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이유일 스토리

2009년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인을 맡았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쏘아보던 직원들에게 ‘회사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회생시키러 왔다’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5년, 쌍용차가 순항 중이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의 승부수가 통한 것이다. 이 사장을 만났다.

▲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직접 차를 몰아보고, 품질을 점검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쌍용자동차가 순항 중이다. 지난 1분기 글로벌 판매 3개월 연속 증가에 힘입어 이 회사는 당기순이익이 흑자로 전환됐다. 지난해엔 자동차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에도 창사 이래 최대매출(3조4849억원)을 올렸다. 뉴코란도C, 코란도투리스모 등의 제품개선 모델이 약진한 덕이다.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기록한 매출액 성장률(34.1%)은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3년 앞을 내다보고 미국 시장 진출도 모색 중이다.

 이 같은 괄목할 성장의 견인차는 이유일 사장이다. 이 사장은 현대자동차에 30년 근무한 자동차기업 전문경영인이다. 마케팅본부ㆍ해외영업본부담당 사장을 끝으로 자동차 업계를 떠났다 2009년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으로 복귀했다. 2년 만에 인도 마힌드라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아들인 후 사장을 맡았다.

✚ 쌍용차 회생의 비결이 단적으로 뭐라고 봅니까?
“사장 취임 후 전 직원에게 쌍용차 주식을 150주씩 무상으로 나눠줬습니다. 그러고서 ‘여러분도 이제 쌍용차 주주다. 회사가 잘못되면 여러분 재산을 날리는 거다. 기필코 회사를 살려내 나중에 자식이, 손주가 자부심을 갖고 이 회사에 몸담게 해달라’고 설득했어요. 절박했던 그 시절, 나는 법정관리인으로서 회사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회생시키러 왔다고 호소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소통 노력과 투명성 제고가 주효했던 거 같습니다. 솔직하게 털어 놓고 꼼수 부리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타운홀 미팅을 열어 경영 상황에 대해 숨김 없이 설명하고 무엇이든 물어 보라고 했죠. 또 봉급 적게 주려고 비용 늘려 적자 폭을 확대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아예 선언을 했습니다. 임금은 지불능력 범위에서 최대한 지급하겠다고 했고요. 새 오너에게는 이익이 나면 직원 복지를 위해 쓰겠다고 했습니다.”

✚ 현장은 자주 찾습니까?
“평택 사무실 바로 뒤가 공장이지만 자주 안 갑니다.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주로 현장에 개선점이 있을 때 명절, 혹서기, 혹한기 때 찾습니다. CEO가 현장을 모르면 회의 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마련입니다. 제조 회사의 CEO는 품질과 생산성이 결정되는 제조 현장은 물론이고 판매 현장도 꿰고 있어야 돼요.”

제조회사 CEO, 판매현장도 꿰뚫어 봐야

법정관리인 시절 그는 전 임직원과 네차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회사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파산 위기의 회사를 살리자고 호소했다. 급여 삭감에 보너스도 제대로 못 받던 시절이었다. 직원들 마음이 움직이면서 불만이 차츰 잦아들었다. 요즘은 현장 직원들이 되레 그에게 “잔업을 해도 좋으니 일감을 더 따오라”고 주문한다.

이 사장은 현장을 찾으면 라인의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그때마다 직원들에게 예의 차리느라 작업용 장갑을 벗지 말라고 한다. 한꺼번에 400명 이상과 악수를 나눌 때도 있다. 평택공장에 근무하는 날 그는 구내식당에서 아침ㆍ점심 식사를 해결한다. 바쁜 날이 아니면 손수 식판을 들고 직원들 틈에 줄을 선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원증을 센서에 갖다 대 식권을 발급 받아 식권통에 집어넣는다. 이렇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역대 사장 중 저렇게 끈질기에 공장 밥 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런 그의 모습이 공장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처음에 내려갔을 땐 그릇도 없어 스티로폼 그릇에 밥을 퍼주고 덮밥처럼 그 위에 돼지 불고기를 얹어줬어요. 더운 여름에 그렇게 힘들게들 일하는데 만날 똑같아. 이 사람들 한번 제대로 먹여 보고 이 회사를 떠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디다.”

