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대표

세쿼이아캐피탈. 야후의 초석을 세운 벤처캐피탈(VC)다. 이 VC는 구글이 글로벌 검색엔진으로 발돋움하는 텃밭도 일궈줬다. 이 세계적인 VC가 한국의 소셜커머스 업체를 콕 찍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 ‘쿠팡’이다. 세쿼이아캐피탈의 눈에 비친 쿠팡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범석 대표에서 답을 찾아봤다.

▲ 김범석 대표가 실리콘밸리 명문 VC인 세쿼이아캐피탈 등으로부터 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다.[사진=쿠팡 제공]
# 1995년 초라한 행색의 두 젊은이는 5쪽짜리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 헤맸다. 사업 아이템은 다른 인터넷 웹사이트 목록을 분류하는 기술. 팀조차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초창기 야후의 공동창업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였다. 바로 그때, 한 밴처캐피탈(VC)이 이들에게 2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지금의 야후가 만들어졌다. 그 VC가 없었다면 야후도 없었다는 얘기다.

# 1999년 구글의 두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글로벌 시장을 뚫을 요량으로 막대한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 VC는 야후에게 그랬던 것처럼 두 창업자에게 1250만 달러를 베팅한다. 흥미롭게도 이 돈을 받은 구글은 야후를 제치고 세계적인 검색 엔진을 개발한다.  이 VC는 세쿼이아캐피탈이다. 오라클(1982년), 시스코(1987년) 등 글로벌 기업에 투자해 그들을 키우는 데 자양분을 줬다. 요즘도 그렇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핫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타트업 중 상당수는 세쿼이아캐피탈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
 
 
에어비앤비•드롭박스•인스타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페이스북에 1조원이 넘는 가격에 매각된 와츠앱도 마찬가지다.  이런 세쿼이아캐피탈이 이번엔 한국 기업을 콕 찍었다. 소셜커머스 쿠팡이 주인공이다.세쿼이아캐피탈은 올 5월 29일 그린옥스•로즈파크•론치타임 등과 함께 1억 달러를 쿠팡에 투자했다. 주목할 점은 세쿼이아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 회장이 투자를 주도했다는 거다.  미美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 출신인 모리츠 회장은 투자 결정 전 창업자 스토리부터 사업의 디테일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모리츠 회장이 쿠팡을 점찍은 이유가 뭘까. 모리츠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 환경은 여러 면에서 특별하고 성장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면서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김범석 대표와 쿠팡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처럼 한국은 매력적인 시장이고 쿠팡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 8월 출범한 쿠팡의 지난해 거래액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창업 반년 만에 회원수 100만명을 넘기고 2012년 1월에는 회원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6월에는 월 거래액 1000억원을 찍고 같은해 11월에는 업계 최초로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다. 물론 쿠팡만 고속성장을 한 건 아니다.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비슷한 성장을 보였다. 쿠팡보다 3개월 먼저 소셜커머스 시장에 뛰어든 티몬은 지난해 12월 연 거래액 1조원을 넘겼다. 쿠팡보다 2개월 늦게 소셜커머스 시장에 합류한 위메프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비슷한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팀 세분화해 ‘스피드 경영’ 구현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모바일’ 시장이다. 쿠팡은 2012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22개월 동안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를 통틀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방문자수 1위를 지키고 있다. 올 4월 기준 쿠팡의 모바일앱 방문자수는 702만명, 티몬은 464만명, 위메프는 590만명이다. 소셜커머스 업체의 매출 가운데 60% 이상이 모바일 매출에서 나온다는 점, 최근 전자상거래의 초점이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쿠팡의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비결은 김범석 대표의 고객 중심 경영에 있었다. 빠르게 성장하는 모바일 시장에서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고객 니즈를 파악하고 학습해 원하는 서비스를 재빨리 내놔야 한다.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모바일앱을 업데이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대표는 이를 위해 기술적 토대부터 마련했다. 쿠팡의 개발팀에 업계 최초로 애자일(Agile) 방식을 도입한 거다. 애자일 방법론은 ‘민첩성’을 의미하는 선진기법이다.

쿠팡은 애자일의 일환으로 개발팀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각각 PO(프로덕트 오너)를 배치했다. 이렇게 세분화된 팀은 각각의 중기 목표를 바탕으로 업무 우선순위 목록을 정하고 스스로 작업을 진행한다. 쿠팡의 모바일앱 업데이트가 유독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다. 고객 중심의 사용자환경(UI)을 구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객 서비스에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한다. 콜센터가 대표적이다. 올 4월에는 성수•염창•홍대 등 3개 지역에 있던 고객센터를 독산동 현대지식산업센터로 통합해 서비스 일원화를 꾀했다.

쿠팡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2011년부터 주말,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365일 콜센터를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빠른 배송을 위해 물류센터까지 오픈했다. 김 대표의 고객 중심 경영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한번은 쿠팡의 직원들이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행동전략을 써내는 일이 있었다. 이때 한 개발자가 ‘매일 출근할 때 고객에게 쿠팡이 고쳐야 할 점을 묻겠다’는 행동전략을 제출했다. 이 개발자는 말만 한 게 아니었다.

매일 아침 실제로 출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들은 김 대표는 이 개발자에게 가족과 동행할 수 있는 미국 디즈니랜드행行 티켓을 건넸다. 고객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김 대표가 개발자의 노력을 높이 산거다. 사실 김 대표는 일찍부터 창업에 눈을 떴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대학생을 상대로 콘텐트와 커머스를 결합해 잡지 ‘커런트(Current)’를 창간해 운영하다가 2001년 뉴스위크(Newsweek)에 매각한 경험도 있다.

2002년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컨설턴트로 입사해 2년간 근무하다가 2004년 퇴사 후 명문대생을 상대로 한 잡지 ‘빈티지 미디어’를 만들어 운영했다. 2009년 김 대표는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했지만 이내 학업을 중단하고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업 도중 그루폰과 미국의 타임세일 사이트 길트(Gilt)의 사업모델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고객 중심 경영으로 성장 일로

 
그는 당시 이 사업모델을 한국으로 들여오자고 생각했다. 한국시장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김 대표는 창업을 위해 투자금을 모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세계적인 투자자 빌 애크먼의 헤지펀드를 포함해 2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아 창업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해외 투자자와의 인맥을 형성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투자를 받았다.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김 대표는 알토스벤처스, 매버릭캐피털과 그린옥스로부터 6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이런 해외자금은 쿠팡의 성장 원동력이 됐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쿠팡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김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명문 VC에까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숨 돌릴 법도 하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 업체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기존 유통업체까지 모바일 시장에 가세하고 나섰다. 김 대표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쿠팡’을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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