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18人의 경영론

한국경제가 위기다. 기업은 미래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고, 경쟁국의 추격세도 매섭다. 카멜레온 같은 리더십으로 난국을 돌파해 나갈 리더가 절실하다. ‘이필재의 人sight’에 소개된 CEO들의 ‘신의 한수’를 다시 조명했다.

 
한국 기업이 위기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도 미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이 실종됐다는 소리도 나온다. 한국 경제의 슈퍼스타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맥을 못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24.45% 급감했다. 현대차도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8.7% 줄었다. 선도자 자리를 넘보는 중국 기업의 추격세도 무섭다. 조선 분야의 올 상반기 수주 실적은 세계 1위인 중국에 크게 뒤졌다. 철강산업 등의 대중 기술 격차도 2~3년 안에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비교우위를 잃는 것이다. 무엇보다 리더십 위기다. 기업을 제대로 이끌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다. 10대 기업 중 3곳은 총수의 부재와 투병으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이필재의 人sight에 나간 CEO 18인의 경영론을 리뷰해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색해 본다.

1. 현장에 답이 있다
경영상의 많은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숱한 CEO가 현장에서 솔루션을 찾았다.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이 회사의 법정관리인 출신이다. 법정관리인 시절 그는 전 임직원과 네 차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회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파산 위기의 회사를 살리자고 호소했다. 그는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품질과 생산성은 현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과 밀착 소통하기 위해 그는 평택공장에 근무하는 날이면 구내식당을 찾아 공장 밥을 먹는다. 바쁜 날이 아니면 손수 식판을 들고 직원들 틈에 줄을 선다.

리더의 솔선수범, 조직 강하게 만들어

“CEO가 현장을 모르면 가령 회의 때 엉뚱한 소리를 하게 마련입니다. 제조 회사의 CEO는 품질과 생산성이 결정되는 제조 현장은 물론이고 판매 현장도 꿰고 있어야 돼요.”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은 CEO가 현장을 모르면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연히 현장과의 소통이 잘 안 이뤄지고 그에 따라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죠. 그런 상태에서 내리는 지시는 제대로 이행이 되지도 않습니다.”

2. CEO의 소통력에 달려
현대의 CEO들은 ‘소통 짱’이 돼야 한다. 시대에 맞는 소통수단을 구사할 줄 알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국내 첫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고객 및 직원과 하루 50회가량 소통한다. 이 가운데 약 60%가 직원과의 소통이다. 고객 동향에 대한 직원들의 비공식 보고도 받고 사내 신문고로도 활용한다. 행장 취임 초 그가 내실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중소기업 대출 축소 방침으로 받아들여 우려하는 기업 고객들이 있다는 보고도 한 직원에게서 카톡 메시지로 받았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그에게 통상임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권 행장은 “은행의 경우 현장 경영이란 곧 고객과의 소통이다”라고 말했다.” 장인수 사장은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솔선수범을 꼽았다. “이스라엘군이 강한 건 장교들이 ‘돌격 앞으로’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외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전투가 벌어지면 장교들이 많이 죽지만 이스라엘군은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죠.”

3. 강온의 리더십 구사해야
CEO 리더십 스타일에 정답이란 없다. 나름의 리더십 스타일을 구축하되 일변도로 흐르는 건 피해야 한다. 구한서 동양생명 사장은 “구성원과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사장이 점유하는 공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이런 수평적 리더십엔 비용도 따른다. 그는 “기회비용이 들겠지만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부회장도 “CEO가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구성원들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의 CEO 리더십에 대한 주문은 이와 사뭇 다르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았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았다.’ 파산한 일본항공을 극적으로 회생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한 말입니다. 이 시대에 요구되는 리더십 스타일이죠. 급여 인상 같은 작은 선이 쌓여 파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낳고, 구조조정은 일견 비정해 보이지만 기업을 회생시키는 최선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겁니다.” CEO는 어쩌면 카멜레온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관찰 지점에 따라 색깔이 다른 팔색조이거나.

4. 다시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의 쇠퇴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걸핏하면 규제를 탓하고, 주주 등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보다 안전한 투자만 하려 든다. 심지어 튀는 CEO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테드 테너 CNN 회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좋은 생각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시몬느는 마이클코어스, 도나카란뉴욕(DKNY) 등 16개 글로벌 명품 핸드백 브랜드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는 사실상 세계 최대의 명품 핸드백 회사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9%에 이른다. 공급 물량의 약 60%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나머지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한다. 2012년엔 자체 브랜드 0914를 선보였다. 이 회사의 창업 오너인 박은관 회장은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보다 배짱(gut)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 국내 조선업계의 올 상반기 수주 실적은 중국에 크게 뒤졌다. [사진=뉴시스]
“무엇보다 창업이든 투자든 주어진 여건에서 실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적기에 제대로 해야 합니다. 반면에 요즘 세상에 남들은 모르는 비밀 정보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좋은 경영에도 공식 같은 것이 있을까?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고객과 구성원에게 먼저 가치를 제공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알파가 붙어서 되돌아온다고 주장한다. 가치관 경영이다. “좋은 경영의 공식은 ‘T(Take)=G(Give)+알파’입니다. 고객과 구성원에게 기업이 먼저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경영이란 곧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직원들에게 회사 지분을 나눠줬을 때 다른 기업인들은 저의 행동을 이해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려고 했기에 이만한 성과를 거둔 거예요.”

