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좌고우면

▲ 백화점 업계가 사상 유례없는 세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적은 신통치 않다. 사진은 여름 정기세일 중인 롯데백화점[사진=뉴시스]
유통공룡 백화점이 벼랑에 내몰렸다. 분기별 매출 성장률은 2012년 한자릿수로 줄어들더니 올 2분기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부진을 탈출하기 위해 사상 최대 할인전을 열고 있지만 약발은 기대치를 밑돈다. 백화점의 이런 저런 변신도 리스크가 있다. 다른 유통채널과의 차별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에 처한 백화점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지난 8월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은 인산인해였다. 롯데백화점이 8월 6일~9일 개최한 ‘해외명품대전’ 때문이었다. 200여개의 브랜드가 참여해 30~70% 제품을 할인 판매했다. 매대 앞은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명품백을 사기 위한 소비자들로 북적였고, 계산대 앞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롯데백화점만의 얘기가 아니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도 9월 말까지 명품세일을 진행한다. 롯데백화점ㆍ현대백화점ㆍ신세계백화점 3개 백화점은 총 2100억원어치의 물량을 푼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갤러리아백화점도 8월 13일까지 200개 명품 브랜드 상품을 최대 80% 할인하는 ‘클리어런스 세일’을 연다 주목할 점은 여름 정기세일이 끝난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명품세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백화점 업계의 세일 기간은 무려 100일이 넘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80일 정도였는데 20일가량 늘었다. 소비자들도 이젠 ‘백화점 세일’에 무뎌지는 분위기다.

여준상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저성장 불황에 따른 합리적 소비에 따라 백화점 업계도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할인 전략을 택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같은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장기화된 세일은 백화점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특히 잦은 세일은 수요예측 등에 혼동을 줘 재고가 쌓이는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명품세일대전을 두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밀어내기식 세일’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6월 주요 유통매출 동향을 보면, 백화점 업계의 성적은 최악에 가까웠다. 세일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백화점 업계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 전월 대비 14.1% 줄어들었다. 올 2분기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다.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개별 백화점의 성적표도 당연히 신통치 않다. 롯데백화점의 국내 사업부 매출(개별 기준)은 올 1분기 2조136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프리미엄아울렛의 가파른 성장이 매출증가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반대로 해석하면 백화점 순수 매출은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신세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한금융투자는 이 회사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개별 기준)을 전년 대비 각각 3.5%, 8.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6월 27일 시작한 정기세일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1% 수준의 총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며 “식품ㆍ명품 매출이 플러스 성장을 했음에도 캐주얼 등 의류매출이 5% 이상 하락하며 실적부진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현대증권은 이 회사의 올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 18.2% 하락으로 예상했다.  이상구 현대증권 연구원은 “세월호 여파와 소비경기 위축으로 의류 부문 매출이 부진했다”고 원인을 밝혔다.

 
백화점이 실적이 기를 펴지 못하는 가장 이유는 마진이 높은 ‘의류매출’의 부진에 있다. 올 6월 백화점의 부문별 매출을 보면 의류 성적이 가장 부진했다. 전년 동기 대비 남성의류 12.4%, 여성캐주얼 6.7%, 잡화 5.8%, 아동스포츠 4.9%, 해외유명브랜드 1.6%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2012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한 단기적 부진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혜련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합리적 소비성향이 지속되면서 백화점 의류 부문이 SPA 가두점ㆍ아울렛ㆍ온라인 등 저가채널에 잠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벼랑에 몰린 ‘유통 꽃’ 백화점

실제로 백화점 업계와 달리 아울렛과 SPA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실적자료와 업계 자료에 따르면 유니클로ㆍ자라(ZARA)ㆍH&M 등 해외 SPA 브랜드 ‘빅3’의 2013년 매출이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해외직구를 비롯한 새로운 유통채널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배송업체 몰테일의 지난 6월 17일~7월 14일 한달간 배송대행건수는 약 10만건으로, 전년 대비 2배가 됐다. 최근 목록통관까지 확대 시행돼 핸드백ㆍ선글라스 등 상품을 200달러까지 관부가세 없이 구매 할 수도 있다.

이런 유통채널이 성장할수록 백화점의 먹을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백화점이 예년과 다르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 3월 영플라자를 리뉴얼하고 온라인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다. 다른 유통채널에서 찾아보기 힘든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원스톱 쇼핑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9월 패션전문관 4N5(포앤파이브)를 오픈했는데 여기에는 30여개 컨템포러리 브랜드가 입점했다.

▲ 각 백화점이 아울렛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울렛의 성장은 제로섬 게임에 그칠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최근엔 본점 7층에 남성 패션 브랜드 60여개를 배치하고 남성전문관을 선보였다. 여기에 올 8월 말 본점 식품관의 리뉴얼 오픈을 앞두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점 역시 지난해 5월 델리 매장을 리뉴얼 오픈하는 등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명품백화점 이미지가 강했던 갤러리아 백화점도 지난 3월 서울 압구정 본점의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서관)’의 브랜드 칸막이를 허물고 개방형 쇼핑공간을 론칭했다. 백화점들이 프리미엄아울렛에 베팅하는 것도 부진을 탈출하기 위해서다.

롯데백화점(롯데쇼핑)은 파주ㆍ이천ㆍ김해 지역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한 데 이어 올해 부산지역과 2016년 경기도 양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추가로 완공할 계획이다. 신세계도 여주ㆍ파주ㆍ부산에 이어 의정부 지역에 프리미엄아울렛을 만들고 있다. 가장 뒤늦게 프리미엄아울렛 사업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은 내년 김포ㆍ송도 지역에 순차적으로 프리미엄아울렛 오픈을 앞두고 있다. 도심형아울렛과 복합쇼핑몰도 속속 오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신이 백화점 업계에 봄바람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백화점의 신사업 아울렛이 백화점 고객을 되레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아울렛이 성장할수록 ‘제로섬 게임’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프리미엄아울렛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도 유리하지 않다. 아울렛을 새로 오픈해도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백화점들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도심형 아울렛 역시 마찬가지다.

오세조 교수는 “치열해진 경쟁 속 백화점이 살아남는 방법은 차별화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기능ㆍ감성ㆍ엔터테인먼트 등 그만의 가치를 개발해 내는 백화점이 결국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통시장을 호령하던 유통공룡 백화점이 ‘벼랑’에 서있다. 세일은 소비자를 지치게 만들고, 변신은 다른 유통채널과의 차별성을 없앤다. 유통공룡이 ‘좌고우면’에 처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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