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김준기 동부 회장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제조와 금융부문을 분리해서 자율협약과 구조조정을 진행하길 원하고 있다. [사진=동부그룹 제공]
동부제철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율협약에 들어간다. 동부그룹의 다른 제조계열사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금융계열사 지키기’에 나섰다. 채권단이 그룹 금융지주회사 격인 동부화재의 지분(최대주주 장남 김남호 부장)을 담보로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동부제철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에 들어가는 것은 동부그룹 제조 부문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부제철은 다른 계열사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 회사가 무너지면 그 여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그룹이 무너져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경영권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한 인수합병(M&A) 전문가의 말이다. 김준기 회장이 일군 동부그룹이 STX, 웅진처럼 공중 분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부그룹의 위기가 크고 깊어졌다. 동부는 지난해 11월 고강도 자구계획을 발표, 반도체 사업(동부하이텍)을 접는다고 밝혔다. 유동성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김준기 회장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올 6월 현재 그룹 제조 계열사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동부 핵심 계열사인 동부제철이 조만간 자율협약에 들어간다. 동부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류희경 수석부행장은 6월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동부제철에 자율협약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동부제철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 채권단이 논의를 거쳐 자율협약을 확정할 전망이다.

제조 부문 계열사 실적악화

자율협약이란 채권단이 채무 유예, 감자 등을 통해 부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강제적 구조조정이 뒤따르는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의 직전 단계로, 오너(대주주)의 경영이 제약을 받는다. 이 때문에 채권단이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금융권에선 동부제철 대표이사인 김 회장의 경영권 상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동부제철 한 개 계열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동부건설 등 다른 그룹 제조계열사도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현재 동부가 진행하고 있는 매각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자율협약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동부제철이 구조조정 대상이지만 유동성 위기에 빠진 동부의 상황과 국내외 경제여건을 보면 다른 계열사도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동부그룹은 동부화재 등 금융계열사만 남게 된다. 동부그룹의 사업은 크게 제조와 금융 분야로 나뉜다. 제조 부문에는 동부제철을 비롯해 동부건설,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등의 계열사가 있다. 이 중 자율협약을 신청한 동부제철은 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로 꼽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ㆍ조선 경기침체와 철강공급 과잉으로 동부제철의 실적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동부제철의 영업이익은 2010년 985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1년 167억원으로 83%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258억원을 기록했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영업손실 1038억원을 기록했고, 동부하이텍은 2002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단 한번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반면 동부화재, 동부생명 등 금융계열사의 실적은 크게 나쁘지 않다. 특히 그룹 대표 금융계열사인 동부화재는 손해보험업계 1ㆍ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103조6851억원, 영업이익 3841억원을 기록했다.

사실 동부는 동부제철 인천공장(동부인천스틸)의 매각자금(8000억~1조원 예상)으로 동부제철을 살리고자 했다. 동부제철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을 팔아 동부제철 당진공장(매출 80%)에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운 거다. 그러나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동부는 산업은행과 갈등을 겪었다. 산업은행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파는 패키지 매각을 추진했지만 동부는 개별 매각 방침을 고수했다. 또한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방식을 주장했다. 그래야 매각금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게 동부의 생각이었다.

 
양측은 추가담보를 놓고도 갈등을 겪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동부제철에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 14.06%를 담보로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김준기 회장의 거의 모든 재산이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김 부장 지분도 90%가량이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지만 주가상승 덕에 3000억원 정도 추가담보를 제공할 여력이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룹 제조 계열사와 법적으로 무관한 동부화재 김 부장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할 이유가 없어서다. 제조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를 금융 계열사와 연결해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그룹 유동성 리스크가 온 것은 분명한데, 김준기 회장은 금융과 제조를 분리해서 자율협약, 구조조정을 진행하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부화재는 금융계열사의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동부화재는 동부증권(19.92%), 동부생명(92.94%) 등의 지분을 보유하며 사실상 금융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 부장은 동부화재의 최대주주다. 담보로 제공했다 잘못될 경우 금융계열사 지배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 때문에 김 회장은 동부제철 등 제조 계열사가 자율협약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금융계열사만큼은 지킬 것으로 보인다. 여차하면 김 회장이 제조 분야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준기 회장 “금융계열사 지킨다”

그러나 채권단은 김 회장과 김 부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제조ㆍ금융 부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두 분야를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동부제철 인천공장 매각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시장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물건을 내놓는 것 역시 중요하다. 류희경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은 “추후 협상을 진행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면서도 “김남호 부장이 김준기 회장의 장남(특수 관계인)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대기업 구조조정 중 채권단과 오너의 갈등 모습이다. 오너가 어디까지는 내놓고 그 이후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부에선 그게 금융 부문이다. 추후 김준기 회장이 어떤 카드를 내밀지는 모른다. 하지만 큰 변화 없이 기 싸움이 길어진다면 김 회장이 불리해진다. 매물로 내놓은 계열사가 매각돼야 하는데 시장이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동부그룹. 이런 상황에서 금융 계열사 지키기에 나선 김준기 회장. 추후 그가 내밀 카드가 무엇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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