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개발자의 슬픈 자화상

4년 동안 회사 소속이 6번 바뀐 개발자, A4용지 3장으로 인수인계를 받은 개발자. 대한민국 IT개발자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팔팔한 20대 개발자와 경험 많은 40대 개발자가 한 공간에서 만났다.

청년 개발자와 중년 개발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첫째줄이 20대 개발자(최재용, 류원경), 둘째줄이 40대 개발자(오종인, 정태환). [사진=더스쿠프 포토]
청년 개발자와 중년 개발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첫째줄이 20대 개발자(최재용, 류원경), 둘째줄이 40대 개발자(오종인, 정태환). [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한때 IT 벤처기업의 메카였다. 지금은 벤처기업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대기업이 채우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IT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피를 수혈한 산실이었다.

이곳에서 20대 개발자와 40대 개발자 4명을 만났다. 오종인(44) 개발자, 정태환(41) 개발자, 최재용(29) 개발자, 류원경(24) 개발자다. 최소 경력 3년, 최고 경력 20년이다. 참석자 중 맏형인 오종인 개발자는 “20년 동안 개발자로 일하면서 청년 개발자와 중년 개발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역사적인 날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대를 뛰어넘는 자리가 마련됐으니 의미있는 날임이 분명하다.

‘개발자’라는 이름으로 모였지만 활동분야나 소속회사는 제각각이다. 오종인 개발자는 경력 21년차 베테랑 프로그래머다. 1998년 LG소프트웨어(현 LG디스플레이)에 입사에 모토로라·팬택·KTH 등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다. 아직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정태환 개발자는 13년간 IT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다가 7년 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간혹 설거지를 한다”고 말한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에서 SOS를 치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거다. 남이 벌여놓은 일을 처리한다는 뜻에서 ‘설거지’라는 표현을 쓴 거다. 농섞인 말이었지만 대한민국 개발자의 애환을 읽을 수 있다.

✚ 두분은 40대이지만 관리자가 아니라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나름 성공한 것 아닌가.
오종인 개발자(이하 오종인) : “성공이라…. 첫 직장은 LG소프트웨어(현 LG디스플레이)였다. 국내 유일한 소프트웨어회사에 입사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IMF)가 터지면서 대기발령을 받았다. 2~3개월 후 입사한 그는 LG소프트웨어에서 LG디스플레이를 거쳐 LG전자로 소속이 바뀌었고, 이후 LG EDS(현 LG CNS), LG정보통신으로 이동했다. 2000년 LG정보통신이 LG전자와 합병하면서 다시 LG전자로 돌아왔다. 4년 동안 소속 회사가 6번 바뀌었다. 6개월에 한번 꼴로 소속을 이동한 셈이다.”

✚ 소속은 바뀌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오종인 : “좋게 말하면 운이 좋아 살아남은 거고, 냉정하게 말하면 다니는 곳마다 소속이 바뀌는 운명에 시달린 거다. 2002년 LG전자를 나와 모토로라로 이직했는데 1년 만에 R&D센터가 철수했다. 제조사 근무경력을 살려 팬택으로 이직했다. 6년가량 근무하다가 2011년 KTH(케이티하이텔)로 옮겼지만 또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결국 회사를 나왔고, 지난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다행히 살아남아 지금까지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았다. 내 삶의 궤적은 대한민국 개발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오종인 개발자가 소속이 바뀌는 불안함에 시달렸다면 정태환 개발자는 상실감에 시달렸다. 책에서 배운 대로 개발했지만 돌아보니 어느 순간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뭔가를 대량 생산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이나 업무를 관리하게 쉽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하며 수정하는 SI(시스템통합), 누군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모니터링하며 관리하는 SM(시스템관리)…. 오래지 않아 그는 단순 노동자가 됐다.

✚ 정태환 개발자가 꿈꾼 개발자는 어떤 모습이었나.
정태환 개발자(이하 정태환) : “개발자라면 연구실에서 개발하고 싶은 기술과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야창천 프로그램을 찍어냈다. 조회 프로그램을 만들면, A는 삭제 프로그램을, B는 인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유지보수하는 게 IT업체에 소속된 개발자가 하는 업무였다. 크게 실망했다.”

