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누구를 위해 종 울리나

▲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법 개선안이 기업의 가격결정권을 강화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기업의 이익만 우선시했다.” 지난 6월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선안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기업에 이익을 주는 규제완화들이 수두룩해서다. 무엇보다 제조업체들이 판매업자의 가격결정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막은 규제를 일부 풀었다. 원가절감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춰도 가격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2010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칠성과 해태음료에 각각 5억원과 1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형마트 등에서 할인판매를 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2007년 3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를 이용해 판매업자가 최저판매가를 지키고 있는지 점검한 LG전자는 2010년 11월 1억4100만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LG전자는 대리점이 최저판매가격을 지키지 않으면 노트북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2011년 6월 오뚜기(6억5900만원), 2012년 4월 골드윈코리아(52억4800만원), 2014년 1월 한국존슨앤드존슨(18억600만원)도 과징금을 물었는데, 모두 ‘최저 재판매가격 유지행위(이하 최저가 유지행위)’가 이유였다.

이 행위는 제조업체가 최저 판매가격을 결정해 판매상이 맘대로 가격을 인하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공정위는 판매자의 가격결정권이 침해되고 가격인하경쟁이 둔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행위를 규제했다. 이런 ‘최저가 유지행위’ 규제가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일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6월 19일 ‘최저가 유지행위 허용안’을 포함한 15개 공정거래법 개선과제를 발표했다. 33년이 지난 공정거래법이 현재 시장 상황이나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공정위는 “최저가 유지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예외적인 시장환경에만 적용된다”며 “사업자가 소비자후생 증대효과를 입증하고, 그 효과가 경쟁제한효과보다 큰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의 긍정적 평가에도 시민단체와 일부 유통업체들은 규제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가격결정권이 강화될수록 제품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제조업체가 가격 경쟁을 피하기 위해 비슷한 수준으로 최저가격을 결정하는 ‘가격담합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최저가 유지행위의 또 다른 이름은 ‘수직적 담합행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건에서 읽을 수 있듯 유통업에서의 ‘갑甲의 횡포’는 여전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저가 유지행위를 허용하면 제조업체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고 이는 소비자의 가격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소비자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최저가 유지행위를 금지할 때도 이를 어긴 기업이 한두개가 아니었다”며 “사실상 허용이 결정된 만큼 제품가격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격남용행위의 규제를 완화한 개선안도 문제가 있다. 현재는 원가혁신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췄음에도 가격을 유지하면 가격남용행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공정위 개선안에는 이 규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원가절감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춰도 기업 배만 부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입장만 고려한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소비자와 기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시각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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