아(조달청)를 비롯해 원전ㆍ철도ㆍ에너지 마피아까지 정부 부처가 관련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라 전체가 마피아 천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폐해를 바로 잡겠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지껏 근절되지 않던 관피아의 순환고리가 끊어질지는 의문이다. 대책은 늘 효과가 없거나 관피아의 반대에 막혀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들을 봐도 그렇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불거진 관치금융, 금융감독원 출신들의 금융권 감사직 진출 등은 큰 논란이 됐다. 당시 금감원은 감사 추천 관행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고, 현직에 있는 금감원 출신 감사의 재선임도 막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3월 금감원 출신 인사들은 또 금융권 감사와 사외이사에 속속 내정됐다. 
 
관피아 근절책, ‘보여주기’로 끝

2011년 8월 국무총리실에서 제시한 ‘금융감독 혁신방안’은 3개월의 검토 끝에 재탕ㆍ삼탕 대책을 나열했고, 핵심 쟁점은 ‘중장기 과제’라는 명목으로 미뤄 버렸다. 최근엔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 정책업무’와 ‘금융감독 정책업무’ 분리는 없던 일로 됐고,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설치는 모피아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2013년 7월 민병두 민주당(당시) 의원이 모피아의 관치금융을   발의했던 ‘금융기관 조사 및 제재에 관한 법(관치금융방지법)’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교피아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교피아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학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사학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촛불까지 들며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2010년에는 비리로 쫓겨난 재단이 상지대를 다시 맡는 일을 사학분쟁조정위가 허용해 ‘사학법 개정 논란’이 불붙었지만 제도개선은 미봉책에 그쳤다. 교피아의 힘에 밀려 원래 있던 사학법 내용을 말만 바꿔 개정하는 수준에 그친 거다. 더스쿠프(통권 90호)가 보도한 교육시설재난공제회가 60년이 넘도록 온갖 비리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강한 교피아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부터 2013년까지 원전 관련 비리사건이 줄줄이 터지면서 ‘원전마피아’란 말이 등장했을 때는 어떤가. 정치권에선 ‘원자력발전 사업자 등의 관리 감독에 관한 법률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법안소위원회의 심사도 통과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더구나 법안을 보면 원전기관 관리감독의 주체가 정부로 돼 있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기능이 중복되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의 짬짜미(국피아)와 금품수수, 향응 제공 등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음에도 이제껏 실효성 있는 근절 대책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해피아가 원흉으로 지목되고, 이를 통해 관피아가 주목을 받자 정부는 이제 ‘관피아 근절’을 들고 나왔다. 대표적인 게 관료 출신 인사들의 낙하산 근절이다. ‘임원 자격기준 소위원회’를 운영해 공기업 임원의 세부조건까지 만들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치인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상황에서 정부가 관료 낙하산을 지적할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게 각계의 반응이다. 실제로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던 박근혜 정부는 ‘전기’와는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검사 출신 정치인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에 낙점해 내려보냈다. 정부 대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정부 낙하산부터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4월 25일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도 실효성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을 현재 ‘사기업ㆍ법무법인 등’에서 ‘공직유관단체(정부ㆍ지방자치단체의 출연ㆍ보조를 받는 기관ㆍ단체와 정부ㆍ지자체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ㆍ단체)’까지 확대하는 게 골자다. 

관피아 깨려면 정부 낙하산부터 없애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직자윤리법의 문제점은 취업제한 대상 확대가 아니라 허술한 법 규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 취업 제한 대상 규정으로는 대기업 연구소 등에 취업했다가 제한 기간이 지난 뒤 유관 업무를 맡는 편법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법이 적발돼도 시간을 끌다가 제한기간을 채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취업 제한을 심사하는 기준이 느슨한 것도 문제다. 취업 제한 사유인 ‘업무 연관성’을 판단하는 해당 기관장이 제식구의 이직을 가로막겠느냐는 거다. 되레 감독기관이 퇴직 예정자에게 취업 제한에 걸리지 않도록 보직을 배려하는 것이 관례가 됐을 정도다. ‘업무 연관성’을 명확히 규정하고 해석의 차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건 이 때문이다.

관피아를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 때문에 정부는 그 요구를 수용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역대 정부가 줄줄이 실패한 일을 이번 정부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보여주기에 급급해 성과를 내기보다는 관피아 구조를 깨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찾아내고, 이를 차기정부에서도 지속할 수 있도록 바닥을 다져야 할 때다.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진짜 공무원’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는 걸음 중 하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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