 

✚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유는 뭔가.
정태환 : “프로그램을 고치고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면서 영업도 했다. 2년을 그렇게 일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지금은 개발만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개발자들이 안 하는 뒤처리를 한다. A개발자가 B기업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문제가 생겨 C개발자가 임시방편으로 해결한다. 또 문제가 터지면 D개발자가 긴급처방을 한다. 갈수록 프로그램은 엉망이다. 누구도 프로그램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을 수 없다. 버티다가 안 되면 기업이 나에게 SOS를 친다. 이런 일은 단순히 유지보수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개발자들이 꺼리는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이제 20대 개발자의 얘기다. 40대 개발자와 달리 두명의 청년개발자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최재용 개발자는 웹에서 모바일로 방향을 틀었다. 계기는 2010년 아이폰이 국내시장에 출시하면서다. 현재 IT업체에서 모바일 도서관시스템 구축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류원경 개발자는 3년간 산업기능요원으로 IT업체에서 근무한 후 올초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스타트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무료프인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프린팅 하단 여백에 광고나 쿠폰을 붙이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은 참신했지만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아직 학생이다.

최재용 개발자(이하 최재용) : “학창시절 진로희망 조사를 하면 컴퓨터공학이 인기학과로 꼽혔다. 그때만 해도 개발자를 과학자처럼 여겼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막상 수험생이 되자 개발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야근은 기본, 밤샘은 옵션, 주말근무는 일상’ ‘30~40대가 되면 퇴직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 정말 개발자는 30대가 되면 퇴직하는가.
최재용 : “최근 상황이 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개발자의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면서 공대(컴퓨터공학)기피 현상이 심각해졌다. IT회사에는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자연히 나는 30~40대가 돼도 일을 할 수 있게 됐다(웃음). 개인적으로 살길이 열렸지만, IT업계엔 심각한 문제다.”

✚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IT강국인 대한민국의 이면을 말해 달라.
류원경 개발자(이하 류원경) : “고교를 졸업 한 후 3년간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다. 회사 규모가 작긴 했지만 설립한 지 10년이 넘은 IT회사였다. 명색이 IT회사인데도 개발자는 1명뿐이었다. 인수인계를 받는데 전임자는 그만둔 상태였고, 매뉴얼은 A4용지 3장이 전부였다. 응용프로그램·서버를 유지하는 게 업무였는데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붙인 탓에 소스를 봐도 구조를 알 수 없었다. 팀장은 인력업체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한 사람이라 아는 게 없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이 컸다.”

오종인 : “A기업에서 근무할 때 신입 개발자가 들어왔다. 할 줄 아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뭐냐고 물었더니 ‘프로그래밍 언어 베이직을 할 줄 안다’고 하더라. 문제는 베이직만 할 줄 알았다는 거다. 준비가 안 된 인력이 기업에 들어오니 고참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개발자들이 구조조정 한파 속에서 살아남은 이유다.”

✚ 교육기관이 배출하는 인재와 기업의 인재상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정태환 : “1994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때만 해도 대학교 졸업생과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일치했다. 오히려 기업에서 만족할 정도였다. 그런데 1998년 이후 웹 기술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학에서 양성하는 인재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 간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학교에서 하나의 기술만 가르친 것이 문제였다. 1년마다 최신 프로그래밍 언어가 쏟아지는데 10년 전 언어를 배우고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다. 최근 젊은 개발자의 수준이 심각하다.”

✚ 외국의 개발자들은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구사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재용 : “우리나라는 뭐든지 빠르다. IT기술도 그렇다. 1990년대 클라이언트 환경에서 웹 환경으로, 2010년대 모바일 환경으로 바뀌면서 기술의 유통기한이 짧아졌다. 그러니 기술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도 몇년이 지나면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개발자들은
개발자들은 "공대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IT업체의 인력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업계의 흐름이나 환경이 바뀌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유독 우리나라가 문제인 이유는 뭔가.
최재용 : “무언가를 새로 배워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그런데 하루에 개발해야 하는 것은 10개나 된다. 그러다보니 ‘굳이 깊게 배울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절로 든다. 개발자에게 ‘독毒’이다.”

