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게르만족이나 이스라엘 사람들과 못 붙을 것도 없죠. 문제는 소프트웨어(SW) 업계에 우수한 인력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현정(57) 비트컴퓨터 회장은 “SW업계가 이공계 기피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가 전자ㆍ전기ㆍ컴퓨터공학을 묶어 학부를 만들었다가 다시 과별 모집으로 환원했습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죠. 흔히 인도를 SW 강국으로 꼽습니다. 인도 사람이 SW에 강한 건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SW 분야로 몰리기 때문이에요. 인도인은 19단을 외우고 일찍이 숫자 0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프로그래머는 19단 안 쓰고 이제 더 이상 발견할 숫자도 없어요. 영어권이라 우리보다 유리하다고 하지만 영어는 코디네이터와 프로젝트 매니저만 할 줄 알면 됩니다. 머리들이 좋고 미국과 낮밤이 다른 건 피차 마찬가지고요. 인도의 인건비가 싸다지만 SW 쪽은 미국보다 쌀 뿐 우리나라보다는 비싸요. 반면 근성 면에서는 우리가 더 유리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SW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이 바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되는 골든 타임인데 말이죠.”

 
조현정 회장은 연구개발(R&D) 인력을 못 뽑아 결국 R&D센터를 중국으로 옮긴 한 화장품 회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화공과 출신을 뽑아야 하는데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국내 인력의 질이 낮더라는 것이다. 그랬다가 중국에 기술을 탈취당할 거라고 했더니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말하더라고 했다. 이 회사는 정작 공장이 국내에 있다.

✚ SW 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안 좋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이들의 사기도 낮고.
“사람들이 SW 분야는 4D(3D+Dreamles s)라고 하는데 꿈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국내 1조원대 부자 100명 중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등 S W로 일군 자수성가형 부자가 여럿입니다. NHN에서 검색 엔진을 만든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의장은 대학원 시절 비트컴퓨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이런 부자는 세계적으로는 더 많아요. 일이 어렵다고 하지만 최고 수준에 이르면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 더 익히는 건 일도 아니죠. 일이 많아 늘 퇴근이 늦다? 실력이 안 되니까 제 시간에 일을 못 끝내는 거죠. 보수가 적다는 소리도 하는데 수익은 결국 각자 열심히 벌어 함께 나누는 겁니다.”

✚ 정부는 뭘 해야 합니까?
“SW 인력을 양성하고 실행력을 발휘해야죠. 정책은 비교적 잘 만들어 놨는데 실행이 제대로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이 정상화돼야 합니다. 물론 저가 입찰 등 정부의 발주 방식도 개선돼야죠. 하지만 그래 봤자 정부 발주 물량은 전체의 6% 수준입니다. 열악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 과제가 전부인 양 말하는 건 오도적이에요.”

SW 융성은 창조경제 핵심과제

✚ SW 산업이 우리나라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까?
“신성장동력일뿐더러 창조경제의 핵심 과제이기도 합니다. 세계 최초의 SNS인 싸이월드와 스카이프를 능가하는 다이얼패드를 만든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SW에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이 붕괴하고 맙니다. 스마트폰이 일부 제조업을 집어삼켰듯이. 반대로 SW에 투자하면 활황 정도가 아니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동안 하드웨어 위주의 기형적 성장을 했는데 갤럭시 같은 좋은 하드웨어에 카톡 같은 불세출의 SW를 실어야 돼요.

단적으로 미국의 구글은 자동차회사가 아니지만 무인자동차를 개발해 112만㎞ 시내주행을 마쳤고 4개주에서 시내주행 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저는 무인자동차 시대가 5년 안에 열릴 거로 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대자동차조차 이런 SW를 개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현대 에쿠스에 들어간 IT(정보기술) 부품이 전체의 34%예요. 골드만삭스는 이 비율이 20년 후 80%에 이를 거로 예측합니다. 그런 데도 우리는 미래에 대비하지 않습니다. 준비에 실패하는 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아요.”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초2동 비트교육센터 대강당에서 '2013년 SW전문인력양성기관 지정식'을 개최했다.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왼쪽에서 다섯번째), 조현정 회장(오른쪽에서 다섯번째) 등 지정기관 대표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SW 업계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공공 과제엔 좀 무관심해지고 이보다 훨씬 큰 민간 수요에 치중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저마다 전문기업이 돼야죠. 또 인력의 고도화에 힘쓰는 한편 SW 중심사회를 선언한 정부 정책에 발맞춰야 합니다.”

사교육 시켜서라도 SW 교육 했으면…

조 회장은 대학 3학년 때 창업했다. 비트컴퓨터는 국내 벤처 1호. 건물 몇 동 없던 서울 테헤란로로 옮긴 테헤란밸리 원조 벤처이고, 병역특례 SW 업체 1호 기록도 보유했다. 1989년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서른을 갓 넘긴 그를 한국에 기술기업 붐을 일으킨 청년 사장(boy president)으로 1면에 대서특필했다. 2005년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았고 2013년부터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그는 1988년 설립된 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창립 멤버인데 원년 멤버 중 현역은 그가 유일하다.

✚ SW업계의 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얘기는 좀 듣기 거북하고, 오래 종사한 건 맞습니다. 그보다는 이 분야에서 구루(guruㆍ권위자)역할을 해 보려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안철수 의원 같은 분이 그런 구루로 남을 수 있었죠.” 그는 멘토링은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 만났을 때 그는 서른 이후 10년 주기로 삶의 목표를 정했다고 말했었다. 30대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40대엔 상생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주력했다. 50대 이후 그는 멘토링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었다.

✚ 60대 목표는 뭔가요?
“멘토를 넘어서는 더 진보적인 목표가 없는 거 같아요. 찾아내지 못했다는 변명일지도 모르죠. 결국 구루라고 할 수 있겠군요.”

