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강덕수 전 회장과 7인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회사돈을 횡령한 사실이 검찰조사에서 드러났다. 신화 창조를 도운 이들도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희범 전 STX건설 회장을 비롯한 임원 6명도 기소됐다.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한 STX그룹은 한순간 기업범죄 백화점으로 전락했다.

▲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 회사돈을 부당하게 횡령한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드러났다. [사진=뉴시스]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법정에서 가려진다. 총 3000억원대 횡령ㆍ배임과 2조원대 분식회계 의혹을 사고 있는 강 전 회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5월 8일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계열사에 손실을 끼치고 거액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강 전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STX중공업은 올 2월 강 전 회장을 횡령ㆍ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의 자택과 STX그룹ㆍSTX조선해양ㆍSTX중공업ㆍSTX건설 등을 압수수색하고 3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다.

검찰이 밝힌 강 전 회장의 죄명은 복잡하다. 횡령ㆍ배임ㆍ분식회계ㆍ사기대출 등 각종 비리가 얽혔다. 검찰이 강 전 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7가지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배임 ▲사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상법 위반 ▲증권거래법 위반이다. 강 전 회장의 범죄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이 부당하게 취한 금액은 배임 2843억원, 횡령 557억원, 분식회계 2조3264억원이다. 이는 약과다. 허위 재무제표를 이용해 9000억원의 사기대출을 자행했고, 1조7500억원 상당의 회사채를 부정 발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강 전 회장의 범죄 수법은 이렇다. 강 전 회장은 STX건설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자 STX중공업ㆍSTX에너지ㆍ포스텍ㆍSTX엔진ㆍSTX리조트 등 11개 계열사를 동원해 STX건설의 기업어음(CP)을 매입하게 하거나 유상증자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또 강 전 회장이 계열사에 연대보증을 서도록 지시했고, 이로 인해 계열사가 손실을 입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이 계열사를 동원한 것은 STX건설의 차입금 상환과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서다. STX에너지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2011년 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총 1748억8000만원 상당의 STX건설의 CP를 사들였다. 하지만 이 중 948억8000만원을 상환하지 않아 계열사들이 손실을 떠안았다.

STX건설에 대한 계열사들의 부당 지원 수법은 교묘하다. STX그룹은 STX비즈니스파크 인허가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자 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11년 3월 STX건설과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STX비즈니스파크는 STX건설에 공사 선급금 명목으로 231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STX건설에 대한 계열사의 유상증자가 이어졌다. STX건설은 괌 미군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군인공제회에 대한 채무 200억원을 상환해야 했는데, 자금 부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강 전 회장은 2012년 7월 포스텍이 STX건설 신주 68만5000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 이런 식으로 포스텍이 STX건설에 부당하게 지원한 금액은 200억원에 달한다.

STX그룹, 기업범죄 백화점으로 전락

계열사들은 STX건설의 빚도 대신 갚았다. STX건설이 군인공제회로부터 1000억원을 대출받을 때 연대보증을 선 것은 유넥스글로벌이었다. 유넥스글로벌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괌 이전 사업 시행사다. 그런데 STX건설이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자 강 전 회장은 STX중공업을 869억원 규모의 연대보증에 끌어들였다. 그 결과 STX중공업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740억여원의 빚을 대신 갚았다. STX건설은 조세 관련 혐의도 받고 있다. STX건설이 28억원 상당의 조세채무 징수를 유예하기 위해 STX리조트가 소유한 33억6000만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받았다.

문제는 계열사들이 자금을 동원한 STX건설이 강 전 회장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검찰은 STX건설의 지분이 강 전 회장과 자녀가 총 75%, 나머지는 강 전 회장이 대주주인 포스텍이 보유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포스텍 역시 STX그룹과 계열사로부터 부당하게 지원을 받았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STX그룹은 포스텍이 발행한 CP를 매입, 총 72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STX그룹은 이 자금을 STX건설에 빌려줬다.

 
강 전 회장은 STX그룹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는 수법을 사용해 포스텍을 부당하게 지원했다. 포스텍은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주식가치가 하락하면서 2012년 하반기부터 채무상환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강 전 회장은 지난해 2월 STX그룹이 소유한 STX중공업 주식 240만주와 STX에너지 주식 24만5000주 등 총 100억원 상당의 주식을 포스텍의 대출금 채무에 대한 담보로 제공했다.

포스텍의 대출금 채무를 위한 계열사들의 담보 제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STX엔진과 STX중공업이 포스텍의 대출금 채무에 대한 담보를 추가로 제공했다. 2012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STX그룹이 보유한 STX엔진 주식 60만주와 STX중공업 주식 300만주 등 125억원 상당을 포스텍에 넘겼다. 강 전 회장은 계열사 자금을 횡령해 개인의 채무를 변제하거나 주식을 사들인 혐의도 받고 있다.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계열사의 법인자금 빼돌린 금액은 총 557억원에 달한다. 계열사의 법인자금을 빼돌려 어떻게 채무를 상환했을까.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페이퍼컴퍼니인 글로벌오션인베스트를 통해 STX그룹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하지만 STX그룹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금융권에서 추가 담보 혹은 대출금 상환을 요구해왔다. 결국 포스텍 법인자금 240억5000만원을 빼돌려 채무를 대신 상환했다. 또 강 전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포스텍 주식을 일본계 금융회사 오릭스에 매각한 뒤 다시 주식 250만주를 재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포스텍에 매입자금을 떠넘겨 302억원을 횡령했다.

계열사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하게 지급한 뒤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검찰에 포착됐다. STX중공업ㆍSTX그룹ㆍSTX조선해양ㆍSTX팬오션 임원 9명에게 성과급과 직무수당을 초과로 지급한 뒤 돌려받는 수법으로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총 15억59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STX조선해양과 STX건설의 분식회계 내역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강 전 회장은 조선ㆍ해운경기가 불황에 빠지자 STX조선해양에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매출원가를 과소계상하고, 이익은 과대계상하는 방법으로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 이런 식으로 2008년부터 5년간 2조3264억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일삼았다. STX조선해양은 분식회계를 통한 허위 재무제표를 이용해 시중 은행에서 9000억원의 대출까지 받았다.

‘샐러리맨 신화’ 창조를 도왔던 측근들도 강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됐다. 검찰은 STX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A씨와 STX그룹 경영기획본부장 B씨, STX조선해양 CFO C씨, 전 STX조선해양 부회장 D씨를 구속 기소했다. STX그룹의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됐던 이희범 전 STX건설 회장(전 STX중공업 회장)과 STX건설 경영관리본부장 F씨는 불구속 기소했다.

강덕수 전 회장과 임원 7명 기소

그러나 검찰은 STX그룹의 정관계 접대리스트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희범 전 STX건설 회장이나 다른 임직원이 정관계 로비의혹에 연루된 정황이나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강 전 회장이 STX그룹에서 차용한 32억원과 비자금 15억원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STX그룹은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재계 서열 순위는 11위였다. 하지만 경기침체 여파로 부실 계열사에 대한 무리한 지원과 회계분식 등이 누적되면서 STX그룹 전체로 유동성 위기가 퍼졌다. 샐러리맨의 신화가 한순간 기업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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