✚ 흑자 전환은 언제 될 거로 보나요?
“지난해 통상임금 이슈가 불거져 충당금 150억원을 쌓는 바람에 영업흑자를 내고도 흑자 전환을 못 했습니다. 최근의 환율 급락, 통상임금 부담 등 경영 외적요인으로 인해 올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내년에 출시할 소형 새 모델 X100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재무적 안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거예요. 2016년이면 최대 생산능력인 25만 대를 생산하게 될 겁니다. 우리로서는 새 이정표가 되는 해죠.”

✚ X100은 예정대로 내년 1월 출시합니까? 가격ㆍ품질 면에서 경쟁 차종인 QM3, 트랙스보다 경쟁력이 있을 거로 보나요?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주행성능, 연비, 상품성 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고 있어요.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을뿐더러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지닌 우리의 전략차종이 될 겁니다.”

✚ 쌍용자동차의 핵심 역량은 뭔가요? 당면 과제는?
“쌍용은 국내 SUV의 원조이자 SUV 전문 메이커입니다. 국내에서 현대차ㆍ기아차와 더불어 스스로 자동차를 개발할 능력과 핵심기술을 보유한 세 회사 중 하나이기도 하죠. GM코리아와 르노삼성은 디자인ㆍ프레임 개발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디자인부터 프레임 개발까지 직접 하고 엔진도 자체적으로 만들어요. 어렵던 시절 불용부동산을 팔아 개발한 뉴코란도C의 경우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죠. 품질과 생산성을 더 끌어올리는 게 당면 과제입니다. 그러자면 현장 경영에 충실해야 하고요. 품질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다음이 원가 절감이에요. 원가 500원 낮추려다 품질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되죠.”

✚ 쌍용차의 비전은 뭡니까?
“한국에서 존경받는 자동차 회사,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쌍용차는 지난해 총 14만5649대를 팔았다. 4년 연속 증가세. 정점이던 시절 16만대를 팔았지만 인력이 7000명에서 4500명으로 감축된 점을 감안하면 40% 이상 생산성이 향상된 셈이다. 노동 강도가 높아졌지만 현장 분위기는 더 밝아졌다. 벼랑 끝 위기를 겪으며 회사가 소중하다는 공감대가 구성원들 사이에 생겨난 덕이다. 올해 판매 목표는 과거 정점이던 16만대다.

✚ 지난 4월 2014년 베이징모터쇼에서 세계 3대 SUV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요?
“목표라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SUV 리딩 브랜드가 되겠다는 우리의 다짐이죠. 그러자면 글로벌 SUV 명가인 지프, 랜드로버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고요.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해마다 한 차종 이상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거고, 마힌드라 그룹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갈 겁니다.”

✚ 쌍용차에 대한 마힌드라 측의 입장은 뭔가요? 마힌드라와의 시너지 효과도 실제로 있나요?
“좋은 자동차 회사로 키우는 게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한 목적입니다. 쌍용차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면 마힌드라 그룹도 이미지가 좋아집니다. 마힌드라는 정보기술 사업도 하는데 쌍용차의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 개발을 도와줬고 할부금융회사를 만들 때 투자도 했어요. 자동차 부품을 공동 구입해 단가를 낮출 수도 있습니다.”

새 모델 X100 성장동력 기대

✚ 중국 자동차 시장은 어떻게 보나요?
“중국 시장은 지난해 연간 판매 대수 200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5년 연속 세계 1위죠. 올해도 10.5% 성장할 거로 전망됩니다. 특히 쌍용차의 타깃인 SUV 시장의 경우 연평균 성장률이 40%가 넘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2배 이상 성장할 거로 봅니다. 이 유망한 시장에서 지난해 우리가 80여대 팔았는데 올들어 1분기에만 4000여대 팔렸습니다. 올 판매 목표가 지난해 두배 이상 규모인 1만5000대이고요. 특히 중국 소형 SUV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내년 X100 출시를 앞두고 희망적입니다.”

