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의 ‘통상임금 전략’

▲ 현대차·기아차가 통상임금 확대 방안을 두고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자동차 업계가 ‘통상임금 갈등’을 겪고 있다. 통상임금 확대를 결정한 쌍용차와 한국GM 같은 업체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문제는 통상임금 확대가 결정됐더라도 웃을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쌍용차는 R&D 투자비가 줄어들 공산이 있다. 한국GM의 경우 ‘한국시장 철수’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통상임금에 숨은 ‘위험한 주사위’를 살펴봤다.

‘통상임금’이 국내 완성차업체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통상임금 확대방안을 놓고 국내 5개 완성차업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한국GM과 쌍용차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을 골자로 임금단체 협상을 타결했다. 반면 현대차ㆍ기아차는 노사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르노삼성은 아직 협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월급 또는 시급 등 급여다. 연장ㆍ휴일 근로의 수당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근로자는 임금인상이라는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회사 측은 비용 부담이 커진다.

2009년 노사 갈등으로 위기를 경험한 쌍용차는 힘들게 끌어올린 실적을 또다시 노조와의 싸움으로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쌍용차는 7월 24일 제15차 임금단체 협상을 통해 현재 기본급의 800%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쌍용차는 2009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었다. 이후 중국, 인도로 주인이 바뀌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노사가 손을 잡고 경영정상화에 나서며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 쌍용차의 영업손실은 2010년 570억원에서 2011년 1410억원으로 늘었지만 2012년 981억원, 2013년 89억원으로 그 규모를 줄여 나갔다. 쌍용차 관계자는 “통상임금과 관련 노사간 불필요한 논쟁을 하는 것보다 협상을 신속하게 마무리해 경영정상화에 보다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신차 ‘X100’을 비롯해 지속적인 신차 개발을 위해 무엇보다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중요하다는 데 노사가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통상임금 확대 적용의 부담은 물론 있다. 쌍용차는 차량 무게가 무겁고 연비가 비교적 떨어지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대형 세단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앞으로 연비 규정이 강화되는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연비를 향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임금이 상승되는 부분만큼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GMㆍ쌍용차 통상임금 확대 나서

한국GM도 통상임금 확대에 나섰다. 쌍용차에 이어 업계 두번째로 올해 노사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국GM 노사는 7월 28일 23차 교섭을 갖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의 2014년 임금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노사가 마지막까지 이견을 보였던 통상임금 적용 시점은 3월로 정했다.

한국GM의 결정은 글로벌GM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GM은 GM의 자회사다. 중요한 경영 사안은 모두 GM이 결정하고 있다. GM은 현재 해외 공급량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규모 리콜 문제와 일부 공장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한국GM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공급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한국GM의 통상임금 확대로 인한 임금 상승보다 GM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차량을 제때에 공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GM 관계자는 “임금 인상보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한국GM은 임금 인상보다 파업으로 인한 회사 손해가 크다고 판단, 통상임금 확대에 나섰다. [사진=한국GM 제공]
하지만 ‘이 결정이 GM이 한국시장을 떠나는 데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2년 후 미국과 신흥국에서 GM의 생산공장이 완공된다. 그동안 축소했던 생산설비가 다시 늘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GM은 생산 원가를 따지게 되고, 임금이 비교적 높은 한국GM의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자동차업계 전문가는 한국GM 노조가 ‘위험한 협상’을 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GM 본사와 한국GM의 단일 노동 비용을 비교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미국은 생산비용을 낮추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거꾸로 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공급차원에서 물량이 모자라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한국GM의 통상임금 확대를 결정을 한 것이다. GM이 저비용 생산기지를 만들면 원가를 따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통상임금 확대 방안을 두고 노사가 갈등을 겪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7월 31일 “통상임금 확대 방안을 제안했지만 사측이 협상할 의지가 없다”며 “올해 임금 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8월 중순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를 거친 후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역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일부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법원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현대차는 “2개월 기준으로 15일 이상 일해야 상여금을 준다는 내규가 있어 통상임금 성립 요건인 고정성이 결여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가 한국GM과 쌍용차와는 다르게 통상임금 확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임금상승으로 인한 회사가 입는 피해가 워낙 커서다. 현대차의 경우,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이 높다. 독일 자동차업체의 인건비가 높은 수준에 속하는데 현대차는 독일 브랜드인 폭스바겐과 큰 차이가 없다. 기아차도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한국GM과 쌍용차는 상대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낮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현대차의 1인당 인건비가 100이라면 한국GM은 75 정도로 볼 수 있다”며 “쌍용차는 그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가 올라가면 현대차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8%대인데 여기서 1%만 떨어져도 기업에겐 타격이 크기 때문에 통상임금 확대를 수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임금상승 손해 막심

르노삼성은 대표노조인 기업노조가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법원 판결이 나는 것을 보고 그때 협상하는 방향으로 노사가 의견을 일치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요인이 숨어 있다. 르노삼성의 모기업인 르노의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 2011년 유로존 재정위기 이후 유럽 자동차 시장은 회복세를 띠고 있지만 프랑스 업체의 판매 물량은 여전히 줄고 있다. 르노는 현재 구조조정 중이고, 임금을 어떻게 하면 내릴까를 고민하고 있다.

르노삼성도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에 밀리고 있다. 르노삼성의 경영진은 계속해서 불안한 상태다. 모기업인 르노가 흔들리다 보니 르노삼성의 임금상승 문제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우선은 버텨보자’는 방향으로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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