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DNA 바꾼 김창범 한화첨단소재 사장

▲ 듀폰과 한화첨단소재는 잘나가는 사업을 매각하고 신사업을 일으켰다. 사진은 김창범 사장(왼쪽)과 채드 홀리데이 회장.[사진=더스쿠프 포토]
여기 완전한 변신을 시도하는 두 기업이 있다. 듀폰과 한화첨단소재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하는 것처럼 단순히 사업을 다각화하는 정도가 아니다. 잘나가는 기존의 주력사업을 매각하고, 성장성이 있는 신사업 중심으로 사업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수준이다. 흥미로운 건 이 모험이 지금까지 꽤나 성공적이라는 점이다. 김창범 한화첨단소재 사장의 리더십을 살펴봤다.

“변해야 산다.” 모든 기업의 CEO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을, 현대차가 자동차 사업을 접는다면 어떨까. 대부분 ‘무모하다’며 말릴 것이다. 선도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변해야 산다”고 외치면서도 현실에선 그러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경우엔 변화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기술력 축적과 거대한 설비 등을 필요로 하는 석유화학이나 철강ㆍ자동차ㆍ조선 등의 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진입장벽이 어려운 만큼 매몰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설비 감축이나 증설 등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쉽지 않다. 이런 분야의 기업이 업종을 바꾼다는 것은 회사의 사활을 건 일종의 모험이다.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화학섬유 분야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듀폰이다. 역사가 200년이 넘는 듀폰은 1802년 화약제조업체로 출발했다. 이후 약 100년간 화약기업으로 성장했고, 1920년대 이후부터는 화학섬유기업으로 탈바꿈했다. 1940년 최초로 나일론을 개발하고, 수영복 원사로 쓰이는 라이크라, 기능성 섬유인 고어텍스의 소재로 쓰이는 테플론, 잠수복 원단에 쓰이는 네오프렌 등을 개발하면서 화학섬유 분야에서 업계 1위를 달렸다. 특히 섬유사업은 듀폰의 핵심사업이었고,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했다. 그러나 듀폰은 10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1997년 채드 홀리데이 CEO가 듀폰에 오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49살의 젊은 나이에 글로벌 대기업 회장이 된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듀폰의 200년 역사는 과거와 결별하는 과정의 역사다. 성장이 있는 곳으로 언제든지 떠나는 것이 듀폰의 전략이다.” 그리고는 듀폰의 핵심 사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998년 가장 먼저 듀폰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알짜 석유회사 코노코(Con oco)를 매각했다. 2004년에는 코크 인더스트리즈(Koch Industries)에 섬유사업까지 팔았다.

알짜 사업을 팔아 채드 홀리데이가 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옥수수밭이었다. 2004년 77억 달러에 종자회사 파이오니어를 인수해 가뭄과 병충해에 잘 견디고 에탄올이 풍부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석유화학과 섬유를 버리고 택한 게 농업이었으니 우려도 많았다. 월스트리트에선 심지어 그의 행보에 대해 “듀폰 200년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1998~2 004년 약 600억 달러(약 61조원) 규모의 인수ㆍ합병(M&A)을 단행한 끝에 듀폰은 종합과학기업을 내세우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꿨다.

 
듀폰은 어떻게 됐을까. 2007년 농산물ㆍ식품 분야에서 6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기능성 소재분야의 매출이 66억 달러였고, 전체 매출의 34%가 듀폰의 변신 이후 개발한 신제품들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사업은 성공적으로 안착한 셈이다.

