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사고의 작은 리스크

해병대캠프 실종사고, 경주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사고. 이 사고의 공통점은 인재人災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작은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는 거다. 공무원들은 주민의 ‘민원’을 흘려들었고, 정부는 문제점을 담은 ‘보고서’를 방치했으며, 회사는 출항 전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했다.

▲ 3대 사고의 공통점은 인재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작은 리스크'를 외면했다는 거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이 흔들린다. 올 5월까지 최근 1년 사이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난해 7월 태안에서 발생한 해병대캠프 실종사고다.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해상훈련을 받다가 공주사대부고 학생 198명 중 5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사고는 꼬리를 물었다. 올 2월 18일에는 경주에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부산외국어대 학생과 이벤트회사 강사 10명이 희생을 당했다. 올 4월 16일엔 진도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고발생 1개월이 지나도록 실종자 수색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언론은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부실한 안전에 울리는 경종’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지도자의 책임의식 부재, 정부의 안전사고 대응 미흡, 눈앞에 이익을 좇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경고였다. 급기야 5월 13일 외국에서 활동하는 1074명의 학자들이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반성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거대 담론이 아니다. 해병대캠프 실종사고, 경주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사고가 안고 있는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3대 사고의 공통점은 인재人災다. 인간에 의한 재난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작은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는 거다. 실제로 그랬다. 공무원들은 주민의 ‘민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고, 정부는 공사 공법의 문제점과 대안을 담은 ‘보고서’를 방치했다. 회사는 출항 전 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1등 항해사의 ‘경고’를 무시했다. 사고발생 직전 민원이나 경고가 있었지만 이런 이상 징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지난해 7월 18일 발생한 태안 해병대캠프 실종사고를 떠올려보자. 이 사고의 이면엔 민원을 귀 기울이지 않은 공무원들의 늦장대응이 있다. 사고발생일로부터 2개월 전, 태안군청에 민원이 접수됐다. 태안에 살고 있는 주민 김씨가 해양유스호스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해양유스호스텔은 공주사대부고와 캠프 계약을 맺은 업체다.

 
민원 내용은 이렇다. 해양유스호스텔이 적정 수용인원을 초과해 학생을 받고 있으니 실태를 파악하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학생수에 반해 관리지도를 할 수 있는 교관수가 현저하게 부족해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원인의 호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태안에서 서울로 올라와 여성가족부를 항의 방문했다. 그제야 지난해 7월 12일 여성가족부는 태안군청에 해양유스호스텔 운영현황과 과태료 부과 자료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는 사이 일주일이 흘렀고, 7월 18일 사고가 터졌다. 해병대캠프에 참가한 학생 198명 중 23명이 실종된 것이다. 사고발생 다음날인 7월 19일 실종된 학생 중 5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사고발생 이후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성가족부와 태안군청 간의 민원처리가 빨라진 것이다. 7월 23일 태안군청이 여성가족부에 관련 자료를 제출했고, 그 다음날인 7월 24일 여성가족부가 민원인에게 “안면도 유스호스텔에 대한 시정명령, 허가 또는 등록취소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자료요청 공문을 주고받는데 7일을 할애한 공무원들이 사고 이후 이틀 사이에 민원을 처리한 것이다.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민원이 있었지만 정부가 늦장대응으로 일관했고, 사고가 발생하자 서둘러 민원을 처리한 셈이다.

해병대캠프 실종사고의 원인은 이것만이 아니다. 방만한 행정처리, 만연한 안전불감증, 허술한 안전관리 등이 사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해병대캠프 실종사고는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는 바다ㆍ하천ㆍ호수 등 국유의 수류를 이용하기 위해 관리청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이 훈련을 받다가 사고가 난 곳은 해양유스호스텔과 백사장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한 해안가였다. 훈련이 이뤄진 해안은 해양유스호스텔을 등지고 왼쪽 방향이다.

 
문제는 훈련이 이뤄진 지점이 해양유스호스텔이 태안군청으로부터 허가받은 곳이 아니란 거다. 해양유스호스텔은 지난해 3월 태안군청에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를 신청했고, 태안군청은 관계기관에 협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신청은 사고위험성 등의 이유로 반려됐다. 그렇다면 해양유스호스텔이 허가를 받은 공유수면 점용ㆍ사용 허가 지역은 어디일까. 해양유스호텔을 등지고 오른쪽 방향이다. 훈련장소에서는 약 700m나 떨어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바닷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육지다. 해양훈련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곳으로 허가를 받고, 정작 훈련은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진행한 것이다.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다. 안전관리도 부실했다. 구명조끼는 학생 수만큼 마련되지 않았다. 사고가 터졌을 때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너울성 파도에 떠밀려 갔다. 작은 리스크가 사고를 부른 셈이다.

