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

▲ 아르헨티나가 지난 7월 말 기술적 디폴트에 빠졌다. [사진=뉴시스]
13년 만의 디폴트. 아르헨티나가 또 위기에 빠졌다.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외환보유액 감소와 폐소화 가치절하로 어려움을 겪던 아르헨티나에 또 다른 재앙이 덮친 셈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르헨티나 정부는 태연하다. 국제금융시장도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기술적 디폴트’에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를 살펴봤다.

13년 묵은 ‘디폴트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아르헨티나가 7월 30일 만기가 돌아온 이자 5억400만 달러를 갚지 못해 디폴트에 빠졌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 이어 13년 만에 두번째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디폴트 영향으로 7월 31일 아르헨티나 증시는 8.39% 급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88%가 하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나스닥 종합지수도 각각 2.00%, 2.09%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VIX(공포지수) 지수도 27%나 상승했다.

13년 만에 맞은 두번째 디폴트

이번 디폴트는 2001년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는 1000억 달러 규모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디폴트를 선언했다. 디폴트 이후 아르헨티나는 빠르게 대응했다. 디폴트 발생 직후 페소화와 달러화의 환율을 1대1로 고정시킨 태환정책을 포기하는 등 국제 기준에 맞는 경제개혁안을 실시했다. 그 결과, 2006년 96억 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자금을 상환했다. 또한 2005년과 2010년 두차례에 걸친 채무 구조조정을 통해 평균 70%의 부채를 탕감받았다. 1차 채무 구조조정에는 76%의 참여했고 2차에는 16%가 참여해 총 93%의 채권단이 참여했다.

하지만 채무 구조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계 헤지펀드 NML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캐피털이 발목을 잡았다.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채권 원리금 15억 달러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미 법원은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줬다. 뉴욕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2012년 아르헨티나에 “채무 구조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NML캐피털과 아우렐리우스캐피털에게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13억3000만 달러를 상환할 것”을 지시했다. 아르헨티나는 항소를 제기했지만 지난 6월 16일 미국 대법원은 상소심리 요청을 기각했다.

또한 채무조정이 이뤄진 교환사채 이자지급에 실패했다. 이후 헤지펀드와의 채무조정에도 실패했고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사실 미국 헤지펀드가 요구한 13억3000만 달러는 큰 규모가 아니다. 김진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5월말 기준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285억4000만 달러”라며 “헤지펀드에 지불한 금액은 외환보유액의 4.6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상환하지 않고 디폴트를 선택할 만큼 큰 규모는 아니다”며 “하지만 문제는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150억 달러의 비非채무조정 채권을 보유한 헤지펀드에 있다”고 전했다.

미국 법원의 판결대로 13억300만 달러를 지급할 경우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헤지펀드의 소송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판례를 중요시하는 미국 재판의 특성상 이후 재판에서 아르헨티나가 승소할 확률은 희박하다. 150억 달러는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의 54.6%에 달하는 금액으로 외환보유고 감소를 겪고 있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채무 구조조정에 참여한 채권단과 맺은 채권자 ‘RUFO(Right Upon Future Offers)’ 서약에 있다. RUFO 서약은 채무 구조조정 당시 명시된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올 12월 31일까지 다른 채권자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경우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자도 아르헨티나에게 같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 헤지펀드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부채를 탕감해준 채무자에게도 조정 이전의 금액을 상환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채무조정 채권자가 RUFO를 빌미로 채무조정 이전의 금액을 요구할 경우 아르헨티나가 갚아야 할 부채는 1200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의 이번 디폴트는 국가의 지급능력이 부족해 발생하는 일반적인 디폴트와는 다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6월 30일 채무 조정채권의 이자지급을 위해 미 수탁은행인 BNT멜론은행에 8억3200만 달러를 예치했다. 하지만 미 법원은 예치금액이 채무조정채권에만 사용되는 것이 판결에 어긋난다며 자금 집행을 정지시켰다. 이에 따라 상환능력이 있지만 법원의 판결 때문에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기술적 디폴트’가 발생했다. 아르헨티나는 은행에 이자를 예치했기 때문에 디폴트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미국정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했다. 미국 법원이 채무 조정채권의 상환을 금지한 것이 ‘주권침해’에 해당한는 이유에서다. 시장은 국제금융시장 복귀를 위해 노력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디폴트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침체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자본유출ㆍ인플레이션 급등ㆍ국제 금융시장 복귀 무산ㆍ실업률 급증 등의 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4가지다. 첫째 헤지펀드가 요구한 13억30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가진 외환보유액을 초과하는 부담이 발생해 전면적인 디폴트 사태를 초래할 수 있어 가능성이 희박하다.

헤지펀드와의 협상 쉽지 않아

두번째는 미국 헤지펀드와의 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문제는 미국 헤지펀드가 공격적인 채권 회수 성향을 가진 벌처펀드(vulture fundㆍ부실기업이나 부실채권에 투자하여 수익을 올리는 자금)라는 것이다. 특히 NML캐피털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군함정ㆍ대통령 전용기 유로대금ㆍ해외에 예치된 외환보유금ㆍ미술품 등 아르헨티나의 자산 압류까지 시도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벌처펀드에 단 한푼도 내줄 수 없다”는 강경 발언을 했기 때문에 원만한 해결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 아르헨티나에서 미국 헤지펀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번째는 RUFO 조항이 만료되는 2014년 말 이후로 협상을 끌고 가는 것이다. 채무 조종채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협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RUFO 조항이 만료되면 채무조정에 응한 채권자들과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헤지펀드들과 자유로운 상태에서 채무상환 협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권기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협상 시점 연기를 통한 RUFO 조항 해결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디폴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채무 구조조정 채권에 상황을 중지시킨 미 법원의 판결이 일시적으로 중단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채무 조정된 채권을 아르헨티나 법에서 발행한 채권으로 교환하거나 아르헨티나 민간은행이 헤지펀드가 보유한 아르헨티나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이다. 채무 조정된 채권이 아르헨티나에서 발행한 채권으로 교환될 경우 미국 법원의 판결에 상관없이 정상적인 채무 상환이 가능해진다. 김진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교환을 통해 채권이 아르헨티나로 옮겨갈 경우 정상적인 상환이 이뤄질 수 있다”며 “하지만 법원이 미국내 관련기관에게 채무조정 채권에 국한한 아르헨티나 채무이행 행위에 협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관련 기관의 협조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은행의 채권 매입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미국 벌처펀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기수 연구위원은 “아르헨티나는 국제사회에 미국 법원 판결의 부당함과 헤지펀드 채권단의 부도덕한 행태를 비난하고 지지를 얻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같은 전략은 헤지펀드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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