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호의 유쾌한 콘텐트

아쉬움이 분노가 되고 한탄을 넘어 허망하다. 사회 모두가 집단 패닉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이런 슬픔을 이제는 벗어나 치유해야 한다. 슬픔을 나누고 목 놓아 울어 줄 콘텐트, 현대판 씻김굿을 준비해야 한다. 현대적 형식을 통한 씻김의 한마당이 필요하다.

▲ 콘텐트가 해야 할 역할에는 웃음, 기쁨, 즐거움만이 아닌 슬픔도 포함돼 있다.[사진=뉴시스]
처음에는 안타깝고,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분노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먹먹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300여명의 꽃다운 생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사망하거나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아들이고 딸이다. 소중한 아이들이 더 이상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오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과 기원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한탄으로 변했다. 이후에 찾아온 것은 좌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공모자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급기야는 나라마저 믿을 수 없는 탄식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런 나라가 왜 존재해야 하나. 한탄을 넘어 허망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2주일이 넘어가면서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집단 패닉 상태에 빠져든 것 같다. 집단 트라우마(trauma)다. 사망자와 미회생자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이야 100배, 1000배 더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한탄감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고 당사자나 가족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외상 후 장애다. 이번 경우에는 국민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집단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등이 이야기된다. 누구를 처벌하고 무엇을 바꾸고 고칠 것인지. 맞는 말이고,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가족들과 국민들의 깊은 한恨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가 없다.

물론 역사는 4월 16일을 기억할 것이고 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이 먹먹함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잘못의 징벌과 청산, 그리고 발전적 대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에 대한 감성적 치유다. 슬픔을 잊기 위해서는 웃음보다 한바탕 큰 울음이 필요하기도 하다. 큰 울음을 통해 사람들은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맞이할 수 있다. 비극적 상황에서 더 큰 비극을 통해 우울과 불안,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카타르시스다.

비극의 불꽃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淨化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슬픔은 속으로 삭이는 것보다 겉으로 드러 내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인정은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가족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자死者와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씻김굿이다. 씻김굿은 불행한 사고가 났던 바로 진도에서 전래부터 내려오던 것이다.  죽은 이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 주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전통 굿이다.

경상도 지방의 오구굿, 경기지방의 지노귀굿, 함경도 지방의 망묵이굿 등 비슷한 형태의 굿들이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활동으로 전승되고 있다. 씻김굿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행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은 자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산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때문에 씻김은 죽은 자의 부정을 씻는 것이지만, 산 자의 아쉬움을 씻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적 슬픔 속에서 웃음이 있는 행사, 웃음 있는 콘텐트를 자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반대로 함께 슬픔을 나누고 진정으로 목 놓아 울어 줄 그런 공간과 콘텐트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현대판 씻김을 준비하는 일이다. 과거의 형식인 굿이 아닌 현대적 형식을 통한 씻김의 한마당이 필요하다. 문화는 함께 사는 것이고 그 삶에는 기쁨 뿐만 아니라 슬픔도 함께 하고 있다. 세상에서 콘텐트가 해야 될 역할 또한 웃음, 기쁨, 즐거움만이 아닌 슬픔의 동반이기도 하다. 공감을 위한 감동,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콘텐트가 존재하고 필요로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류준호 서울과기대 연구교수 junhoy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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