오종인 : “국내시장이 협소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술과 프로그래밍 언어의 유통기한이 짧아지면서 개발자를 빠르게 소모하는 것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단말에서 통용되는 프로그래밍은 C언어였다. 임베디드 운영체제(OS)에 C언어만 있으면 개발이 가능했던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도 C언어 개발자를 활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조사들이 C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는 제조사가 3곳뿐이라 제조사 출신의 개발자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지난해 개발자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이 있었다. 살인적인 야근을 감행하다 면역이 약해져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낸 개발자가 한 SI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양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2년 동안 4525시간의 야근(시간외근무)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르면 2008년 1년간 한국의 근무시간은 2301시간이다. 그러나 양씨는 2년 동안 시간외근무로 4525시간을 근무했다. 1년에 2250시간을 시간외근무로 했고, 여기에 정규 근무시간을 더하면 연간 약 4000시간 넘게 근무했다는 얘기다. 이는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 월 1~2일만 쉬어야 가능한 근무시간이다. 이 사건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기계쯤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5월 개최된 '서울앱토크 콘서트'에서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5월 개최된 '서울앱토크 콘서트'에서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 모든 개발자가 ‘개발자로 먹고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정태환 : “개발자 10명이 있다고 치자. 5년 후 3명은 개발자로 남고 7명은 관리자의 길을 간다. 3년 후 3명의 개발자 중 1명은 영업을 하고 1명은 기획자가 된다. 1명만 개발자로 남는 것이다.”


류원경 : “경력을 쌓은 개발자가 업계에 남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신기술 개발을 주도해야 하는데 관리자로 빠지고, IT업계를 떠난다. ‘치킨 사장님이 알고 보니 개발자였더라’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깨드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재용 : “지난해 ‘갑을甲乙’ 논란이 있었는데 IT업계엔 ‘갑을병정무기경甲乙丙丁戊己庚’ 6차까지 하도급이 이뤄진다. 이 때문에 개발비용과 개발기간이 급감하고, 영세한 IT업체의 근로환경과 경영이 악화된다.”

오종인: “A공공기관의 발주담당 공무원은 ‘개발’ ‘IT’를 모른다. 개발자의 개념이 없으니 을인 IT업체 담당자가 갑인 공무원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요구대로 일을 해준다. 그게 일이 더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대신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부의 발주업무가 우리나라 IT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 대기업도 하도급 구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종인 : “대기업이 IT사업부를 IT회사로 분사시킨 것은 시간이 갈수록 유지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면 그만한 인력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개발자 등 전문인력을 내보내고 사업부만 분리해 회사를 차린 셈이다. 그후 발주금액을 고가로 책정해 사업을 넘긴다. 개발자가 없는 대기업 계열사의 IT기업은 계약직 개발자나 하청기업에 넘긴다. 이 과정에서 함께 입사했던 동료들이 어느날 ‘을’ ‘병’ ‘정’이 됐다. 서글픈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실력있는 한국의 개발자들이 대거 외국으로 빠졌다는 얘기가 돈다. 과장이 아니다. 2011~2012년 미연방의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직 취 업(H-1B) 비자를 취득한 한국인은 4579명에 이른다. 이 중 59.5%가 컴퓨터 관련 직종이다. 적지 않은 IT인력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개발자들이 꽤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태환 : “우리나라 개발자는 조용히 숨어살지만 외국의 개발자들은 대접받고 산다. 1시간만 야근해도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 외국은 개발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높고, 혜택도 좋다. 3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이 나오며 아이들 교육 혜택도 제공받는다. 능력이 있다면 떠나는 게 좋다. 특히 20~30대 초반 개발자는 적극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40대가 되면 나이 제한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모든 걸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40대 가장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오종인 개발자는 40대 가장의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오종인 : “모토로라에서 근무할 때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회사에서 거주비용을 대준다고 제안했는데, 거절했다. 네트워크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자신이 없더라. 더욱이 외국에선 도와달라고 요청할 곳이 없다. 월급만 갖고 살아야 한다. 문화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구조가 팀제다. 같이 밥 먹고, 같이 밤을 새운다. 하지만 외국은 개인플레이다. 끈끈한 정이 없다. 아침에 출근하면 인사나 티타임 없이 자신의 일만 한다. 이런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 그럼에도 개발자를 꿈꾸는 이유는 뭔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최재용 :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다. 개발은 혼자서 일하는 직업이 아니다. 영업팀·디자인팀과 끊임없이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발자는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류원경 : “능력있는 개발자는 자칫 독선으로 빠지기 쉽다. 시장이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정태환 : “55세까지 개발을 하는 게 꿈이다. 이유가 있다. 유명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배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엔 스타개발자는 많지만, 존경할 만한 개발자는 없다. 끝까지 개발자로 남은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오종인 : “요즘엔 ‘IT’ ‘개발’ 용어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정부도 정보통신기술(ICT)라고 말하지 IT라 하지 않는다. IT 본래의 뜻을 이어가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래야 ‘후배들에게 대한민국 IT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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