✚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비대위원을 지냈습니다. 정치엔 뜻이 없나요? 정책을 직접 만들어 볼 생각 없습니까?

 
“기업 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플러스섬 게임을 합니다. 윈윈을 추구하는 거죠. 반면 정치는 루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에요. 경쟁자를 죽여야 내가 살죠. 정책의 경우 지금은 과거처럼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조 회장은 1990년 비트교육센터를 만들어 지금까지 약 8700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평생 취업률 100%다. 지금까지 국부 창출에 대한 비트스쿨 출신 개발자들의 기여도를 그는 2조2600억원으로 추산했다. 2012년 10억9000만원에 달했던 비트스쿨 연간 적자 규모는 올해 1억7000만원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입학 자격을 갖춘 수강자가 200명 미만으로 한창 때의 5분의1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적자는 의료정보 전문기업인 비트컴퓨터가 메워왔다. 그는 어차피 사회공헌 활동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 내년 중학교 입학생부터 SW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시켜야 합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전 국민을 SW 개발자로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SNS와 오락 게임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들의 논리력을 키워주자는 거예요. 수학을 안 하려 들고 미국과 달리 에세이도 안 써 아이들이 논리가 약합니다. 논리에 강해야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데. 비용은 현재의 교육 예산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언론 쪽에서 우려를 하던데, 사교육비가 더 들게 생겼다고 쓴 기사도 봤습니다. 제발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SW 교육을 받게 하면 좋겠어요.”

그는 지난해 세종대에서 약 1000명의 대학생들에게 SW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한 세종대 측은 내년부터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SW 교육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 SW가 한마디로 뭐라고 봅니까? 나름대로 정의를 내린다면.
“혼과 꿈입니다. 하드웨어는 그 자체만으로는 멍텅구리입니다. PC든 스마트폰이든 SW와 애플리케이션이 깔려야 작동하죠. 그런 점에서 SW 개발은 하드웨어에 혼을 불어넣는 거라고 할 수 있죠. SW가 여는 새로운 세상은 마치 꿈만 같죠. KTX에서 승차권 검사 안 하는 것에 외국인들이 놀랍니다.”

성공 DNA는 고도의 몰입

✚ 자수성가했는데 나름대로는 성공 DNA가 뭐라고 보나요?
“몰입과 집중을 남보다 잘하는 편입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일 때 더 신이 나죠. 돈에 대한 집착은 없었습니다. 바닥을 경험했기에 감사할 줄 알고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는 중학교를 중퇴했다. 전자제품 기술자로 일하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 몰입의 비결이 있나요?
“몰입에 방해가 되는 건 과감하게 차단합니다.”
일주일의 하루 반을 할애해야 했던 교회 생활도 그래서 끊었다. 서울 청량리 맘모스호텔 방에서 창업을 한 것도 24시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1만 시간의 법칙에 저는 동의해요. 비트스쿨은 6개월 간 1800시간 집중적으로 교육합니다. 수강자들이 앞서 대학 4년 동안 이수한 전공필수 시간의 두 배에 해당하죠.”

Issue in Issue 조현정의 탈피오트論

병영을 인재양성소로 바꿔야

조현정 회장은 한쪽 귀가 안 들리는 데도 우겨서 군복무를 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두 아들도 현역으로 복무했다. 눈이 나쁜 둘째는 현역으로 입대하려 인공렌즈 삽입술까지 받았다. 그는 두 아들을 군에 보내고서 1000만원을 국방성금으로 냈다. 두 아들이 군에서 받은 급여 총액과 맞먹는 액수다. 조 회장은 “28사단 윤 일병 사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고 잘못된 병영 문화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면 군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 조현정 회장은 "갤럭시 같은 하드웨어에 카톡 같은 불세출의 SW를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2011년 숙명여대에서 강의하는 조현정 회장.[사진=뉴시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떠나 올바른 국가관을 익히고 강인한 정신을 기를 기회입니다. 군에 있는 동안 불합리한 일들을 겪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비합리적이기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불합리한 사회에 미리 적응하도록 예방주사를 맞는 격이죠.” 그는 나아가 군이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인재양성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원은 사병들이 받는 급여로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뤄 사병 급여를 교육훈련비로 전용하는 겁니다. 평균 월 10만원으로 잡을 때 이 돈이면 인성 교육을 위한 인문학 강좌도 열고 소프트웨어(SW) 교육 등 기술교육도 시킬 수 있습니다. 징병제에 따른 의무복무를 국가와 개인의 성장 기회로 활용하는 거예요.” 이런 발상은 이스라엘의 탈피오트(talpiotㆍ히브리어로 최고 중 최고란 뜻) 제도를 연상시킨다.
 
탈피오트는 우수한 인재가 군복무 기간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한 이스라엘의 독특한 군복무제도. 이런 제도와 무관하지만 조 회장의 장남 조재석씨의 복무 사례는 그 가능성을 시사한다. 조씨는 컴퓨터과학의 명문인 미 카네기멜론대 재학 중 입대해 육군본부 정보체계관리단에서 프로그램운용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2009년 3월 전역할 때 육군 해킹 대응체계의 성능을 개선해 예산을 절감한 공로로 임충빈 당시 참모총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사병이 참모총장 표창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군에서 쌓은 프로그램 개발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을 조기 졸업한 그는 금융정보를 제공하는 블룸버그사에 들어가 SW 개발자로 일한다. 조 회장은 “탈피오트 출신 중 다수가 미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에서 일하고 이스라엘 경제계 요직에 있는 인사도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해 과학기술전문사관제를 신설키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 과학기술전문사관 제1기 후보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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