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본 실리콘밸리

한국에선 창업에 실패하면 끝이다. 실리콘밸리는 에선 창업에 실패해도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의적인 아이템’이 수없이 속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김호식 수석연구원은 “대기업 개발자가 퇴직 후 치킨집 창업을 하는 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삼성, LG에 다닌다고 하면 인텔보다 한단계 낮게 봤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수준으로 본다. 새너제이(실리콘밸리 중심지역)의 대표기업인 인텔·구글 같은 대기업도 삼성·LG와 파트너십을 맺고 싶어 한다.” 미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김호식 LG전자 시스템IC 연구소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24세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인텔에 입사해 9년 동안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한 그의 경력은 주변 동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그의 경력을 들으면 “대단하다” “멘토를 해달라”는 반응부터 나온다. 하지만 그는 잘라 말한다.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대단한 곳이 아니다. 비슷비슷한 엔지니어들이 모여 일하는 곳일 뿐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똑같다. 가는 곳마다 애환은 있다.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이 모이면 ‘한국에 가고 싶은데 언제 가지’ ‘좋은 곳에서 불러주면 가고’라는 식의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한다.”

실리콘밸리를 대단하다라고만 보는 건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배워야 할 점도 있다. 첫째 배울 점은 조직문화다. 한국 기업의 중심이 조직인 반면 실리콘밸리에선 개인의 뜻과 의사가 중시된다. 당연히 창의적인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실리콘밸리에서 더 크다. “한국기업에는 상하관계가 존재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는 다르다. 개인이 중심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속한 조직과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간다.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종사자들은 조직에 맞춰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에선 회식을 해도 점심시간에 하고 근처 볼링장에서 볼링을 친다”며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이직 문화도 배울 만한 점이다. 대부분 실리콘밸리 기업에는 노조가 없다. 퇴직금 개념도 없다.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많다는 의미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텔에서 잘리면 애플·구글·퀄컴 등으로 이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능력만 있다면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하다. IT기술 관련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많다.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도 많다. 60대의 개발자로 일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창업에 실패해도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한국과 가장 많이다른 점이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에서 근무한 개발자라도 퇴직 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많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진다. 그는 “대기업에서 평생 개발만 해온 사람이 퇴직 후 치킨점을 창업하는 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더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