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㉔

유성룡은 판윤 신립에게 전장을 맡겼다. 신립에게 특별한 계책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그의 호기를 믿었다. 하지만 선조는 신립의 말을 들으며 탄식을 반복했다. 일본군의 전력을 지나치게 우습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 일본군의 그림자를 보기도 전에 조선의 지방관리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도체찰사 유성룡은 판윤 신립을 불러서 계책을 물었다. 신립은 이일보다 더한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무관이었다. “대감은 무장이 아니십니까, 쓸 만한 장수를 가려 이일의 뒤를 돕게 하는 것이 양책일 것 같소.” 신립은 자기가 나서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유성룡이 다시 묻기를 “적군을 파할 방략이 있소”라고 물었다. 신립은 자신이 있는 듯한 어조로 웃으며 “당대 명장 신립이 적군을 못 무찌르면 살아서 돌아오지는 아니하겠소”라고 호기를 부렸다.

의기와 충용에서 나온 장담이었다. 원수니 대장이니 병수사니 하는 사람들이 앞다퉈 달아나기만 일삼는 판에 이런 장수가 또 어디있겠는고. 정발•정운 두 장수 외에는 신립의 담기膽氣를 넘을 이가 없었다. 신립의 의기를 장하게 여긴 유성룡은 어전에 상주해 그를 도순변사(군무를 총괄하기 파견한 국왕의 특사)로 임명했다. 도순변사의 임명을 받은 신립에게 선조가 물었다. “경은 무슨 계책으로 적을 막으려 하는고?” 신립은 대답했다.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르니까 염려 없습니다.” 선조가 다시 물었다. “무엇을 보고 적이 용병할 줄을 모른다 하는가?” 신립은 다시 쉽게 대답했다. “적군이 상륙한 뒤 육지로 들어오려 애쓰고 있습니다. 병법에 ‘군대가 길게 늘어져 적진 깊이 들어가면 패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는 적군이니, 두려울 것이 없는 줄로 아룁니다. 소신이 비록 재략은 없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적을 평정하겠습니다.”

선조는 신립의 말을 못 미더워하는 태도로 탄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군이 강하여 격파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 많은데, 경은 어찌 그리 쉽게 여기는가? 부디 삼가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손수 보검을 주며 “명을 따르지 않는 자를 참하라”고 덧붙였다. 그때 순변사 이일은 300명에 불과한 군사를 거느리고 조령에 도착했다. 그곳을 지키는 조방장 변기와 군사를 합친 이일은 1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문경聞慶을 지나 상주尙州에 내도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세 갈래가 있다. 그것을 삼로三路라고 한다.

▲ 신립은 천하의 용장이었지만 일본군 앞에선 무기력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군은 이 삼로로 갈라 제1군 소서행장은 중로中路, 제2군 가등청정은 좌로左路, 제3군 흑전장정은 우로右路를 통해 올라온다. 다만 수로水路는 언급하지 아니하였다. 이는 이순신만이 홀로 아는 노선이었다. 삼로를 활용해 진군하는 일본군 중로로 나선 소서행장은 양산~밀양~청도淸道~대구~인동仁同~선산善山을 거쳐 상주로 왔다. 강풍에 낙엽쓸 듯 지나가니 수령, 진수(지방 군무의 총사령관), 방백(관찰사)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도 백성도 다 달아났다. 이때 이일은 삼로 중 가운데 길로 적군이 올 것을 예상하고 상주로 온 거였다. 그러나 이일이 상주에 들어올 때에 10리 밖에 나와 영접하는 관원은 상주판관 권길權吉이 있을 뿐이었다.

이일은 노하여 “목사는 어디 갔는가”라고 판관에게 질문하였다. 신장 7척에 기골이 웅장하고 목소리가 우렁찬 이일의 호통을 치자 판관 권길은 이렇게 답했다. “목사 김해金가 순변사 군사 300명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나갔지만 도주하고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이일은 “군사가 다 어찌 되었다고?”라며 노발대발했다. 분위기가 경직됐다. 이일의 위압에 권길은 기가 막혀 언성을 높여 말했다. “소인이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오만 사또는 군사도 적은데 무엇으로 적군을 막으려 하오? 국은을 입은 소인도 보답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되오니 오늘밤만 살려두면 밤사이라도 사력을 다해 1000명 군사를 모집해 보겠나이다.”

 
‘군사를 모집하겠다’는 말에 분이 풀린 이일은 다시 호령했다. “참형은 잠시 중지하겠다.” 판관 권길은 육방 관속을 총출동시켜 상주 군내에서 밤새 900명의 장정을 모집하였다. 그래봤자 훈련도 해본 적 없는 농민 노동자들이다. 상주 기생 셋을 수청으로 불러 밤이 새도록 희롱하고 아침 늦게야 일어난 이일은 정오가 지난 뒤에야 연병장에 나왔다. 새로 모집한 군사를 검열하고 부하군관을 시켜 진퇴하는 법과 무예 몇가지를 가르친 그는 판관 권길을 잡아내 죄를 말하며 “너를 응당 처참할 것이로되 군사 모집한 공로를 참작하여 감형한다”며 곤장 80대를 내리치게 했다. 이것은 목사 김해가 성을 버리고 도주한 죄이지, 판관 권길이 당할 죄는 아니다. 이일의 사리에 어긋난 처분을 당한 권길 이하 상주 장졸들은 그 난폭함을 원망하였다.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이일은 공정하지 않은 인물이다. 함경북병사로 재직할 때 녹둔도 사건으로 이순신의 전공을 시기해 죽이려 하다가 순신의 당당한 인격과 엄정함에 넋이 나갔던 인물이 바로 이일이다. 그런 이일은 지금까지도 버릇을 고치지 않고 판관 권길의 충의를 무시하고 있었다. 군심을 잃고 패망을 자초하니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또 있겠는가. 어찌 됐든 권길은 군사를 모집하고도 억울한 죄를 받아 매를 맞았다. 군사훈련을 할 때에도 이일은 군사를 아끼고 동정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마치 개돼지 대하듯 하여 하루 동안에 두명이나 목을 베었다. 매를 맞은 군사는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 무렵, 피난온 개령開寧 사람이 달려와 일본군이 선산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말을 들은 이일은 개령 사람을 잡아들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놈, 죽일 놈! 일본군이 동래에 도착한 게 언제인데, 이렇게 빨리 선산에 왔단 말이냐? 헛소문을 내 군심을 소동케 하는 놈이니 목을 베어 효시하라!” 분노의 목소리였다.

개ㆍ돼지처럼 장졸 다루더니…

개령 백성은 머리를 두드리며 대꾸했다. “소인이 추호인들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하루 동안만 살려 두시어 내일 안으로 일본군이 상주에 들어오지를 아니하거든 그때에 죽여주시오.” 이일은 크게 웃으면서 그 백성을 매를 쳐 하옥하였다. 이일은 개령 백성의 보고를 무시하고 기병과 보병 2000여명을 거느리고 북문 밖 연무장으로 나가 진법을 연습했다. 상황이 이러니 적이 가까이 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서군은 벌써 성중에 들어와 있었다. 기령 백성의 말이 사실이었던 거다. 하지만 군사들은 개령 백성과 같은 벌을 당할까 두려워 사실을 고하지 않았다. 이일은 성이 함락됐지만 그것마저 몰랐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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