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어떻게 부를 키웠나

▲ 글로벌 경기침체기. 부자는 부들 더 키웠고, 서민의 삶은 더 곤궁해졌다. 사진은 고층빌딩과 대비되는 서울 개포동 판자촌의 모습.[사진=뉴시스]
사상 유례 없다는 글로벌 경기침체기. 서민 지갑은 얇아진 지 오래인데, 부유층은 더 많은 부를 쌓고 있다. ‘노동보다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빠르다’는 걸 주장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국내 상황이 그렇다. 대체 왜일까. 2012년 더스쿠프가 분석한 ‘상위 1% 자산비중도’를 다시 한번 꺼내봤다.

‘금융위기는 예측ㆍ예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담은 책 「블랙스완」. 이 책으로 ‘Mr. 둠’의 반열에 오른 이가 있다.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다. 그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작심한 듯 비판했다.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경제이론을 만든 학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는 건 문제가 있다.” 경제학 학설 중 하나에 불과했던 ‘투자위험 관리모델’의 개발자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한 탓에 많은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었다. 탈레브 교수는 “1990년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 해리 마르코위츠(시카고대)ㆍ윌리엄 샤프(스탠퍼드대)ㆍ머튼 밀러(시카고대) 교수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꼬집었다.

노벨경제학상 논란은 2011년에도 있었다. ‘수상자가 과연 글로벌 경제에 도움을 줬느냐’는 거였다. 당시 수상자는 토머스 서전트 뉴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 두 학자는 경제정책과 거시변수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했는데, 기본가정은 다음과 같았다. “합리적인 인간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경제를 잘 유지하고 이끈다.” 21세기 주류경제학 ‘신자유주의’의 철학 그대로였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때문에 버블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논리였다. 두 학자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을 둘러싸고 이견이 제기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합리성’ ‘시장의 효율성’을 맹신한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를 예측하는 데 실패해서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간의 경제학은 이론의 아름다움을 진실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노벨경제학상까지 흔들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한국경제의 역사를 보면 쉽게 풀 수 있다. 사회 양극화가 신자유주의 경제원리가 도입되면서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1980년대. 근로자의 1인당 생산성과 임금은 ‘정비례’로 증가했다. 한 사람의 생산성이 늘면 한 사람의 임금도 오르는 식이었다. 이런 흐름이 무너진 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자유주의 원리가 도입되면서다.

경제학, 바른 길 가고 있나

사실 DJ정부로선 신자유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들어 국내 기업의 성장세에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가격 면에선 중국ㆍ인도 등 후발 신흥국에, 품질에선 선진국에 뒤쳐졌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으로 군림하던 한국경제는 졸지에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했다. 기업은 하루라도 빨리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제품 판매가를 낮추면서도 수익을 끌어올려야 했다. 가장 빠른 방법이 있었다. ‘인건비’에 메스를 대는 거였다. 그 결과, 많은 근로자가 직장을 잃거나 임금이 떨어졌다. 바로 이게 외환위기 ‘구조조정 후폭풍’이다.

 
한국은행ㆍ고용노동부의 통계를 보자. 1990년을 100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기 전인 1992년 국내 1인당 생산성과 실질임금은 각각 112, 113이었다. 큰 차이가 없다. 일한 만큼 벌었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도입 후인 2002년 1인당 생산성은 186으로, 10년 전보다 66포인트 커졌다. 반면 실질임금은 같은 기간 43포인트(1992년 113→2002년 161) 오르는 데 그쳤다. 더 큰 문제는 1인당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지표의 차이는 2002년 25포인트였는데, 2010년엔 79포인트로 3배 이상 커졌다. 일한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 1인당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괴리현상은 서민경제를 죽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실질임금이 많이 오르지 않으면 근로자의 지갑이 얇아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유효수요가 감소한다. 반대로 1인당 생산성은 높아졌기 때문에 누군가는 쏟아지는 제품을 사야 한다. 그런데 근로자는 여유자금이 많지 않다. 대체 무슨 돈으로 제품을 구입하겠는가. 바로 이때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은 절묘한 타개책을 내놨다. ‘부채의 경제학’이었다. 부족한 수요를 ‘빚(부채)’으로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금융회사가 동참했다. 실제로 국내 금융회사는 2000년 이후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3년 472조6000억원이던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올해 1000조원을 훌쩍 넘었다. 가계 부채가 연평균 60조원이 넘게 늘어난 셈이다. 자연스럽게 소비가 늘어났지만 가계 한구석에는 빚이 쌓이고 있었다. 경기가 상승세를 탈 때, 빚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빚의 위력은 경기가 하락하는 순간 나타난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민경제가 침체하자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가계부채 수준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임계치’를 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민 부채 늘려 자산시장 확대

한국은행이 공동연구를 통해 발표한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가계부채는 개인신용 증가로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가 있지만 일정 한도를 넘어가면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가계 소비를 위축시키는 단계에 도달한다. 소득이 있어도 빚을 갚느라 소비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자상환비율의 임계치(추정)는 2.51%다. 현재 이자상환비율은 2.72%로, 임계치를 넘어섰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박양수 한국은행 계량모형부장(당시)은 “2009년 3분기 이후 임계치를 계속 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우리나라가 임계치를 넘었던 시기는 1997~1998년뿐이었다.

