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식 동부하이텍 대표의 반도체 경영학

1990년대 IT산업을 이끈 것은 컴퓨터다. 2000년대엔 인터넷과 모바일폰, 2010년대엔 혁신의 아이콘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꿨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반도체’가 있었다. 최근엔 아날로그반도체가 주목을 받는다. 세상과 디지털을 연결할 핵심부품이라서다. 여기에 마지막 승부를 건 이가 있다. 32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최창식 동부하이텍 대표다.

▲ 올 6월이 지나면 최창식 동부하이텍 대표의 승부가 통했는지 드러날 전망이다. [사진=동부하이텍 제공]
1980년 어느날, 한 청년은 TV 프로그램에 푹 빠졌다. 선진국의 첨단기술 ‘반도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였다. 당시만 해도 반도체는 생소한 분야였다. 어렵고 따분했을 법도 한데 청년에겐 흥미진진했다. TVㆍ라디오ㆍ냉장고 등 제품마다 반도체가 들어가고, 제품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최첨단 기술인 반도체를 통해 국가와 산업이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던 청년은 엔지니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반도체는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로부터 32년이 흐른 2012년. TV를 보며 반도체 엔지니어를 꿈꿨던 청년은 국내 반도체기업을 이끄는 수장이 됐다. 최창식 동부하이텍 대표다. 2012년 3월 동부하이텍은 최 대표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동부하이텍은 국내 최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다. 파운드리는 주문자의 수요에 맞춰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주변에선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똑똑하고 열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의 평가처럼 최 대표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반도체 전문가다. 엔지니어로 시작해 30여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와 삼성SDI에 몸을 담았다. 사실 그는 동부그룹의 반도체 사업에 몸을 담았던 적이 있다. 1981년 동부산업(현 동부메탈) 기술개발실에 입사해 2년간 근무했다. 2012년 3월 동부하이텍 CEO가 됐으니, 32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의 발자취를 훑어보자. 1983년 동부산업에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최 대표는 D램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주도했다.

공로를 인정받은 후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는데, 시스템반도체 분야 중 하나인 주문형반도체(ASIC) 공정개발이었다. 직급은 팀장이었지만 임무는 막중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시스템반도체가 취약해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 초반 최 대표(당시 전무)는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를 이끌었던 임형규 사장(당시)을 도와 메모리 중심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를 비메모리 사업부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며 “실력이 뛰어난 데다 열정적이어서 어렵고 혹독하다는 시스템 LSI 제조센터장과 파운드리센터장을 차례로 역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메모리반도체부터 시스템반도체까지 섭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때문인지 최 대표의 선임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동부하이텍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도체 부문 모두 섭렵한 전문가

동부하이텍으로 둥지를 옮긴 최 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두가지다. 첫째는 시스템 사업부의 대표적인 분야인 아날로그반도체를 육성하는 거다. 향후 산업을 주도할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반도체는 일상생활에서 빛ㆍ소리ㆍ압력ㆍ온도 등 각종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을 보면 아날로그반도체의 역할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22종의 반도체 중 메모리반도체는 3종인 데 반해 아날로그반도체는 19종이다. 아날로그반도체가 스마트폰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라는 얘기다. 이런 트렌드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부하이텍이 우수한 기술인력을 확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게 여의치 않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지 7년째이지만 전문 엔지니어 수급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지니어의 기술력과 양산 경험이 아날로그반도체의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최 대표가 마련한 자구책은 ‘산학협력 강화’다. 동부하이텍이 매년 ‘대학생 시스템반도체 IP 설계 공모전’을 개최하고, ‘아날로그반도체 리더스 포럼’을 마련해 세계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회를 진행하는 이유다. 지난해 6월엔 극동대와 산학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재학생 인턴십과 현장실습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극동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 장비공학과를 개설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건데, 미래전략도 구상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아날로그반도체 엔지니어링 그룹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미션은 실적 향상이다. 최 대표가 취임 이후 내실경영을 강화하는 데 집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2012년 5월 최 대표는 취임한 지 2개월 만에 강남테헤란로변 강남구 대치동 동부그룹 사옥에 있던 기획ㆍ인사ㆍ홍보ㆍ영업부서를 경기도 부천 원미동에 위치한 부천공장으로 이전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 구성원이 현장에 모여 있어야 한다는 최 대표의 방침에 따라 부천공장으로 이전했다”며 “현재 부천공장과 상우공장의 2공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덕인지 동부하이텍은 올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매출 1186억원, 영업이익 8억원을 기록한 것이다. 중국시장 매출이 늘어난 게 흑자전환의 원동력이 됐다. 전체 매출에서 중국 스마트폰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에서 15%로 늘며 매출액이 증가했다. 현재 동부하이텍은 중국 상하이上海와 베이징北京에 지사를 설립한 상태다. 증권사 관계자는 “적자를 만회했다는 것은 내실경영을 강화했다는 뜻이고, 실적을 끌어올린 것은 고수익 아날로그반도체 제품의 비중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켰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매각 전 회사 가치 끌어올려야

 
지난해 11월 동부그룹은 기업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핵심계열사인 동부하이텍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최 대표에겐 매각 전 동부하이텍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됐다. 다행히 동부하이텍의 반도체 사업이 호조를 띠면서 제 가치를 되찾을 전망이다. 시장은 동부하이텍의 매각 작업이 6월 안으로 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모교인 서울대 공과대학이 발행하는 매거진 ‘공대상상’에서 이렇게 밝혔다.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강건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공언한 대로 그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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