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전 서울시교육의원

2010년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졌다. 사립학교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던 교사가 지방선거에서 교육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는 일부 특권층과 사학재단의 실태를 폭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데 힘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의 부정입학을 최초로 문제제기한 것도 그다. 그런 그가 올 6월 4년간의 의정활동을 마무리했다. 김형태 전 서울시교육의원(의원)을 만났다.

▲ 김형태 전 서울시교육의원은 "영훈국제중 사태는 부유층 학부모의 욕심과 사립학교의 장삿속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4년간의 교육의원 생활을 마쳤다.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도 내 몸은 1분1초를 다투던 의원생활을 기억하는 듯하다. 지방선거 이후 진보진영 서울시교육감이 선출됐다. 역할은 끝났지만 뒤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도울 것이다.”

✚ 학교(양천고) 복직은 가능한가.
“올 4월께 양천고가 다시 해임했다. 5월께 통보를 받았다. 긴 소송이 진행될 듯하다.”

✚ 양천고 재직 시절 어떤 교사였는가.
“1990년 3월 2일 양천고로 첫 출근해 학생들을 만났는데 측은하더라. 인문계 고등학교의 생활이란 게 팍팍하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공부만 한다.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싶었다. 문학시간 틈틈이 시를 낭송하고, 초코파이와 야쿠르트로 매달 생일잔치를 열었다. 학기 초면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쓰고, 가정방문을 했다. 성적고민, 이성고민, 가정사 등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울고 웃었다. 나에겐 그것이 기쁨이었고 낙이었다.”

✚ 양천고의 비리를 폭로한 것이 2007년이다.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학교 급식으로 갈비탕이 나온 날이었다. 고기를 씹는데 고무처럼 질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급식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져 학생들의 불평이 많았다. 일부 학생과 교사들이 급식을 안 먹고 밖에서 식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사장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학교의 급식을 먹도록 지시했다. 알고 보니 이사장이 급식비리로 거액의 돈을 횡령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양천고 분회장이었고, 교직원들과 논의 끝에 시교육청에 제보했다.”

✚ 내부 고발자가 부당하게 파면당할 때까지 교육당국은 뭘 했나.
“교육당국이 징계를 내려도 학교가 이행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한민국 사립학교는 성역이나 다름없다. 교사에게 파면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파면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는 3가지다. 횡령, 폭력, 성적조작이다. 원칙적으로 돈을 횡령한 이사장이 파면을 당해야 옳다. 하지만 파면을 당한 것은 나였다.”

 
✚ 교육의원 선거엔 어떻게 출마하게 됐나.
“진보진영 교육시민단체가 나에게 교육의원에 출마할 것을 권했다. 교육의원으로 당선되지 않더라도 서울교육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려면 서울시교육감이 바뀌어야 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자(당시)를 지원하면 그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당선 요인이 ‘사학비리에 맞선 교사’라고 보는가.
“상대후보들은 교육장과 교육위원이었다. 파면 당한 평교사 출신인 내가 상대하기엔 거물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사학비리를 제보한 교사가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을 감시할 교육의원으로 적합해 보였나보다.”

✚ 서울시의회에 입성해보니 어떻던가.
“처음 시의회에 와서 주눅 들었다. 직위를 떠나 선출직으로 당선된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 똑똑하고 화려하고 빛났다. 하지만 나 역시 선출직으로 온 것이니 시민들의 보답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때부터 ‘3심心(초심ㆍ열심ㆍ뒷심)’을 의정활동의 신조로 삼았다.”

✚ 지난해 영훈국제중 부정입학을 최초로 문제제기했다.
“2012년 12월쯤 학부모가 영훈재단에 비리가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여기저기 갔다가 더 이상 하소연할 곳이 없어 나를 찾아온 거다. 파면당할 때 국가기관을 찾아다녔지만 손잡아주는 곳이 없어 목 놓아 울었던 나는 민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양심선언을 한 학부모는 자녀가 대기자 명단에 포함됐다가 학교 측이 2000만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 학생은 편입해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시교육청과 영훈국제중에 자료를 요청했더니 주지 않고 감추려 하더라. 뭔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영훈국제중의 편입학 비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재단 이사장을 압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이사장의 동거녀의 자녀가 2010년 국제중에 편입학한 비리를 알아냈다. 문제를 거론하자 영훈재단이 자료를 제공했다.”

양천고 이사장 횡령 폭로 후 해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이 부정입학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 전형은 경제적 사배자와 비경제적 사배자로 나뉜다. 이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은 비경제적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희 회장의 손자가 사배자 전형이라니, 석연치 않았다. 비경제적 사배자의 합격생 점수집계표를 살펴보니 일부 학생은 성만 기재됐고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그중 14~16위를 한 3명의 학생들이 부정입학생이었는데, 15위로 입학한 학생의 성이 이씨였다. 해당 학생이 누구인지 영훈국제중과 시교육청에 요청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영훈초 출신 6명 중 이씨 성을 가진 학생이 2명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과 경찰관 아들의 이모군이다. 경찰관 자녀의 학부모와 통화를 했다. 그 학생은 수학 영재반 출신으로 교과성적이 50점 만점에 49점이었다. 남은 것은 이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이었다.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에 사실을 확인하니 맞다고 하더라.”

✚ 이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의 점수집계표는 어땠는가.
“교과성적이 45.848점이었다. 반면 자기계발과 추천서는 50점 만점이었다. 교과성적이 45점대라면 나쁘지는 않지만 합격권은 아니다. 국제중의 합격권은 교과성적이 49점대다. 이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은 주관식에서 점수를 만회한 것이다.”

▲ 지난해 2월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의 영훈국제중 부정입학을 부인했다가 사실로 드러나자 침묵을 지켰다. [사진=뉴시스]
✚ 공교롭게도 당시 시교육청과 삼성은 공식적으로 사실을 부인했다.

“유감이다. 시교육청은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시교육청이 삼성의 눈치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삼성의 대응방식도 대단히 유감이다. 지난해 2월 삼성이 보도자료를 내고 부정입학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다가 사실로 드러났다. 결국 이모군은 자퇴를 했다. 이 부회장의 개인적 일을 왜 회사가 입장을 밝히는가. 나는 오히려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학비리 척결, 교육의원 사명 다했을 뿐

✚ 검찰의 수사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검찰이 이 부회장의 아들 이모군의 부정입학 비리를 밝혀냈다. 하지만 5년 동안 편입학 대가로 학부모 5명에게서 총 1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게 전부인지는 의문이다. 나는 지금도 900명 가까운 학생의 성적을 조작한 것으로 볼 때 이 부회장 일가 등 일부 부유층의 자제 부정입학 대가성 금품수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삼성으로부터 압력은 없었는가.
“삼성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없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을 받았다. 그중 새누리당 의원과 교육청 공무원이 있었다. 일부는 나에게 국정감사 때 다루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그때 가면 사건이 묻힐 게 뻔했다. 혹자는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며 은연중에 중단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교육의원이었고, 맡은 소임을 다했을 뿐이다. 그 점을 삼성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 사학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거대 권력과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미 학교에서 파면당했을 때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를 다시 살려준 것이 서울시민이다. 목숨 걸고 사학비리를 척결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지난 4년간 밤 12시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을 했다고 자부한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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