이는 해병대캠프 실종사고만의 얘기가 아니다. 올 2월 16일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주리조트 붕괴사고는 정부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무대책으로 일관한 데서 비롯됐다.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정책제안을 접수하고도 8년이나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한국강구조학회는 ‘군산항 5부두 임항창고 붕괴 원인 조사연구 보고서’를 국토해양부(당시)에 보고했다.

민원ㆍ경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보고서는 당시 군상항 5부두 임항창고 붕괴 원인으로 ‘PEB 공법’을 지목했다. PEB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대안을 담았다. PEB 공법은 얇은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는데, 임시건물이나 창고를 지을 때 유용하다. 당시 정부는 PEB 공법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설계기준과 지침을 만들 수 있는 입법례가 없다는 이유로 보고서를 방치했다. 건축물이 지켜야 하는 하중 기준이 마련됐는데 굳이 PEB 공법에 대해서 별도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였다.

그렇지 않았다. 정부의 판단과 달리 PEB 공법으로 시공된 건축물은 붕괴 사고를 자주 일으켰다. 특히 겨울철이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스티로폼으로 벽을 채운 탓에 매년 증가하는 눈의 양과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경주리조트 붕괴사고가 터지기 직전인 올 2월 11일 경주시 북구동 계림초등학교 강당 지붕이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했고, 2월 12일엔 경주시 황성동 용강공단 내 자동차부품 공장의 지붕 일부가 무너졌다.

 
문제는 지붕 붕괴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던 2월 11일부터 경주리조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2월 18일까지 하루 동안 최고 70㎝에 달하는 폭설이 내렸다는 사실이다. 도심지에도 23㎝가량 눈이 쌓였다. 그런데도 경주리조트는 1000여명의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면서도 PEB 공법으로 지은 체육관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가절감을 위해 애초에 체육관을 부실하게 시공한 것도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경주시에 따르면 주기둥과 보 등 일부 자재가 강도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용절감을 위해 H빔 대신 무게를 줄인 철골을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경주리조트는 시공안전과 관련된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경주리조트 참사 뒤엔 보고서를 허투루 여긴 정부의 무대책과 부실공사가 있었던 것이다.

 
올 4월 전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중 눈여겨볼 것은 사고 전 회사(청해진해운)가 무시한 승무원의 경고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사고 전날인 4월 15일 1등 항해사 강씨는 출항을 준비하면서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김씨 등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물을 너무 많이 실어 배가 가라앉는다. 그만 실으라.”

하지만 회사는 1등 항해사와 직원들의 경고를 묵살했다. 이유가 있었다. 더 많은 화물을 실어야 화물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지난해 3월 15일 운항일부터 사고 당일인 올 4월 16일까지 인천에서 제주까지 241차례 운항했다. 그중 139차례가 과적운항이었다. 돈벌이에 급급한 나머지 직원의 경고와 승객의 안전상태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돈벌이에 밀려난 안전의식

 
세월호는 언제든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여객선이었다. 여기에 최대 적재량의 2~3배에 이르는 화물을 실었고, 과도한 선박 증축으로 인해 배의 복원성이 떨어졌다. 여기에 화물 컨테이너 모서리를 고정하는 장치인 콘의 규격이 미달한 것이나 차량을 네바퀴로 묶어야 하는데도 앞뒤로 2개만 고정한 것은 세월호의 화물 고박이 얼마나 불량한지 보여준다. 선박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도 권고 기준의 4분의 1 수준만 채웠다.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배를 가볍게 한 것이다. 화물 수입은 늘었지만 배의 복원력은 형편없이 떨어져 안전 리스크가 커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단단한 둑이라도 작은 균열이 생기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사고도 마찬가지다. 작은 리스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안전불감증이 큰 화를 불렀음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작은 리스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구멍에서 누수가 시작된다. 3대 사고가 ‘작은 리스크’를 증명한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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