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산업 육성하라

최근 의료서비스 활성화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문제의 핵심은 경영 논리다. 쉽게 말해 의료서비스를 활성화시키면 의료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 보건의료산업계가 발전이냐 퇴보냐에 기로에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부의 의료서비스, 신약개발(제약), 연구중심병원 정책을 통해 그 문제점과 해법을 알아봤다.

▲ 미국 매사추세츠병원의 연구실적으로 연간 50곳 이상의 벤처기업이 창업을 연다. 연구중심병원을 육성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진=뉴시스]
세계는 지금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 평균 수명은 2030년 85세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유는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서다. 당연히 보건의료산업시장도 커지고 있는데, 세계시장 규모는 10조 달러, 한국은 1220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각국 정부가 보건의료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U-헬스산업을 육성함과 동시에 각종 연구개발(R&D)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 R&D투자 분야는 의료서비스, 신약개발, 연구중심병원이다.

의료서비스│아시아, 의료관광에 취하다

세계 의료서비스 시장규모는 5조 달러에 이른다. 전체 GDP의 8.1% 규모다. 의료서비스는 주로 ‘의료관광산업’으로 표출되는데, 아시아가 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2004년 ‘아시아의 건강수도’라는 콘셉트를 내건 태국의 의료관광수입(2011년 기준)은 40억 달러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의료허브’란 슬로건으로 독일ㆍ일본ㆍ미국 등을 대상으로 의료관광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2대 국가핵심 경제분야(2011~2015)에 의료관광 육성을 포함했다. 신성장동력으로 의료서비스를 지정한 일본은 2020년 외국인 의료관광객 43만명, 경제수익 2800억엔의 의료관광목표를 설정했다.

 
한국의 의료관광시장도 2009년 이후 연평균 37.3%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미용ㆍ성형, 암ㆍ심혈관 등 전문진료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최첨단 진료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가격경쟁력도 강점이다. 이를 발판으로 한국정부는 해외환자유치 활성화, 병원서비스 해외진출지원 등 글로벌 헬스케어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성공사례도 있다. 제주한라병원은 국내 최초 수水치료시설과 의료관광ㆍ휴양을 융합한 ‘메디컬 리조트비즈니스’를 통해 의료관광객 100만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JK성형외과는 한국적 ‘성형시스템’으로 베트남과 태국시장을 활짝 열었다. 최항석 JK성형외과 원장은 “국내 의료진이 중국과 동남아에 방문해 시술한 사례는 많지만 우리의 성형의료서비스 운영시스템이 통째로 수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운영시스템에는 국산 의료기기, 전산시스템,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신약개발│의약품 시장 잡을 ‘카드’ 만들어야

국은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다. 2012년 무역수지는 마이너스 37억불이었다. 의약품 수출(19억6000만불)보다 수입(56억6000만불)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세계 의약품 시장을 포기할 수도 없다. 170억 달러에 이르는 시장이 해마다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정부가 2011년 7월 범부처 신약개발사업단을 출범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범부처 신약개발사업은 미래부ㆍ복지부ㆍ산업부가 이끄는 국가 R&D사업이다. 2020년까지 1조600억원을 투입한다. 글로벌 신약을 10개 이상 개발하는 게 목표다. 현재 44건을 협력과제로 선정해 진행 중인데, 벌써 성과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은 신약개발업체 ‘비보존’은 합성의약품인 ‘비마약성비진통소염성 진통제’를 개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 연구개발업체 ‘바이로메드 연구소’는 신형 간세포 성장인자를 이용해 DNA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백신치료제 신종인플루엔자 사업단장인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감염내과) 교수는 해외의존도가 높았던 신종인플루엔자 백신과 치료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신종인플루엔자를 국가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복지부의 지원으로 국제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곳도 많다. 고려제약은 지난해 9월 중남미 보건의료협력 사절단에 참여해 에콰도르 의약품구매공사와 1억불 규모의 수출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보령제약이 개발한 고혈압치료제 ‘카니브정’은 올 3월 복지부와 멕시코 규제기관 코페프리스(COFEPRIS)가 양해각서를 체결, 2600만불의 수출고를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런 성과에도 신약개발 전문가들은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2단계 임상시험 등 후반기에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한데, 정부지원은 개발초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정부기관의 신약개발정책이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다. 효율적 평가ㆍ지원시스템 부재, 임상시험 인프라 부족도 한계로 꼽히고 있다. 한 신약개발 전문가는 “정부가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경향이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연구중심병원│연 50곳 창업 이끄는 MGH의 힘