부채의 경제학은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부유층의 상황은 다르다. 아니, 정반대다. 세계경기침체 가운데서도 부유층의 소득은 되레 늘어나고 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발표한 ‘한국의 소득 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 보고서(2010년ㆍ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상위 1%의 월 평균 소득은 2008년 1억8691만원에서 2010년 1억9555만원으로 늘었다. 2008년에는 월 9739만원만 벌어도 소득 상위 1%에 들었지만 2010년엔 1억488만원의 수입을 올려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 소득은 정체된 지 오래인데, 부유층은 더 많은 부를 쌓은 셈이다. 왜일까. 답은 쉽게 나온다. 대부분의 서민은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근로소득이 주 수입원이다. 소득 상위 1%는 근로소득보다는 ‘자산을 굴려’ 버는 돈이 많다. 김낙년 교수의 보고서를 보면, 2010년 상위 1%의 소득별 구성비는 근로소득(57.4%), 사업ㆍ부동산소득(29.7%), 배당소득(9.4%), 이자소득(2.8%)이었다. 전체 소득자 평균과 비교하면 근로소득 비중이 낮은 반면 사업ㆍ부동산 소득은 월등히 높았다. 상위 1%의 배당소득은 전체 평균(2.0%)보다 약 4배가 많았다.

그렇다면 부유층은 얼마나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까. 부동산 자산부터 보자. 안전행정부의 ‘개인별 토지소유현황(2005년)’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1%가 전국 부동산의 51%를 보유하고 있다. 서울 부동산의 68.7%는 서울시민의 1%가 갖고 있다. 국민이든 시민이든 전체의 ‘1%’가 부동산의 절반이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득 상위 1%의 총자산ㆍ순자산ㆍ금융자산의 비중도 부동산과 비슷하다. 국민연금의 ‘노후보장패널조사(2008년)’ 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소득 상위 1%의 총자산과 순자산은 전체의 12%에 달했다. 소득 99%의 평균(0.88%)보다 13.5배 많았다. 소득 상위 1%의 금융자산 비중은 전체의 18.4%에 달했다. 소득 99%의 평균(0.82%)보다 22.3배가 많다. 부를 가진 사람이 더 큰 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서울시 부동산의 3분의 2가량은 시민 1%가 보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부유층이 자본을 축적할수록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금융ㆍ자산소득까지 빠르게 증가해 부가 더 집중됐다는 얘기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2012년 열린 ‘신자유주의 이후…’라는 토론회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신자유주의 원칙상 가계 대출로 조달한 자금은 급박한 소비의 필요를 충당하고 남은 금액만큼 자산 시장으로 환수된다. 가계 부문에서 유입되는 대규모 자금으로 자산시장 규모가 확대된다. 자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전체 모델에 선순환 구조가 마련된다. 자산 가격의 지속적 상승은 자산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가계부채가 늘수록 자산이 많은 이에겐 기회가 온다는 얘기다.

국민 1%가 전국 땅 50% 이상 보유

한국의 과제는 명확하다. 부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대안이 거론된다. 첫째는 ‘낙수효과(trickle down)’다.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落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논리다. 분배보다는 성장,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주장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통계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산꼭대기에 고인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딱 하나 남는다. 현재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손질하는 것이다. 조세제도와 재정지출을 잘 활용해 부유층의 소득을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소득재분배 정책’만 잘 다듬으면 부의 양극화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8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세전 지니계수는 0.344로 낮지만 세후 지니계수는 0.315로, OECD 평균(0.314)보다 높다. [※참고: 소득의 불균형 상태를 확인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수인 ‘지니계수’의 결과는 숫자 ‘0~1’에서 나타난다. 0은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은 상태, 1은 한 사람이 소득을 독식한 상태다. 부유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을수록 숫자가 커지고,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한국의 소득재분배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땀 흘린 노동이 ‘자본’을 이기는 비결.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김은경 더스쿠프 객원기자 kekis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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