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네이버는 알아도 NHN은 모른다.’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 NHN의 고민이었다.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고민 끝에 기업분할 후 사명을 바꿨다. 그로부터 1년 후, 이 의장이 이번엔 라인의 상장을 추진한다. 싸움터에 나가기 전 필요한 실탄을 채우겠다는 것이다. 그의 진짜 도전이 시작됐다.

▲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라인의 상장으로 국내 벤처기업에 선례를 남길 수 있게 됐다. [사진=뉴시스]
IT업계 한동안 회자됐던 ‘네이버 굴욕’을 아는가. 네이버가 지금처럼 유명하기 전에 겪었던 에피소드다. 2003년 NHN(네이버 전신)은 외부기관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는 NHN 창업자인 이해진 이사회 의장이 참석했다. 주최기관의 회장이 이 의장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NHN이 뭘 하는 회사인가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11년 전만 해도 NHN의 대중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NHN이 검색서비스로 승승장구하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대장주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나 게임포털 한게임은 알아도 NHN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NHN 내부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하면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을 농협(NH)과 혼동한다”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왔을까. 회사의 사명이 서비스나 브랜드명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NHN으로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이 의장은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방법은 별 다른 게 아니다. 사명을 바꾼 것이다. NHN은 지난해 3월 이사회에서 네이버와 한게임의 사업을 분할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8월 분할작업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NHN은 ‘네이버’로, 한게임은 ‘NHN엔터테인먼트’로 각각 사명을 변경했다. 2001년 9월 네이버컴이었던 회사명을 NHN으로 바꾼 지 12년 만이었다. 이 작업은 이 의장이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의장이 회사명을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지은 이유는 뭘까. NHN의 모태는 삼성SDS 사내벤처 네이버포트였다. 이 의장은 1992년 삼성 SDS를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네이버컴이라는 사내 벤처를 창업했다. 그는 1999년 네이버컴을 키워 한게임과 합병으로 NHN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네이버는 Navigate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로 항해자를 의미한다. NHN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인지도가 높았다는 점도 사명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NHN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처럼 NHN 게임사업부의 원래 이름인 한게임으로 사명을 지으려 했지만 분할작업을 앞두고 NHN엔터테인먼트로 결정됐다는 얘기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게임은 도박사이트라는 이미지가 있어 이를 상쇄할 만한 사명이 필요했다”며 “일반인에게 NHN은 생소했어도 IT업계에서 널리 알려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분할 효과는 회사의 간판을 바꿔단 것에 불과하지 않다.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면서 인터넷기업 네이버를 검색서비스뿐만 아니라 SNS 서비스도 보유한 막강한 사업자로 만들었다. SNS 서비스 ‘라인’이 크게 성공한 덕분이다. 라인은 일본시장을 거점으로 제3세계 국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라인의 전체 회원수는 3억명을 돌파했다. 고무적인 사실은 수익화에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라인이 콘퍼런스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677억원이었던 라인의 수익은 지난해 4분기 1369억원으로 2배가 됐다. 지난해 네이버가 1년 내내 독과점 규제 이슈에 시달리며 IT 생태계 파괴자로 정치권과 정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4.64% 지분율로 조직 장악

이는 세계무대로 진출해야 하는 이 의장에게 큰 힘이 아닐 수 없다. 네이버는 국내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보다 유연하게 온라인 광고사업을 운영하면서 라인의 해외사업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국내 최대 인터넷기업인 네이버를 이끄는 이 의장도 후발 사업자와 벤처기업에게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의장에게 장밋빛 미래가 예견된 것은 아니다. 최근 네이버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글로벌 강자인 중국 텐센트(위챗)와 미국 페이스북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인 회원이 3억명이 넘었지만 중국 위챗의 가입자는 6억명에 달한다. 라인이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을 확보했다고는 하지만 유럽과 미국, 중국과 같은 시장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결실을 맺지 못하면 라인은 성장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 수익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폭발적인 성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위기를 타개할 만한 자금이 충분하느냐다. 라인의 모회사인 네이버는 지난해 분할과 독과점 논란을 겪으면서 자금상황이 신통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규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각종 상생 펀드와 재단 출연 등을 약속했다. 창업지원펀드에 500억원, 문화콘텐트펀드에 500억원, 중소상인공인희망재단에 500억원, 공정거래위원회와 약속한 공익재단에 500억원을 출연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SNS 서비스가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쓰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위챗의 경우 마케팅비용으로 2012년 2000억원, 지난해 3000억원 가량 지출했다. 네이버가 위챗을 추격하려면 연간 영업이익에 달하는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네이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241억원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 의장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이 의장은 “라인 전체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글로벌 SNS 서비스와의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라인이 해외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네이버는 올 7월 16일 한국거래소 조회공시 요구에 “도쿄東京증권거래소 등 관련 기관에 상장신청서 등의 서류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라인의 미국 증시 상장은 모건스탠리가 주관한다. 현재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에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증시 상장 주관사는 노무라 홀딩스다. 상장 후 공모 규모는 1조엔(약 10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라인의 IPO는 싸움터에 나가기 전 필요한 실탄을 채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난관을 넘기 위해서는 실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인의 IPO로 자금이 조달되면 창업멤버와 초기 투자자가 독점했던 주식을 시장에 유통시킴으로써 대규모 공모액을 유치할 수 있다.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으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이해진 의장의 도전, 세계시장서 통할까

시장의 눈은 라인의 기업가치에 쏠린다. 증권가에서는 현재 기업가치가 약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한다. 네이버가 제시한 매출 가이던스 4000억원에 주가매출비율(PS R) 10배를 곱하면 4조원에 이르는데 여기에 급속히 늘어나는 라인의 이용자수를 감안해 프리미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라인은 지난해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더욱이 지난해 네이버가 재상장한 후 시가총액이 15조원을 돌파하면서 가능성이 낮은 얘기는 아니다. 증권사 관계자는 “라인의 기업가치는 실적보다 성장성에 기대감이 쏠리기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재 가입자 증가폭을 계산하면 10조원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라인은 앞으로 유럽과 미국, 중국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SNS를 뛰어넘을 수 있다. [사진=뉴시스]
시장의 전망대로 라인이 제대로 가치평가를 받는다면 이 의장은 실탄으로 주머니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장의 조직 내 영향력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그는 4.64%의 낮은 지분율로도 오랫동안 굳건히 경영권을 지켜왔다. 지난해 기업분할로 NHN을 네이버로 탈바꿈한 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라인의 상장으로 그는 세계무대에 한걸음 다가서게 됐다. 그의 경영 내공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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