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 재개발 무산 위기

▲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으로 구룡마을 개발이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사진=김정덕]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인 강남 구룡마을이 도시개발사업 지정을 받은 2012년. 마을 주민들은 들떴다. 새 집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후 아무것도 진행된 것은 없고 시간만 흘렀다. 서울시와 강남구의 대립 때문이다. 효력은 이제 한달을 남겨두고 있다.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결국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서울시와 강남구가 개발 방식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하는 동안 도시개발구역 지정기한이 다가와서다. 올 8월 2일까지 개발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사업은 무산된다.

양측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서울시는 구룡마을을 개발한 뒤 토지소유주에게 땅이나 건물 등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환지혼용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강남구는 환지혼용방식으로 개발을 하면 일부 대토지소유주가 개발이익을 많이 가져갈 수 있다며, 특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토지소유주로부터 토지를 100% 사들인 다음 개발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1980년대에 지어진 판자촌에 살고 있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개발구역 지정기간이 끝날까봐서다. 

강남구 “감사 결과 인정 못해”

서울시와 강남구는 지난해 똑같은 문제(더스쿠프 통권 42호 14~15쪽 참고)로 대립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같은 당선자가 나오면서 사태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울시는 다른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말 강남구의 ‘개발이익 특혜’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구룡마을에 임대주택을 짓는 데 들어가는 건축비 1352억원을 토지주와 SH공사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구룡마을 개발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토지주의 부담률은 개발 후 오를 땅값의 49.3%였다. 토지주에게 환지를 해주는 대신 개발이익의 상당액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싼 가격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개발이익이 특정 대토지소유주에게 집중되는 것도 일부 줄일 수 있다. 서울시 주장에 따르면 전체 구룡마을 면적의 2~5% 정도가 환지됐을 때, 주민들에게 49㎡(약 15평)짜리 임대주택을 평균 보증금 2500만원(월세 19만원)에 보급할 수 있다. 하지만 강남구 주장대로라면 평균보증금은 5300만원(월세 35만원)으로 훌쩍 뛴다.

하지만 강남구는 절차를 문제 삼았다. 서울시가 2012년 5월까지만 해도 수용방식으로 논의하다가 같은 해 6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열린 후에 굳이 환지방식을 들고 나온 것인지 의문이라는 거다. 대토지주 특혜 문제와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게 된 배경이다. 사태가 해결되지 않자 양측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에 직접 감사까지 요청했다. 감사원은 올 6월 27일 ‘구룡마을 개발사업 관리실태’를 조사했고, “구룡마을 개발방식에 대해 무효를 주장할 만큼 명백한 하자가 없다”며 양측에 “조속히 실행 가능한 방안 마련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말하자면 서울시 손을 들어준 셈이다.

서울시는 올 7월 1일 강남구에 구룡마을 개발계획안을 재접수했다. 특히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가 구룡마을 개발방식을 결정한 것에 대한 법적 유효성이 인정됐고, 강남구가 제기했던 특혜의혹이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며 “구룡마을 개발계획안을 재접수하고 주민공람 등 개발 절차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강남구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7월 2일 기자회견을 갖고 “당초 계획대로 100% 수용ㆍ사용방식으로 투명하게 추진하기 바란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부당하게 변경한 환지방식을 직권취소하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신연희 구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들도 미약하다.

신 구청장은 “박원순 시장은 ‘강남구청장 면을 세워준다’고 운운하며, 인심 쓰듯이 환지규모를 2~5%로 최소화한 개발계획안을 제시했다”며 “이는 오히려 특혜 사실이 탄로 나자 뒤늦게 이를 축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임대주택 공급 시 입주대상자에 대한 자산 여부 등 공급기준을 명확히 정하지도 않았다”며 “고급자동차 소유자와 여러 주택 소유자 등 고액 자산 투기혐의자에게도 임대아파트를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환지혼용방식을 통한 특혜 의혹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명래 단국대(도시계획) 교수는 “환지 규모는 구청장이 결정하는 것이고, 구청이 환지 계획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그런데 벌써부터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 구청장은 감사원의 감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도시계획법에는 서울시장이 사업시행방식을 당초 공람내용과 다르게 할 때 달라진 내용을 재공람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수용ㆍ사용방식이 아닌 환지를 추가한 혼용방식으로 지정하면서도 명문화 된 게 없고, 주민 의견을 청취하지도 않은 채 구룡마을 도시개발 계획안을 고시했다는 게 신 구청장의 주장이다.

신 구청장은 “강남구는 도시개발법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와 국토부 유권해석에 따라 주민 공람을 누락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 정상적 절차를 진행하기를 촉구한다”며 “그럼에도 감사원이 ‘하자가 외형상 명백하지 않아 무효로 보기는 곤란하다’고 한 것은 부실 감사”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강남구가 구역 지정ㆍ고시 과정에서 충분히 이견을 제시할 수 있었음에도 뒤늦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며 오히려 “(강남구는) 이로 인해 개발방식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감사원까지 문제가 없다는 식의 결론까지 내린 마당에 강남구가 이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정작 답답해진 건 구룡마을 주민들이다. 신연희 구청장이 기자회견 말미에 “서울시가 특혜 여지가 없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거주민들의 신속한 재정착과 주거안정을 위해 언제든지 협의에 응할 것”이라며 추후 협상에 대한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구룡마을 도시개발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간이 한달밖에 남지 않아서다. 

남은 시간 한달, 애타는 구룡마을

현재 구룡마을 입구에는 개발을 막고 있는 강남구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널려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강남구는 우리를 위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대화요청에 응한 적도 없다”며 “마치 강남구에서 우리를 몰아내고 싶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와 개발 방식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주민들과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남구는 지난해 구룡마을 주민들이 정식으로 대화를 요청했을 때에도 오히려 경찰들을 배치해 구청 문을 닫고 그들의 출입을 막은  바 있다.

▲ 감사원 감사 결과 서울시의 개발방식 변경에 하자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강남구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막말로 그 한사람이 특혜를 좀 보면 어떤가. 고위공직자 후보자로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지 않았나. 대신 우리는 여기서 내집을 짓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왜 가장 중요한 걸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것만 눈에 들어오는지 강남구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