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훈 한화갤러리아 대표

백화점 화장실에선 은은한 향이 코를 찌른다. 천연소재 캔들 브랜드 ‘아큐스’의 천연방향제 덕이다. 전화기가 비치된 피팅룸에선 판매원을 실시간으로 부를 수 있다. 고객의 ‘디테일한 니즈’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갤러리아 명품관의 얘기다. 이런 변신을 이끈 사람은 박세훈 한화 갤러리아 대표다. 그의 ‘디테일 경영’을 살펴봤다.

▲ 박세훈 대표가 CEO에 취임한 지 3년 만에 갤러리아 명품관은 대대적으로 변신했다.[사진=한화갤러리아 제공]
‘팔색조 변신’. 갤러리아 명품관(갤러리아 백화점 압구정점)의 최근 2년을 요약한 말이다. 2012년 3월 한화갤러리아 대표로 취임한 박세훈 대표는 올 초에 ‘호텔리어’라는 마음으로 갤러리아 명품관을 꾸미겠다고 했다. 그 공언대로 갤러리아 명품관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써서 바꿨다. 갤러리아 명품관은 명품 브랜드 중심의 이스트와 일반 백화점 형태의 웨스트 두개 건물로 나뉜다. 무엇보다 웨스트의 변신이 놀랍다. 입구부터 크게 달라졌다.

웨스트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디지털 사이니지(디지털 영상장치)가 보인다. 각 층별 입점 브랜드 매장, 위치, 실시간 인기 브랜드 순위까지 보여준다. 2층부터 5층 매장은 기존 백화점과 비교해 구성과 동선이 완전히 다르다. 칸막이를 허물어 편집숍 형태의 시원한 매장을 만들었다. 다른 곳에 없는 디자이너 브랜드도 대거 입점시켰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도 이번 리뉴얼의 특징. 각층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다르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2층에는 소프트 라운지와 퓨전 재즈가 나온다.

여성캐주얼 브랜드를 배치한 3층에선 재즈, 시부야케이 음악이 들린다. 같은 층에 있더라도 각 ‘존(Zone)’의 성격에 따라 음악이 다르다. 가령 3층에 있는 데님존(청바지 등)에서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은밀한 공간에도 ‘디테일’을 강조했다. 화장실에는 미국 천연소재 캔들 브랜드 ‘아큐스’의 천연방향제(디퓨저)와 친환경 브랜드 ‘이솝’의 핸드크림을 비치했다. 그래서 화장실에선 은은한 향이 코를 기분좋게 찌른다. 2층에 있는 란제리존도 마찬가지. 이곳 피팅룸에는 전화기를 비치했다. 고객이 상품을 피팅하면서 판매사원에게 전화를 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리뉴얼을 끝낸 이스트 역시 놀랄 만큼 변신했다는 게 갤러리아 측의 귀띔이다. 박 대표는 리뉴얼 오픈을 준비면서 임직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갤러리아 명품관 리오프닝에서 마지막 10%는 디테일이다. 90%의 완성도에 10% 디테일을 더해 100%를 달성하자. 고메이494에 이어 고객은 물론 업계에 충격을 주자.”

고메이494는 2012년 10월 리뉴얼한 식품관으로, 박 대표의 첫 작품이다.  박 대표는 취임 8개월에 접어든 2012년 10월 웨스트 지하 1층 식품관을 국내 최초로 ‘그로서란트(Grocerant)’로 정의됐다. 그로서란트는 그로서리(grocery·식료품잡화점)와 레스토랑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식품관을 의미한다. 고메이494는 이름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꾀했다. 기존 식품관과 달리 레스토랑 비중을 70%까지 늘렸다. 좌석수는 113석에서 300석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이태원·한남동 등지에 있는 먹거리 골목에서 줄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을 전면 배치했다.

CEO의 특명 “구석구석 다 바꿔”

주문번호판에 GPS를 탑재해 고객이 있는 곳으로 직접 서빙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객 반응은 뜨거웠지만 문제가 있었다. 레스토랑이 늘어난 만큼 식료품을 배치할 공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바이빅(Buy Big) 서비스’를 도입했다. 라면박스·생수·쌀 등 부피가 큰 제품을 진열하는 대신 ‘주문카드(빅카드)’를 비치했다.

이로써 고객들은 무거운 제품을 굳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됐다. 카드를 갖고 계산대에서 결제만 하면 해당 제품을 고객의 차량까지 날라줬기 때문이다. 고객의 마음을 꿰뚫은 디테일한 서비스다. 회사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고객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갤러리아 명품관이 이런 서비스를 도입한 덴 박 대표의 디테일 경영이 한몫 톡톡히 했다. 박 대표는 2005~2011년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서 근무했다.

▲ 3월 13일 새롭게 오프한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 내부. 칸막이가 없어 거대한 편집숍처럼 보인다.[사진=한화갤러리아 제공]
현대카드 마케팅 본부장(전무) 시절(2009~2011년)에는 루이뷔통, 할리데이비슨,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과 손잡고 획기적인 VVIP 고객마케팅 방식을 도입했다. 슈퍼콘서트·슈퍼매치 시리즈 등 초대형 문화·스포츠 이벤트 마케팅을 도입한 주인공도 그다.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가 업계 2위로 성장한 원동력을 박 대표가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디테일의 시작점은 고메이494

 
그만큼 그는 디테일에 강했다. 2010년 현대카드 마케팅 본부장으로 있을 때 박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은 CI만 바꾸고 기업 이미지를 바꿨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기업과 관련해 보여지는 모든 것이 기업 이미지다. CI는 기본이고 그 회사에서 발행하는 명함, 심지어는 영수증마저도 그 기업의 이미지를 말해준다.” 디테일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사실 박 대표가 갤러리아백화점에 취임할 때 평가가 엇갈렸다. 하나는 현대카드에서 보여준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갤러리아를 변화시킬 거라는 평이었다. 다른 하나는 위상이 약해진 갤러리아 명품관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회의적 시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고메이494는 압구정의 ‘맛집지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웨스트 역시 평가가 후하다. 실적도 개선됐다. 고메이494는 오픈 이후 1년 동안 매출은 25% 성장하고 이용객수는 60% 늘어났다. 웨스트 2~5층의 두달간(3월 13일~5월 12일 총 61일)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높고 가파르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DNA를 전체 갤러리아 백화점에 이전하는 것이다. 박 대표는 올해부터 갤러리아 타임월드(갤러리아백화점 대전점)를 시작으로 모든 지점의 DNA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명품관을 비롯 센터시티·진주점·타임월드·수원점 5곳이다. 면세점 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갤러리아 백화점의 첫 면세점인 제주국제공항 면세점은 올 7월 오픈한다. 그의 ‘디테일 경영’이 갤러리아 백화점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갤러리아의 변신은 지금부터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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