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의 진짜 이야기

누가 예상했겠는가. 진보교육감이 이리도 많이 뽑힐 줄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 화난 ‘엄마’들의 표심이 한몫했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게다. 교육현장의 고질병을 이참에 뿌리뽑았으면 바람이 선거결과에 투영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진보교육감이 등장하자 ‘전교조’를 잡지 못해 난리다. 보수언론은 전교조를 내세워 ‘이념논쟁’을 부추긴다. 법원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버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음에도 전교조의 항변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더스쿠프가 선생님들의 편지를 받았다. 전교조의 진짜 이야기다.

 
결과가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선거는 민심의 흐름을 반영한다. 선거 결과야말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얘기다. 이번 6ㆍ4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의중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17개 전국시도교육감선거였다. 다른 선거와 달리 결과가 뚜렷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교육감선거는 올 4월 초만 해도 시도선거에 밀려 ‘깜깜이 선거’로 치러질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선거 한달을 앞두고 상황이 급변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침몰한 세월호 참사다. 학교폭력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사교육비에 조용히 신음하던 학부모들은 사고를 목격한 후 ‘이대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 특히 엄마들이 움직였다는 얘기다. 6ㆍ4 지방선거에서 ‘앵그리 맘’이 최대 변수로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로 불거진 민심은 고스란히 교육감선거 결과에 반영됐다. 입시와 경쟁에 지친 학부모들은 인성과 창의를 내세운 진보 성향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그 결과 17개 지역 중 13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이 배출됐다. 2012년 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한 지역이 총 5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또 있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대거 등장했다. 교육감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13명의 진보교육감 중 8명이 전교조 교사 출신이다. 나머지 5명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에서 활동했다.

 
교육감의 권한은 막강하다. 전국 718만명의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중 605만명(85%)의 교육정책을 책임진다. 17개 시도교육청 전체 예산 55조원 중 45조9000억원을 집행하고, 교원 30만명의 인사권을 갖는다(2013년 기준). 교육감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한국교육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언론은 2년 만에 등장한 진보교육감을 집중조명했다.

보수언론도 앞다퉈 교육감선거를 분석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묘한 전개’가 시작됐다. 보수언론이 주목한 건 진보교육감이 아니라 전교조였다. 선거 다음날인 6월 5일, 일부 보수언론은 교육감선거와 전교조의 연관성을 부각해 기사를 내보냈다. ‘초중고생 80%가 전교조 성향 교육감 아래로’ ‘여與도 야野도 아닌 전교조의 압승’ ‘전교조가 교육권력 잡았다’ 등 제하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제목만 읽어도 전교조 출신의 교육감이 대거 등장해 학교현장이 위험에 빠졌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여기에 집권 여당까지 가세했다. 심윤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선거 다음날인 6월 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번 6ㆍ4 지방선거에서 걱정되는 것은 진보 성향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이라며 “교육현장이 이념 교육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을 겨냥한 것이다.

17명 중 8명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

 
보수진영의 이런 반응은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6월 19일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에 법외노조라고 통보한 고용노동부의 해석이 적합하다며 손을 들어줬다.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해직교사는 조합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없다. 이로써 전교조는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지 15년 만에 법외노조로 돌아갔다. 주목할 것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이후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이 나왔고,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거다. 교육부는 전교조 전임자의 복귀와 단체교섭 중지 등 후속조치에 착수하고, 전교조에 사무실 지원금을 반환하라고 요청했다. 전교조가 수세에 몰린 이유가 뭘까.

 
보수진영은 ‘전교조가 초심을 잃었다’고 말한다. 교육단체이자 노동조합으로서 순수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과거 전교조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비非민주적 군사정권시절 학교현장에 만연했던 부패와 비리에 맞섰던 것인데 언제부턴가 권리만 주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989년 창립 당시 전교조는 ‘촌지 안 받기’ ‘교과서 리베이트 거절하기’ ‘사립학교 비리채용 저지’ 등을 전개해 시민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보수진영의 주장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전교조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반대를 선언한 후 한편에선 ‘철밥통 챙기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도덕적 결함도 드러났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와 교생 성추행 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조직이 커지면서 지도부와 조합원의 소통 고리가 약해진 것도 원인을 미쳤다. 교육계는 전교조가 한때 10만명이었던 조합원이 6만명으로 감소하고 젊은 조합원이 줄어든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한다.

전교조도 일정 부분 잘못을 인정한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가 불거졌을 때 피해자는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조합원을 철저하게 보호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지도부와 조합원 간의 소통이 약해진 것 역시 전교조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원인은 과거 시스템을 유지한 탓이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옛날 방식으로 조직을 이끈 것이다.

▲ 전교조에서 시작된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가 교육현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전교조의 참교육에 담긴 가치까지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전교조에서 시작한 혁신학교ㆍ무상급식ㆍ학생인권조례가 교육현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서다.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등장에 우려만큼이나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진보교육감들은 입시와 경쟁의 고통을 해소할 방안으로 두가지를 꼽았다. ‘일반고 강화’와 ‘혁신학교 확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일반고가 2류 학교가 되고 슬럼화되는 현상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 것은 ‘일반고 전성시대’가 열릴 것임을 시사한다.

전교조 참교육에서 희망을…

 
그 방안으로 올해 혁신학교가 6개 시도에서 13개 시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올 3월 기준으로 혁신학교는 경기(282개교), 전북(100개교), 서울(67개교), 전남(65개교), 강원(41개교), 광주(23개교) 총 578개교다. 학급인원이 25명 이하인 혁신학교는 창의인성과 감성교육을 지향한다. 토론을 통한 창의적 수업과 학생이 참여하는 민주적 학교 운영이 특징이다. 교육계가 전교조의 참교육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교조와 진보교육감이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혁신학교의 성과를 일반고로 확대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다행히 전교조의 참교육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교조를 색안경을 끼고 볼 까닭이 없다는 얘기다. 더스쿠프가 전교조 조합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해는 진실 앞에서 풀리는 법이라서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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