✚ 스스로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하게 소통하는 리더? 작금의 자동차 대전에서 저는 소통 능력이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현대자동차에서 큰 사람이라 나름 고집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거 안 통합니다. 회사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어요.”

✚ 쌍용차의 고유한 기업문화가 뭔데요?
“가족적인 분위기죠. 남한테 심하게 하려 들지 않습니다. 화합하기 좋은 게 장점이라면 변화와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단점이죠. 이런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바꾸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 2009년 쌍용차 법정관리인으로 업계에 복귀한 이유일 사장은 2011년 인도 마힌드라르 새 주인으로 맞은 뒤 사장에 올랐다. 2011년 3월 15일 열린 마힌드라ㆍ쌍용자동차 공동기자회견에서 마힌드라그룹 고엔카 사장과 바랏 도시 CFO, 쌍용차 이유일 신임 사장(왼쪽부터)이 손을 맞잡은 모습.[사진=쌍용자동차 제공]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나눠줬지만 정작 그는 쌍용차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회사를 안정시키러 왔지 돈 벌러 온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에 골프도 부임 후 끊었다. 아침 7시 반에 나와 종일 회사에 있다 보니 돈 쓸 일이 없다. 경리 담당 상무가 “왜 이렇게 돈을 안 쓰느냐”고 하더라며 그가 웃었다. “현대차 시절엔 술도 좀 먹었는데 이제 얼굴이 많이 팔려 술집도 못 갑니다.”

이 사장은 금요일 저녁 퇴근 때부터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주말엔 쌍용의 SUV 모델을 몰고 드라이브를 한다. 시승차의 품질 등에 불만이 있으면 월요일 아침 본부장회의 때 거론한다. 렉스톤을 타 보니 후방 카메라의 각도가 잘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이 모델은 시트에 주름이 지고 저 모델은 컵홀더에 컵이 잘 안 들어가더라”처럼 지적 사항은 구체적이다. 체어맨에 대해 뒤쪽 문 폭에 비해 의자가 크다고 지적해 의자 크기를 줄인 일도 있다.

직접 운전대 잡고 품질 체크

쌍용차는 회사 이름 변경을 검토 중이다. 쌍용그룹이 공중분해된 데다 쌍용의 이미지가 실추된 탓이다. 외국인들이 쌍용을 발음하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했다.

✚ 사명 변경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명 변경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될뿐더러 구성원들의 동의도 필요한 일이죠.”

✚ 한국의 자동차 산업 전반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뭔가요?
“국내시장의 수요는 정체됐고 원화 강세로 해외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통상임금 확대, 저탄소협력금제 도입 등으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로서는 새로운 규제들이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탄소협력금제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차량을 살 때 보조금을 주거나 되레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경차, 소형차, 친환경차를 제외한 차는 모두 부담금이 붙는다. 환경부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쌍용차의 경우 수요가 많지 않은 뉴코란도C 수동 모델을 제외한 전 차종에 부담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전체 모델이 수백만원씩 값이 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경영 정상화에 주력하느라 친환경 기술 개발에 힘쓰지 못한 탓이다.

✚ 저탄소협력금제가 업계 특히 소형차가 없는 쌍용차에 직격탄일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 산업 자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겁니다. 환경부가 벤치마킹한 프랑스의 보너스-맬러스 제도가 도입된 건 르노, 푸조 등 프랑스 자동차회사가 디젤차와 소형차에 주력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이 제도가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사실상의 기술적 무역장벽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수입차 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결국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가 있어요.”

✚ 꿈이 뭔가요?
“5년여 전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인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고서 쌍용차 살리기를 내 삶의 마지막 과제로 받아들였습니다. 월급쟁이로서 괜찮은 꿈 아닌가요?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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