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절상을 경계하라

▲ 엔저와 원고의 영향으로 국내 기업의 실적이 2009년 수준으로 악화됐다.[사진=뉴시스]
엔저 영향으로 국내 기업의 매출 증가율과 매출영업이익률이 2009년 이후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비용절감 없이는 현재의 엔저ㆍ원고 현상을 견디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비용절감은 내수부진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추가적인 엔저ㆍ원고를 경계하고 내수확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시아통화단위(AMUㆍAsia Monetrary Unit)는 2005년 이후부터 2012년말까지 달러 대비 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이후에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유로화와 비교하면 2008~2012년 강세를 보였지만 2012년 중반 이후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 AMU는 일본 경제산업연구소가 2005년부터 구축한 아시아통화 데이터다. 유럽연합(EU) 가맹국이 유로 도입 이전 유럽통화단위(ECU)를 계산한 방식을 채용해 동아시아 13개국(한국ㆍ중국ㆍ일본+아세안 10개국)의 통화를 가중평균으로 산출한다. 2013년 10월 수정된 데이터에 따르면 AMU 통화가중치는 중국(40.72%), 일본(21.98%), 한국(10.35%) 등으로 3개국이 73%를 차지하고 있다.

AMU가 달러와 유로 대비 약세를 보인 이유는 AMU의 40.72%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위안화가 올해 2월부터 약세를 띠고 있어서다. 21.98% 비중의 일본 엔화 가치의 가파른 하락도 원인이다. 3월 중순 이후 한국 원화가 빠르게 절상한 것도 AMU의 달러와 유로 대비 약세를 이끌었다. 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하락은 국내 수출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 더욱 유심히 살펴야 한다. 2008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경제에 큰 타격을 줬고 국제자본의 급격한 이동을 초래했다. 이는 동아시아 환율가치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발생한 저금리 국가의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는 엄청난 환율왜곡을 발생시켰다.

2005~2007년 캐리 트레이드는 급격히 확대됐다. 당시 일본은행이 해외대출을 크게 늘렸고 한국은 해외차입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원화의 지나친 절상과 엔화의 지나친 절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은행을 포함한 해외대출ㆍ차입ㆍ무역신용ㆍ현금ㆍ예금 등의 금융거래인 기타투자지수에 의한 자본유입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지나친 원화강세를 가져왔다. 당시 국내은행은 글로벌 호황을 보이던 조선업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부동산 관련 대출을 위해 해외차입을 크게 늘렸고 기타투자수지 흑자는 2006년 36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캐리 트레이드는 정리됐다.

2008~2010년 일본 기타투자지수에서는 자본유입이 발생했고 한국 기타투자수지에서는 자본유출이 발생했다. 특히 한국 기타투자지수에서 자본유출이 크게 확대된 것은 2013년이다. 2013년 410억 달러의 자본유출이 발생했다. 이는 조선업과 부동산 등의 부진에 따른 대출수요 감소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 양적완화 축소 전망에 따른 달러 강세 기대로 은행이 해외차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9월 해외차입의 영향으로 121%까지 증가했던 국내 상업은행의 예대 비율은 지난해말 기준 103%까지 하락했다.

日 가격경쟁력 상승 분위기

원화가 2006~2007년처럼 균형 환율에서 크게 벗어나 절상되기 위해서는 내수확대에 의한 대출확대와 함께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가 확대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해외대출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고 국내 은행 또한 해외로부터의 차입을 늘리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문제는 추가적인 엔화절하 또는 원화절상이 국내 기업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은 벌써 엔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상장기업 1541개와 금융ㆍ보험업과 지주회사를 제외한 주요 비상장기업 169개의 2013년 기업경영성과를 살펴보면, 대상기업의 매출액은 2012년 기업경영분석 집계치(국세청 법인세 신고자료)의 40.6%에 불과했다.

매출 증가율은 제조업이 4.1%에서 0.7%로 하락했고 비제조업은 6.5%에서 0.8%로 하락했다. 제조업에서는 ‘금속제품(-10.1%)’ ‘산업용기계(-9.4%)’ ‘조선(-2.2%)’ 등이 하락을 주도했고 비제조업에서는 운수업(-4.2%)과 도소매업(-1.6%)이 하락을 주도했다. 특히 매출영업이익률은 2009년 5.8%보다 낮은 4.6%를 기록했다. 비제조업의 매출액세전순이익률은 마이너스 0.1%로 2009년 2.3%보다 부진했다. 하지만 일본기업의 매출 증가액은 엔저 영향으로 개선되고 있다. 2013년 일본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여전히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하락폭은 마이너스 2.9%에서 마이너스 0.5%로 크게 둔화됐다.

 
또한 매출액세전순이익률은 2012년 3.8%에서 지난해 4.6%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2013년 4분기 산업별 전년 동기대비 매출증가액을 살펴보면, 제조업에서 ‘자동차(14.8%)’ ‘화학(10.0%)’ ‘철강(11.9%)’ ‘가공금속(13.1%)’ ‘전기전자 및 부품(5.7%)’ 등이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매출액세전순이익률이 2%이하인 분야는 전력(-1.6%)과 석유석탄(0.6%) 등 에너지 관련 분야뿐이었다. 이는 엔화약세로 인한 부작용이 에너지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경제산업연구소(RIETI)의 실질실효환율(REER)을 통해 2013년 4월부터 한국ㆍ중국ㆍ일본 3개국 13개 산업부문별 가격경쟁력을 추론해보자. 산업별 실질실효환율은 주요 27개국의 산업별 수출비중과 생산자물가지수(PPI)를 사용해서 구한다. 2005년 1월 3일을 100으로 할 때 2013년 4월 25일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의 실질실효환율은 각각 88.7, 88.1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200 5년 1월보다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교역상대국보다 한국은 11.3%, 일본은 18.2%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일본 제조업 생산비는 한국보다 7% 더 하락했다. 물론 명목실질실효환율(NEER)로 계산하면 4월 25일 현재 일본 93.6, 한국 91.9로 일본이 한국보다 1.7%포인트 높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보다 한국 제조업의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높았기 때문에 실질실효환율에서 7%의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추가적인 엔화절하 또는 원화절상으로 한일 실질실효환율 격차가 더 벌어지면 국내기업의 실적개선에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실질실효환율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일본의 가격경쟁력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나친 원화절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 강세에 구두 개입을 계속하고 있다. 4월 28일에는 7일물 은행 단기대출을 기존 1218억 유로에서 1726억 유로로 500억가량 늘려 공급하면서 유로강세의 견제에 나섰다. 한국은행도 이런 원화절상 대비책이 필요하다. 경기회복 자신감을 바탕으로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보단 추가적 원화강세 경계하고 내수회복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 chulhee.lee@tongy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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