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주유소협회 4가지 쟁점

▲ 주유소협회는 정부의 새 수급보고 시스템이 도입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석유수급보고 전산시스템 도입을 두고 한국주유소협회(주유소협회)와 정부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편에선 “또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구석이 많다. 도리어 이 시스템의 도입 명분이 더 흐릿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주유소협회의 주장을 4가지 쟁점으로 정리했다.

정부와 주유소협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의 보고 기간을 사이에 두고다. 산업자원통상부는 7월 1일부터 석유판매업자를 대상으로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 보고를 월간에서 주간으로 변경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규칙’을 시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주유소협회가 새 시스템 도입에 반대하며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며 버텼다. 주유소협회는 6월 12일로 예정했던 파업을 유보했지만 24일 다시 파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유소협회 측과 산자부 관계자들이 6월 11일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유소협회는 “석유 수급상황 보고주기를 단축하는 것은 영업자유 침해”라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해놓은 상태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주유소업계의 밥그릇 싸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저간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혼재해 있다. 새로운 수급보고시스템의 4가지 쟁점을 짚어보자.

Issue 1 | 가짜석유 근절, 가능한가

수급보고시스템 변경의 핵심은 현행 월간 단위 보고를 주간 단위로 바꾸고, 수기 형식의 보고를 전산시스템으로 바꾸는 거다. 석유유통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주간 단위로 행해지는 가짜석유 유통을 막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수급보고시스템으로 바꾸면 가짜석유 유통을 막을 수 있느냐다. 줄줄 새는 혈세를 잡아낸다면 실효는 있다. 새 시스템을 도입해서 가짜 석유 유통을 제대로 적발하는 게 가능한지 살펴봐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이 시스템을 도입ㆍ시행하는데 무려 131억원의 예산을 잡아 놨다.

강경성 산자부(석유관리과) 과장은 “가짜 석유 유통의 경우 일주일만에 팔고 사라진다”며 “전산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물량보고가 들어오고 주간보고가 가능해지면 가짜 석유 유통업자들을 적시에 단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유소협회의 주장은 다르다. 이 협회 심재명 팀장은 “가짜 석유는 경유와 등유를 섞어 만드는데, 경유ㆍ등유를 각각 사서 기름탱크에 넣고 팔면 어떻게 잡겠는가”라며 “보고시스템을 바꾼다고 가짜 석유 유통이 근절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짜 석유는 주유세금체계만 바꿔도 막을 수 있다. 언급했듯 가짜 석유는 값싼 등유를 경유에 섞어 만든다. 원래 등유는 경유보다 비싸다. 그런데 경유가 더 비싸게 팔리는 이유는 등유에 매기는 세금이 경유보다 훨씬 적어서다. 이를 통해 가짜석유업자는 마진을 남기는데, 이것만 바로잡아도 가짜석유를 근절할 수 있다. 

세금으로 근절 가능한 가짜 석유

강경성 과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세율은 여러 가지를 종합하고 고려해서 정한다. 가짜 석유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문제들을 다 등한시하게 될 수도 있다. 서민 연료에 속하는 등유에 똑같은 세금을 매기고, 추후에 세금을 환급하면 된다는 주장은 행정의 불편함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행정 편의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Issue 2 | 시스템 변경 경제효과 4조원?

정부는 새 시스템을 도입하면 4조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과다 산정 논란이 나온다. 한국석유관리원은 가짜 석유 유통에서 기인하는 탈세규모를 1조1000억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 규모를 7300억원으로 추정한다. 추정치가 다른 이유는 한국석유관리원이 가짜 휘발유 원료의 예상유통량을 실제보다 높게 잡아서다. 문춘걸 한양대(경제학) 교수는 “한국석유관리원의 가짜 석유 탈세규모 추정치는 모두 중대한 계량경제학적 결함과 비현실적인 가정을 포함하고 있어 탈세규모 추정치의 신뢰도는 아주 낮다”고 지적했다.

강경성 산자부 석유관리과 과장은 “탈세는 어차피 지하경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없다”며 “어떻게 추정하느냐의 방법론이나 연구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조사를 통해 추정치를 냈지만 정확도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탁상행정으로 새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Issue 3 |  새 보고시스템, 오류 없나

새 시스템이 100% 작동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정부는 올초 주유소 사업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시스템을 시연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은 끝났지만 설치업체 선정이 늦어진 데다 새 시스템 구동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완벽하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 4월 발표한 ‘석유거래상황 보고제도 변경의 업계 영향조사’에 따르면 주유소 운영자의 63.3%가 50대 이상으로 전자단말기(POS)가 있는 주유소는 61.6%였다. 주유기와 POS 연결을 위한 배선매립이 된 주우소는 58.2%였고, 주유소 운영자의 36.7%는 PC 등 전산장비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131억원짜리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Issue 4 | 주유소협회, 기득권 지키려 반대하나

주유소협회가 금전적인 이득 때문에 정부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 수급보고시스템을 통해 주유소협회는 매월 5000만원의 수익을 올려왔다. 거래상황기록부 작성이 석유공사의 위탁사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유소협회 일부 회원은 자신들의 자료를 받아 수급보고를 대신해주는 주유소협회에 약 3만원의 협회비를 낸다. 회비가 강제적이진 않지만 새 수급보고시스템를 도입하면 주유소협회의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심재명 팀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새 시스템의 도입을 반대하는 건 협회가 아니라 회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가 수익 때문에 기득권 싸움을 벌인다는 주장은 너무 나간 이야기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주유소 운영자 86.5%가 새 시스템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영업비밀 침해 또는 영업정보 유출 우려(33.9%)’와 ‘거래상황 관리 미숙으로 인한 단속대상 포함 우려(29.8%)’가 가장 많았다. 정부가 장부를 들여다본다는 것만큼이나 단순입력실수로 과태료를 낼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라는 것이다. 

주유소 사장 “우리가 잠재적 범죄자인가”

현행법상 월별수급보고를 잘못 기록하면 2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다. 새 시스템이 실시돼 주별수급보고를 잘못 기록하면 50만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문제는 월별로 정산을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지만 주 단위로 바꾸면 실수가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다고 주마다 50만원씩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정부는 “누적회수 1회에 한해서만 실수를 인정한다”며 “과태료 부담이 새 시스템 도입의 반대명분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의 새 시스템 도입에 모두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이 많은 한국자영주유소협회의 경우는 “IT시대에 걸맞은 정책”이라며 찬성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정부의 정책적ㆍ금전적 지원을 받아 자리를 잡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문제에서는 중립성을 갖추기 어렵다. 한 주유소 운영자는 “정부는 모든 주유소 사업자를 잠정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정부가 시각을 바꾸면 진짜 뭘 해야 하는지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