5. 살아남으려면 진화해야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사실뿐이다. 조선ㆍ철강ㆍ기계 등의 분야에서 중국은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기업들이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IT 분야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썼다. WSJ은 이 기사의 제목을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중국 기술 기업의 부상’이라고 달았다. 에너지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우암코퍼레이션은 올해 설립 20년 만에 1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해외에 진출한 지 3년 만의 쾌거. 이 회사가 에너지 분야에 진출한 건 부침이 심하고 생존율이 낮은 정보기술(IT) 벤처 기업으로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IT제품은 라이프 사이클이 짧지만 전력 비즈니스는 10년 투자하면 30년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IT와 전력 간에 융합이 일어난 것에 착안했다.

▲ 경영환경 악화로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줄면서 주식시장도 풀이 줄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국내 전력시장이 사실상 한전의 독점체제라는 것. 그래서 7~8년 전 해외로 나갔다. 현재는 해외사업 비중이 50%인데 3년 후 70%선으로 높이려 한다. 해마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ㆍ개발에 투자하는 우암은 약 50명의 구성원 중 10%가 박사다. 그중엔 전기연구원에서 영입한 박사도 있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한전 출신도 스카웃했다. 이 회사의 오너 경영인인 송혜자 회장은 ‘구성원들이 행복해하고 재미있게 일하는 직장’이 우암의 가치관이라고 말했다. “창업 때부터 이런 가치를 중시한 건 아닙니다. 정글에 뛰어들어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동안 외형 성장, 고수익성, 지속가능성 순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바뀌었죠.”

창업이든 투자든 타이밍이 중요해

이 과정을 겪는 동안 우수한 직원 여럿이 고액 연봉을 쫓아 회사를 떠났다. 결국 이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주로 남았다. 기업의 가치관은 직원들을 잡아두는 효과가 있다고 송 회장은 말했다. “요즘은 이런 가치관이 좋아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이 된 거죠. 그 결과 저는 기업으로서 우암의 지속가능성이 커질 거로 봅니다.” 그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시장을 노리는 것도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나아가 저성장 시대 성장 잠재력이 크고 인구가 많은 저개발ㆍ개발도상국에서 한국경제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이텍이 아니라, 국내에서는 가치를 잃었지만 이들 나라엔 꼭 필요한 적정 기술을 파는 겁니다. 이 시장도 진출 타이밍을 놓치면 안 돼요.”

 
그는 중소기업 오너지만 3~5년 단위로 회사의 로드맵을 그리는 이른바 장뇌삼(심어서 기르는 산삼) 경영을 한다. 봄가을로 뿌리를 채취하는 도라지와 달리 장뇌삼은 캐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장뇌삼 경영이란 말엔 단기 실적보다 미래 비전과 성장동력을 중시하겠다는 송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우암의 비전은 지속가능한 기업, 정년 없는 직장이다.

구조조정이 다시 화두다. 문제는 기업의 지배구조다. 오너의 탐욕과 오판으로 제때 구조조정을 못한 동양그룹은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위기의 동부그룹은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동양그룹의 경우 구조조정 용역 업무를 할 수도 있는 증권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도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 독립 증권사 1위 자리를 고수 중인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이와 관련해 “구조조정 문제라기보다 기업 지배구조와 연관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자본이 금융 계열사를 거느릴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폐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같은 지배구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감독 당국의 노력만으로 이런 일이 없어질 거라고 내다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장수 기업인 샘표의 3세 오너 경영인 박진선 사장은 자신이 기업을 하는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 경영을 맡았을 땐 저도 돈 버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지금은 회사 일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고, 구성원들 역시 행복해지려면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려는 것도 그래야 구성원들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은 “구성원이 행복하면 스스로 업무에 몰입해 좋은 성과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의 경쟁 양상도 바뀌었다. 고영섭 오리콤 사장은 “광고회사의 경쟁 상대는 이제 더 이상 광고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쟁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광고회사의 경쟁자는 크리에이티비티를 할 수 있는 전 업종의 서비스ㆍ제조업체라고 주장했다.

CEO 장수하려면 마음 비워야

장수 CEO가 되고 싶은가? CEO로 장수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과연 무얼까? 증권업계 최장수 CEO로 8년째 재임 중인 유상호 한투증권 사장은 “마음을 비우라”고 말했다. “내일이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마음먹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면 긴 안목으로 몸을 던져 일할 수 있습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오너와 비전 및 철학을 공유하고요. 문제의 회사들은 대주주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경영권 세습 문제는 어떻게 볼 건가? 오너 CEO인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은 “선진국의 내로라하는 기업 가운데 경영권을 세습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뛰어난 기업은 새로운 CEO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회사가 보통 가족 승계를 하죠. 유능한 사람이 경영해야 회사가 잘되고 그래서 가족보다 넓은 범위에서 후계자를 뽑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봅니다.”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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