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미국 이동통신시장은 버라이즌, AT&T 두 기업이 이끌어 왔다. 둘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70%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반독점 상태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 이통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어서다. 손 회장은 “가격경쟁력을 통해 반독과점 시장을 무너뜨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손정의 스토리’를 풀어보자.

▲ '바람을 몰고 다니는 남자' 손정의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손정의(Masayoshi Son) 소프트뱅크 회장. 그에게는 이런 별명이 있다. ‘바람을 몰고 다니는 남자’. 정말 그렇다. 6월 5일 손 회장은 도쿄東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간의 감정을 읽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키 121㎝, 무게 28㎏. 인간을 닮은 이 로봇은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거나 머리ㆍ어깨ㆍ팔꿈치ㆍ손목ㆍ손ㆍ허리ㆍ무릎을 움직일 수 있다.

6월 5일 발표회장서 페퍼는 손 회장의 행동에 맞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손 회장이 웃으면 “진짜로 웃는 것 같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 대답을 들은 손 회장이 크게 웃자 “그게 진짜 웃는 것”이라고 답해 폭소를 끌어냈다. 농담을 던지는 것은 물론 춤을 추고 랩도 한다.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톤, 그리고 제스처를 분석해 반응한다. CNN은 페퍼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더 이상 감정이 메마른 사람, 딱딱한 사람을 ‘로봇’으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로봇의 정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더 놀라운 건 가격이다. 손 회장은 “페퍼를 내년 2월부터 일반 가정에 19만8000엔(약 200만원)으로 발매한다”며 “이는 컴퓨터 1대 값과 다를 바 없다”고 웃었다. 같은 날 손 회장은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6월 5일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는 일본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미국 3위 이동통신업체 스프린트가 T모바일을 23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7월 스프린트를 216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런데 1년이 채 안 돼 4위 통신업체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거다. 현재 미국시장 이동통신사 1위 기업 버라이즌은 1억2200만명, 2위 AT&T는 1억116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두 통신사의 시장점유율은 70%에 달해 반독과점 상태나 마찬가지다. 손 회장이 T모바일 인수에 성공하면 가입자 수가 1억명을 넘어서는 거대 이동통신사가 된다.
 
손 회장의 목표는 단순하다. 저렴한 요금으로 반독점 상태를 깨고 시장 1위를 차지하는 거다. 손 회장은 올 3월 미국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미국 통신시장은 2개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스프린트ㆍT모바일 혼자 이들을 대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둘이 힘을 합치면 진짜 싸움(real fight)이 가능하다. 1위를 원한다. 수익은 중요하지 않다. 가격경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거다.”

이통업계 다크호스 소프트뱅크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손 회장은 이미 일본 이동통신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 2013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에서 업계 1위 기업 NTT도코모를 따돌렸다. 2004년 이동통신시장에 뛰어든 소프트뱅크의 2013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41.5% 늘어난 5270억엔을 기록, 1위에 올랐다. 이전까지 1위를 지키던 NTT도코모는 같은 기간 4647억엔의 순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소프트뱅크가 NTT도코모를 역전한 덴 자회사 편입효과가 컸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ㆍ윌컴ㆍ슈퍼셀 등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 매출 파이를 키웠다. 아이폰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도 1위 등극을 도왔다.  소프트뱅크는 아이폰5가 나오기 전까지 아이폰 독점 판매권를 통해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올 1분기 일본에서 아이폰의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은 36.6%로 1위를 차지했다. 3명 중 1명은 아이폰을 사용한다는 얘기다. 아이폰 독점 판매권을 가진 소프트뱅크가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손 회장은 일찍부터 아이폰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2005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손 회장은 일찍부터 스마트폰이 세계를 지배할 거란 걸 눈치챘다. 그는 MP3 아이팟에 모바일 기능을 추가한 스마트폰(아이폰)을 스케치한 그림을 들고 다짜고짜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하나가 되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잡스밖에 없다고 여겼다.
 
“잡스, 아이팟(iPod)에 전화 기능을 추가한 제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소.” 잡스는 답했다. “그냥 가져가게. 나만의 그림이 있네.” 손 회장은 말했다. “그러면 제품(아이폰)을 출시하면 내게 일본시장 독점권을 주게.” 잡스는 말했다. “당신은 미쳤소. 우리는 아무에게도 스마트폰을 만들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당신이 처음이오.” 

잡스는 손 회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한술 더 떠 독점권을 문서화 해달라고 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인을 하지 않을 거요. 당신의 회사는 이동통신사가 없지 않소.” “잡스, 일단 사인부터 해주게. 이동통신사를 가져오겠네.” 2006년. 그는 약속대로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영국 통신회사 보다폰의 일본 법인을 사들여 이동통신시장에 발을 담갔다. 이를 위해서는 2조엔이라는 거금이 필요했는데 이는 당시 소프트뱅크 시가총액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한편에선 그를 보고 이렇게 수군댔다. ‘침몰하는 배에 탄 격이다’.

하지만 손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0년 안에 일본 최대 통신기업 NTT도코모를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때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손 회장은 19세 때 50년 인생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운영자금을 모아 40대에 일대 승부를 건다. 50대에는 사업을 완성시키고 60대에는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 손정의 회장은 언제나 앞서 나간다. 19세 때 이미 50년 인생 계획을 세웠다.[사진=뉴시스]
미국 유학길에서 일본에 돌아와 20대에 자본금 1000만엔으로 소프트뱅크를 세우고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이후 전자게임의 붐과 함께 이름을 날린다. 30대에는 M&A(인수•합병)를 통해 세를 불렸다. 1995년 2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장 컴덱스를 매입하고 1996년 미국 최대의 검색엔진인 야후의 주식을 확보해 최대 주주가 돼는 동시에 야후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손정의와 잡스, 그 비하인드 스토리

40대인 2001년에는 야후BB를 출범하고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50세가 되던 2006년 보다폰 인수를 통해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 그는 일본을 넘어 미국시장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의 60대 계획은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는 ‘손정의 2.0’를 배출해내기 위해 2010년 후계자 양성소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손 회장의 후계자가 되려면 아래와 같은 가치관을 새겨야 한다.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뜻을 높이 정의를 유지해라’ ‘압도적인 넘버원을 고집해라’ ‘머리가 터져나갈 정도로 고민해라’ ‘바닥에 발이 닿는 혁명은 없다’ 소프트뱅크의 비전은 ‘정보혁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라’다. 손 회장의 기업 철학 역시 행복과 궤를 함께한다. “누군가가 고맙게 생각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고독한 것, 그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행복전도사, 그에게 마지막 남은 숙제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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