보건의료산업의 선봉 역할을 한 건 ‘연구중심병원’이다. 특히 미국이 그렇다. 미국의 MD 앤더슨, 매사추세츠 병원(MGH),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 등은 연구중심병원으로 조직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 매년 수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거두고 있다. 요컨대, 존스홉킨스 병원의 2011년 기준 논문과 특허는 각각 2468개, 43건이다. 주목할 점은 연구중심병원에 제약ㆍ바이오기업의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MGH를 중심으로 하버드 의대, 보스턴대, MIT 등이 밀집해 있는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머크ㆍ노바티스를 비롯한 다국적 제약기업, 바이오젠ㆍ젠자임 등 바이오 벤처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 결과, 병원의 연구개발 결과물이 상업화로 이어지기 쉽다. MGH의 연구성과를 발판으로 해마다 50곳 이상의 기업이 창업할 정도다.

일본 역시 연구중심병원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본여자의과대학병원(TWMU)과 와세다 대학은 상호협력해 트윈스팀(TWIns)을 만들었다. 병원과 대학이 협력할 수 있는 합작연구소다. 기초ㆍ임상분야가 협력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를 만들고, 협동박사 과정 등을 도입해 바이오메디컬 공학과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정부는 임상치료를 교육으로 확대하는 ‘AHSC(Academic Health Science Centre)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산학연의 파트너십을 통한 연구중심시스템을 구축해 의료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연구중심병원 10곳을 지정한 한국도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추진한 한국의 연구중심병원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무엇보다 한국의 의료기술과 의학 수준은 세계 5위권이다. 세계 최고 IT기술로 만든 최첨단 의료기기도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일반외과수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헬스 데이터(2009)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심장병 수술ㆍ치료, 자궁경부 암치료 기술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는 예산이다. 복지부는 기획재정부에 연구중심병원 사업예산 1조4000억원(10년)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성공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연구중심병원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상당한 경제적 창출효과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선 연구중심병원을 육성하면 ‘병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만 수혜를 입는 게 아니냐는 거다. 이런 우려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중심병원의 핵심은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연구가 성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R&D분야에 지속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겠다.”


현장탐방│경북대병원ㆍ서울아산병원
의료산업의 메카, 의지가 뜨겁다

지방에서 유일한 연구중심병원인 ‘경북대학교병원’은 핵심연구인력만 131명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최대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가 인접해 있어 연구개발을 하는데 최적의 입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 병원은 연구비 투자비를 기존 11.6%에서 14.58%로 증액했다. 국내외 석학을 초빙해 교육과 연구의 국제화도 꾀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약ㆍ의료기기ㆍ줄기세포 치료제 등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인력과 인프라를 병원 안에 구축하기 어렵다고 판단, 병원 Core lab과 첨단의료복합단지 Site Lab을 연계한 개방형 연구협력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특성화된 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임상 실적을 보유한 서울아산병원은 글로벌 수준의 메디컬 클러스터 구축이 목표다. 이를 위해 치료 중심에서 연구 중심으로 병원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우선 연구전담의사ㆍ연구참여임상의사ㆍ선임급연구전담요원등 총 300여명의 핵심연구인력을 구축했다. 이런 연구인력을 통해 기초연구ㆍ임상연구ㆍ의공학개발 등 다양한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의료선진국은 병원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수인력의 확보ㆍ육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멘토-멘티’ 시스템은 이 병원의 자랑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활동 중인 고급인력을 초빙하기 위해 해외현지 채용설명회도 개최하고 있다. 6만6000㎡(약 2만2000평)에 달하는 연구공간에 입주해 있는 KISTㆍ포스텍ㆍ현대중공업ㆍ디엔에이링크 등 산학연 기관과 공동연구를 꾀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미국 다나파버 암센터와는 맞춤암 치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포판 분리기술 분야의 세계적 연구기관인 일본 동경여자의과대학-와세다공대 공동연구소와는 연구협약을 체결하고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두 사례는 서울아산병원이 글로벌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청수 아산생명과학연구원장은 “연구중심병원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한 10개 연구중심병원과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표 더스쿠프 기자 tikitiki@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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