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지하철 소화기 괜찮나

▲ 지하철 4호선 전동차에 비치된 소화기 점검표에는 점검사항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점검표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사진=김정덕 기자]
11년 전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이후 지하철엔 바뀐 것들이 많다. 내부 소재는 불연재로 바뀌었고, 역과 전동차에서 소화기를 찾기가 쉬워졌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있다. 코레일 지하철이 싣고 달리는 ‘최소 15년 이상 된 소화기’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운행하는 지하철 4호선 341515호 전동차 안. 차량 1칸에는 양끝에 하나씩 2대의 소화기가 비치돼 있다. 딱 봐도 요즘 나오는 소화기와는 외형부터 다르다. 소화기 정보가 쓰여 있는 스티커는 군데군데 뜯겨 있다. 다음 칸으로 옮겨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화기 옆에 붙은 점검표에는 점검 날짜조차 일정하게 표시돼 있지 않다. 어떤 달엔 점검을 받은 표시가 있지만 어떤 달은 비어 있다. 먼지 쌓인 점검표에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소화기도 있다. 점검표가 아예 없는 소화기도 한두 개가 아니다. 지하철 소화기, 과연 써먹을 수 있을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안전이 이슈로 떠오르자 코레일은 ‘총체적 안전관리실태 점검’이라는 카드를 내놨다. 조노영 코레일 안전본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다짐했다. “철도는 국민의 발로서 그 무엇보다도 안전이 최우선돼야 하며 안전수송에 한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 평상시 절대 안전체계 구축과 철도사고 발생 시 현실적인 매뉴얼 운용과 실질적 훈련반복으로 국민이 안심하고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점검기간은 4월 30일까지 8일간 이어졌다. 하지만 코레일의 다짐과는 달리 사실 지하철 1~4호선을 누비는 코레일 전동차에 비치된 소화기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다.  분말 소화기는 축압식과 가압식 두종류다. 축압식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손잡이 주변에 작은 계기판이 달려 있고, 계기판 바늘이 중간에 위치해 있으면 정상 작동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가압식에는 이런 계기판이 없다. 때문에 육안으로는 작동하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 소화기를 뒤집었을 때 분말이 스르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정상이다. 그래서 올바른 관리와 점검을 위해서는 일일이 뒤집어보고, 분말이 굳지 않도록 수시로 흔들어줘야 한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4호선 전동차에 실린 18대의 소화기(전동차 10량 기준) 중 15대 이상이 가압식 소화기였다.

가압식 소화기의 관리ㆍ점검이 중요한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분사가 안 되면 초동대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가압식 소화기 내부에는 가스통이 별도로 들어가 있어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분사를 했을 때 폭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소화기가 폭발한 사고도 있었다. 2013년 8월 영등포의 한 공장에 불이 났다. 당시 공장 주인은 오래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가압식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려다 되레 화를 입었다. 소화기를 작동한 순간 소화기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고, 그 파편에 목을 맞아 사망한 거다. 같은 해 9월에도 여수의 한 조선소에서 소화기가 폭발해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다.

문제가 있는 소화기라면 바꾸면 그만이다. 더구나 가압식 소화기는 1999년 이후 전량 생산이 중단됐다. 전동차 안에 있는 가압식 소화기는 최소 15년 이상 된 노후 소화기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코레일이 소화기를 적극적으로 교체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행법상 소화기의 내구연한(유통기한)이 규정돼 있지 않아서다. 

소방방재청마저 놀란 소화기 수준

코레일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새 소화기로 교체를 하면 더 좋겠지만 현행법상 소화기는 별도의 내구연한이 없고, 관리만 잘 하면 계속 쓸 수 있도록 돼 있다. 코레일 전동차에 비치된 소화기는 매월 정기적인 관리ㆍ점검을 받고 있어 안전하다.” 안전을 위해서는 교체하는 게 맞지만, 관련 법 규정도 없는데다 비용까지 발생하니 그냥 두겠다는 논리다. 그렇다고 관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언급한 것처럼 지하철 1~4호선 전동차에는 점검표 기록조차 온전하지 못한 소화기가 수두룩하다.

현행법에 소화기 내구연한이 없다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 소방방재청은 일선 소방서의 소화기 내구연한을 8년으로 규정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전량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 코레일 측만 법에 없다는 이유로 15년이 넘은 소화기를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코레일 측은 소화기를 자체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를 감독할 기관은 없다. 건물에 들어가는 소화기의 경우 소방방재청이 교체 권고를 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선 벌금도 물린다. 서울소방본부 관계자는 “소방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에 대해서는 소화기가 낡았을 경우엔 교체를 권고한다”며 “지속적인 권고에도 교체가 이행되지 않으면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차량 내부에 비치된 소화기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소방방재청의 관리ㆍ감독 권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와 안전행정부도 지하철 전동차 내 소화기에 대해서는 따로 관리ㆍ감독을 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오히려 “소화기 안전에 관해서는 소방방재청이 담당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 코레일 차량기술단에서 차량 점검을 하면서 소화기 점검을 같이 하고 있다”며 “소화기 점검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받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동차 내부 소화기는 따로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해당 소화기가 안전하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셈이다. 

전동차 소화기, 안전 감독 기관 없어

코레일 관계자는 전동차 내 소화기를 교체해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답했다. 그럼 비용은 얼마나 들까. 현재 4호선에서 운행하는 코레일 전동차는 10량짜리 총 30대다. 전동차 1량에 소화기 2대가 비치된다고 가정할 때 총 600개의 소화기가 필요하다. 시중에 판매되는 3.3㎏짜리 분말 소화기 1대는 2만원이 채 안 된다. 넉넉하게 어림 잡아 1200만원만 투입하면 전량을 새 소화기로 교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1~4호선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 소화기를 전부 교체해도 5000만원이 안 된다. 코레일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인지 의문이다.

이창우 한국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연간 5만건에 달하는 화재 중엔 소방설비가 있어도 성능이 떨어지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며 “내구연한 제도 도입으로 화재발생 건수를 줄일 수는 없지만 인적ㆍ물적 피해가 감소하는 간접적인 경제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비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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