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대정전 진짜 없을까

▲ 전력거래소의 E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예비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올해는 걱정하지 않고 전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망이다. 이유는 그럴듯하다. 예비전략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150만~250만㎾)보다 훨씬 많은 예비전력(400만㎾)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블랙아웃은 예비력이 아닌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우리의 EMS가 속을 썩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위기 초비상, 예비력 160만㎾.” “블랙아웃 막으려면 절전 동참해야” “전력수요 관리하려면 전기요금 올려야” “전력수급 초비상, 9ㆍ15 순환정전 후 최대위기” “절전대책, 돈드는 수요관리 대신 강제수단 확대”…. 2011년 9ㆍ15 순환단전 사태 이후 전기량이 많은 여름과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으레 등장하는 전력난 관련 기사들이다. 전력공급이 위기라는 시그널이 잇따르자 국민은 절전캠페인에 동참하는 불편을 감수했고, 전기요금 인상도 허용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에는 그럴 걱정이 없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여름 전력수급이 대체로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놔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여름 기온이 낮고, 불량부품 납품비리 등으로 문제가 됐던 원전 대부분이 정상 가동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약 400만㎾의 예비전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도 긍정적 전력수급 전망에 한몫했다. 정부는 올여름 ‘문 열고 냉방영업’ 행위를 계속 단속하겠지만 민간에 ‘의무화’했던 냉방온도제한은 ‘권장’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전기사용량 규제도 폐지하고, 전기사용량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올여름엔 맘 놓고 전기를 써도 괜찮을까. 정부의 주장과 달리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한다. 예비전력이 충분하다는데 왜 그런 걸까. 전력거래소는 올초부터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이유는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의 부실운영, 한국형 전력계통운영시스템(K-EMS) 개발 관련 투자 의혹에 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현재 전력거래소가 운용할 수 있는 최대 전력은 약 7700만㎾다. 원전 77개의 생산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만한 전력을 운용하려면 당연히 철저하게 계산된 시스템을 운용해 경제적인 전력을 생산ㆍ공급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바로 EMS다. 발전기와 송전선 상태를 실시간 감시해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인 방법으로 발전소가 운영되도록 출력을 지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력거래소가 EMS를 도입한 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전정희(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전력거래소 EMS시스템 활용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울러 EMS 도입비용도 도마에 올랐다. 전력거래소가 2002년 미국 알톰사의 EMS를 도입할 때 들어간 비용은 220억원. 그후 2005~2010년 산업자원통상부(전 지식경제부)가 한전KDNㆍLS산전ㆍ전기연구원과 함께 EMS 국산화를 추진해 한국형 K-EMS를 352억원(출자기업 투자금액 포함)에 개발했다. 고가의 개발비가 들어간 K-EMS를 2011년 구입한 곳은 이번에도 전력거래소였는데, 322억원을 베팅했다. 외국산 EMS가 있음에도 아직 시험운행 중인 K-EMS를 300억원이 넘는 혈세를 동원해 구입했다는 얘기다. 

전력거래소 EMS 작동에 의혹

K-EMS는 개발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정상가동을 못하고 있다. ‘한국형 K-EMS 시스템이 제대로 개발된 게 맞느냐’ ‘해외 EMS를 베끼지 않았느냐’는 숱한 의혹이 새어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EMS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발전비용을 최소화하는 ‘경제급전’이 가능하다. 경제급전이란 수학적 계산을 토대로 가장 발전비용이 적은 발전소를 돌려 전력을 수급하는 걸 말한다. 이를 통해 예비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려 준다. ‘전력계통의 붕괴’도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발전소가 송전선을 통해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기는 알아서 부하가 낮은 쪽으로 흐른다. 때문에 송전선이 벼락을 맞아 끊어지면 기존 송전선의 부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송전선이 과부하에 걸려 연쇄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위험요인을 줄여주는 게 EMS 시스템이다.

문제는 정부의 주장처럼 예비력이 많으면 블랙아웃을 막을 수 있느냐다. 전력거래소 임원 출신 전문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는 ‘대정전’ 사고들은 예비력이 모자라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송전망 탈락 등에 의한 전력계통의 붕괴로 인해 일어난다. E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력계통 붕괴의 위험성이 커진다.” 블랙아웃과 예비력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예비력이 제아무리 많아도 EM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전력계통 붕괴’가 블랙아웃의 원인이라는 거다.

 
당연히 예비력을 이렇게까지 높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궁금해진다. A씨는 “EMS를 제대로 작동시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예비력을 한껏 높여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예비력이 충분하지 못하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논리는 허울 좋은 명분이라는 얘기다.

순환단전은 ‘대정전’과 달라

하지만 전력거래소 측은 “우리는 EMS를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며 “전문가라는 이들의 주장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전정희 의원실 관계자는 “의혹을 풀기 위해 해외 등 외부전문가에게 검증을 맡겨보라고 조언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감사원 감사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력계통이 전문기술영역에 있다 보니 감사원에서도 제대로 문제를 짚지 못할 거라는 지적이다. EMS 의혹, 전력거래소가 먼저 풀어야 한다. 국민의 ‘블랙아웃’ 공포가 여기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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