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수의 골프 토크

골프를 하다 보면 끊임없이 양심과 내적 충돌을 겪는다. 심판도 없다. 대신 매너와 에티켓이 있다. 심판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로 인해 골프는 꼭 수많은 대중 앞에서 옷을 벗고 춤추는 것 같은 ‘수치심과의 타협’과 같다. 사람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운동이다.

골프가 끝나면 스코어카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스코어카드 한 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골프가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 스코어카드에 18홀 라운드 중 자신이 한 행동이 복기되기 때문이다. 스코어카드는 자신의 얼굴이요,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골프를 하면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골퍼는 없을 것이다. 골프는 끝없이 양심과 싸움을 한다.

그래서 플레이하는 동안 즐거움보다 굴욕과 수치를 견뎌내는 고통이 더 크다. 사실 많은 사람은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골프와 관련된 격언을 보자. ‘골프는 정직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golf makes liars out of honest man). 이타주의자를 사기꾼으로(cheate rs out of altruists), 강자를 비겁한 자로(Cowards out of brave man), 그리고 모두를 바보로(Fool out of everybody)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 골프는 단 한번의 라운드로 동반자의 품성과 인성을 알게 하는 적나라함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골프는 꼭 수많은 대중 앞에서 옷을 모두 벗고 춤추는 것 같은 ‘수치심과의 타협’과 같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을 못하는 골퍼도 있다. 골프규칙 위반을 밥 먹듯 하면서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골퍼들이다. 어떤 이는 규칙을 몰라서, 또 어떤 이는 알면서도 한다. 라운드를 하면서 누구나 끊임없이 양심과 내적 충돌을 겪는다. 볼을 한번 슬쩍 옮겨 놓고 칠까 말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러프에서 좀 꺼내 놓고 치지 뭐 등등... 하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은 갈등의 연속인 골프와 연을 끊지 못한다.

골프의 마력 같은 매력이다. 골프를 하면 할수록 삶의 일부가 아닌 삶의 전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수치와 절망, 자학 등으로 뒤범벅되는 골프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과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런 골프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골프가 너무 어려운 운동이기 때문이 아닐까. 골프는 정말 어렵다. 볼을 잘 때리는 것 자체도 어렵다. 그런데 잘못을 가려줄 심판도 없다. 대신 매너와 에티켓이 있다. 심판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게 골퍼를 힘들게 한다. 바로 이것으로 인해 끝없이 자기 자신의 양심을 때린다. 결국 플레이하는 골퍼를 벌거숭이로 만들고 만다.

골프가 오직 공격밖에 없다는 점도 골퍼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만 요구하기 때문에 골퍼에게 플레이를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결국 판단력의 부재가 골프를 어렵게 하고 실수를 끝없이 이어지게 만든다. 이런 어려운 싸움의 당사자는 언제나 골퍼 자신이다 보니 결과는 좋을 수 없다. 그 날의 컨디션이나 마인드 컨트롤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 80% 이상은 비참한 결과를 얻는다. 아마추어골퍼들이 라운드 중 단 한두 개의 ‘오잘공’(그날 가장 잘 맞은 공)으로 위안을 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골프는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구석이 있다. 심판도 없고 공격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의 양심을 괴롭힌다. 그리고 실수를 털어버리지 못하면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서 흔히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라운드 중 규칙을 속인 사람은 일상생활에서도 반드시 속인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단 한 번의 라운드로 동반자의 품성과 인성을 알게 하는 적나라함을 갖고 있는 게 바로 골프다. 세상에서 골프보다 더 사람의 품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운동은 없다.
이윤수 한국성과학연구소 소장 penilee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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