한국에도 이런 모험을 시작하려는 기업이 있다. 한화첨단소재다. 2006년 ‘친환경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라'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주문을 가장 착실히 소화하고 있는 기업이다. 올 6월 한화L&C에서 ‘한화첨단소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화L&C의 생업이 건축자재제조에서 첨단소재제조로 바뀌면서다. 1999년 한화케미칼에서 물적 분할된 후 한화종합화학으로 불리다 2007년 한화L&C로 사명을 변경한 지 8년 만이다. 건자재부문은 7월 1일 모건스탠리에 1410억원에 매각했다. 이 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매각 대금은 별도의 소재분야 연구소를 짓는데 쓰일 예정이다. 현재 한화첨단소재는 대전의 한화케미칼 연구소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잘나갈 때 팔고 새 사업 찾아

눈여겨볼 점은 건자재부문이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해 떼어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건자재부문은 한화첨단소재 전체 매출의 40%를 담당했고, 매출액은 2011년 6695억원에서 7197억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들은 그동안 주로 사업의 실적이 좋지 않을 때 매각하는 경우가 많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글로벌 기업은 사업이 잘나갈 때 팔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기업들은 정반대”라며 “위기가 코앞에 닥쳐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제값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한화첨단소재의 변신은 특별하다.

이런 변신을 주도한 이가 김창범 사장이다. 그는 2010년 8월 전략사업부문 대표를 거쳐 지난해 5월 부사장(2011년)으로 승진한지 2년 만에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유는 하나다. 그룹의 친환경 코드와 잘 어울리는 소재사업을 육성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서다. 한화L&C가 체질개선을 통해 전통적 사업구조에서 탈피하고, 첨단소재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수 있었던 데는 김 사장의 의지와 노력이 한몫 톡톡히 했다는 게 그룹 내부의 평가다.

그는 전략사업부문 대표로 부임한 후 2010년 9월 전자소재와 태양광 소재를 생산하기 위해 지은 ‘G-Tech 음성사업장’ 기공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음성공장을 차세대 핵심사업의 생산ㆍ개발 거점으로 육성해 회사의 미래 비전을 달성해 나가겠다.” 이 말은 건자재부문 매각과 첨단소재분야 집중 육성으로 현실화됐다. 실제로 2010년 한화L&C 전체 매출액 중 소재부문은 매출 점유율이 45%정도였으나 3년이 지난 2013년에는 소재부문 매출 점유율이 60%를 차지해 건재부문을 추월했다.

사실 건자재사업은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도 이사 수요는 늘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 시공업체 관계자는 “건자재부문은 IMF 외환위기 때에도 다른 산업에 비해 영향을 덜 받았다”며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다면 수익은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첨단소재가 안정적인 사업을 버리고 성장가능성이 큰 소재사업 강화에 나섰다는 건 앞으로 좀 더 공격적인 행보를 펼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전략은 이미 한화L&C 시절부터 추진됐고, 일부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한화첨단소재는 소재분야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경량화 부품소재에 핵심역량이 많이 집중돼 있다. 이미 미국 앨라배마와 버지니아를 비롯해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체코 등에 해외법인을 설립해 현지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글로벌 시장 경쟁력도 갖췄다. 현대기아차 외에도 GMㆍ포드ㆍ도요타ㆍ폭스바겐 등에 경량화 부품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 석유화학이나 철강ㆍ조선산업은 매몰비용이 커 다른 산업보다 변신이 더 어렵다.[사진=뉴시스]
안정보다 성장, 현재보다 미래

한화첨단소재는 자체적인 경량화 복합소재 개발은 물론 차량경량화를 위해 완성차 업체와 협력해 신차 설계 단계부터 소재와 부품성형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기기의 주요 부품인 터치스크린패널(TSP)사업에도 진출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2년에는 TSP의 핵심소재인 산화인듐주석필름(하드 코팅된 PET필름 상부에 산화인듐주석을 진공 증착해 제조)을 독자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니토덴코ㆍ오이케 등 일본 업체가 100% 가량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소재 국산화를 이끌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건자재부문을 떼어낸 한화첨단소재가 시장의 이목을 끄는 건 이런 경쟁력 때문이다.

기업이 변하기는 어렵다. 업계의 선두주자라면 더욱 그렇다. 선두기업이 업종을 바꾸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업다각화에 그치거나 현실에 안주한다. 하지만 제대로 변하면 기업은 젊어진다. 200년이 넘는 듀폰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한화첨단소재는 지금 듀폰을 따라가는 중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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